
■ 카뮈부터 포세까지… 노벨문학상 수상 연설문 키워드
노벨문학상 수락 연설에는 세계가 귀를 기울인다. 노벨상을 수상한 작가가 몇 달에 걸친 고뇌와 퇴고의 과정을 거쳐 응축한 연설문은 인간과 세계를 마주하는 수상자의 자세와 현시대 상황을 관통하는 명문으로 그 자체가 ‘문학’으로 여겨진다. 한강(사진) 작가 역시 “세계는 왜 이토록 폭력적이고 고통스러운가”라는 질문으로 시작해 “동시에 세계는 어떻게 이렇게 아름다운가”라는 깨달음, 이내 “내 질문들의 가장 깊은 겹은 언제나 사랑”이었다는 고백으로 한국을 넘어 전 세계에 울림을 줬다. 이처럼 ‘사랑’과 ‘다정함’ ‘저항’ ‘침묵’과 같이 시대에 필요한 가치를 전달해온 역대 수상자들의 연설은 시대를 뛰어넘어 지금도 유효하다. 2차 세계대전의 상흔 속에 진실과 자유를 이야기한 카뮈의 연설부터 자신에 대한 두려움으로부터 글쓰기를 시작한 포세까지 노벨문학상 수상자 6명의 수락 연설을 돌아봤다.


■ 욘 포세(2023년)
“나로부터 벗어나기 위해서”
“나는 나 자신을 표현하기 위해 글을 쓴 것이 아니라, 오히려 나로부터 벗어나기 위해 글을 썼습니다.”
욘 포세의 세계는 ‘나’에서 출발한다. 지난해 그는 스웨덴 스톡홀름에서 발표한 연설에서 중학교 시절 “나라는 존재가 묻혀버렸고 두려움 그 자체가 되어버렸다”며 “이 때문에 나는 글을 쓰는 고독한 삶 속으로 발을 들였고 이후로 계속 그곳에 머물게 됐다”고 고백했다. 소설과 희곡, 시까지 넘나드는 그의 광범위한 문학세계는 작가 자신에게서 벗어나기 위한 발버둥이자 오직 활자만이 존재하는 고요의 세계로 나아가기 위한 시도였던 셈이다. 과거와 현재가 겹쳐지고 어떤 경우에는 마침표 하나 없이 쉼표로만 이어지는 그의 문장에서 ‘나’는 사라지고 여백이 그 자리를 대체한다. “침묵의 발화에 말글을 내주고 싶은 마음”에서 출발한 그 여백은 글쓰기를 “귀를 기울여 듣는 일”이라는 새로운 경지로 이끌었다.


■ 아니 에르노 (2022년)
“내 ‘종족’ 여성 목소리 담으려”
“문학 속에 그들의 자리를 만들어주고 싶었습니다. 여성이자 계급탈주자로서의 나의 목소리를 언제나 해방의 장으로 소개되는 그곳, 문학 속에 기입하기 위해서.”
아니 에르노의 목소리는 적극적인 방식으로 사회를 향한다. 그의 글쓰기는 ‘나’에서 출발해 “내 종족이 살아온 방식을 밝히겠다는 욕망”으로 나아갔다. 임신중절과 혼외정사 등 그의 자전적 경험을 담은 소설이 곧 “개인을 넘어서고 개별적인 것은 보편적인 것에 도달한다”는 믿음에서 비롯됐다. 스무 살 무렵 그는 일기장에 “나의 종의 복수를 위해 글을 쓰겠다”는 결심을 적었고 그로부터 60년간 남성과 기성 지식인, 프랑스 사회에 맞서는 “자신의 종족”에 대한 이야기를 썼다. “‘나는’으로 시작되는 말하기가 필요했다”는 그는 “남성 권력을 방해하는 단어를 발견하고 현실 세계를 해독해 기존 언어와 계층구조를 뒤집게 됐다”고 설명했다.


■ 올가 토카르추크 (2018년)
“초월적이며 사랑스런 장르 꿈꿔”
“우리에게는 여전히 언어가 부족하고 새로운 신화나 우화가 부족합니다.”
노벨문학상 수상 강연에서 올가 토카르추크는 단순히 소설가에 머물지 않는다. 그는 강연자이자 에코페미니스트, 채식주의자, 사회운동가로서 “세상은 우리가 날마다 방대한 분량의 정보와 토론, 영화, 책, 온갖 소문과 에피소드들을 엮어서 직조하는 일종의 거대한 직물”이라고 진단했다. 인간 존재에 대해 탐구하는 그다운 해석이다. 그가 강연을 통해 묘사한 세계는 미디어의 발전 속에 가짜뉴스가 넘쳐나고 “증오의 표현들이 범람하면서 모든 ‘좋은 소식’과 필사적으로 대적하고” 있는 상황이다. 그리고 여기서 그는 새로운 유형의 서술, “다정한 서술자”의 등장을 꿈꾼다. “가장 모호한 직관을 표현할 수 있는 언어, 문화적 이질성을 뛰어넘는 은유, 그래서 방대하고 초월적이면서 동시에 독자들이 사랑할 수 있는 그런 장르”를 말이다.


■ 가즈오 이시구로 (2017년)
“망각과 기억 사이에서 분투”
“나는 그 세계의 특별한 색채를, 풍습을, 예절을 종이 위에 기록하고 있었습니다.”
가즈오 이시구로는 일본에서 태어나 다섯 살이 되던 해에 영국으로 이주한 ‘경계인’이다. 자연스럽게도 그의 문학에는 기억에는 선명하게 남아있지 않은 조국인 일본을 향해 있었고 그의 세계 또한 자신이 만들어낸 가상의 일본이었다. “집에는 다른 규칙, 다른 기대감, 다른 언어가 있었다”는 그는 “내가 실제로는 한 번도 일본에 간 적이 없다는 사실은 그 나라에 대한 상상을 더욱 생생하고 개인적인 것으로 만드는 데 일조했다”고 노벨상 수상 후 털어놨다. 소설 속에서 “망각과 기억 사이에서 분투하는 개인들”의 모습은 결국 자신이 겪었던 망각에서 시작됐다. 그는 “노퍽의 그 작은 방에서 나에게 글을 쓰도록 몰아붙인 것이 ‘나의’ 일본이 유일한 동시에 자칫 깨지기 쉽다는 외부적으로는 검증할 수 없는 그 무엇이라는 느낌이었다고 확신한다”고 말했다.


■ 가브리엘 가르시아 마르케스 (1982년)
“비참하지만 아름다워… 창작의 샘”
남미 문학의 정점으로 불리는 콜롬비아의 가브리엘 가르시아 마르케스에게 세계는 ‘창작의 원천’이자 ‘영감의 샘’이었다.
그가 살았던 라틴 아메리카는 다섯 번의 전쟁과 열일곱 번의 쿠데타를 겪었는데 그러한 현실을 바탕으로 ‘마술적 리얼리즘’을 보여준 그의 소설은 “단지 문학적 표현 양식뿐만 아니라 우리의 가공할 만한 현실”이었다.
마르케스는 스스로 수상 연설을 통해 “비참하지만 아름다움으로 가득한 고갈되지 않는 창작의 샘물을 솟구치게 하며, 이런 창조적 샘물을 지닌 콜롬비아 사람은 행운아임을 지적하고자 한다”며 그다운 위트를 잊지 않았다. 이어 그는 “이 모든 것에도 불구하고 억압과 약탈, 절망에 맞선 우리의 대답은 바로 삶”이라며 “모든 것을 믿는 우화의 창조자인 우리는 그것과 반대되는 유토피아를 창조하는 작업을 실행하기에 아직 늦지 않았다고 믿을 권리가 있다”고 말했다.


■ 알베르 카뮈 (1957년)
“역사를 겪는 사람들 위해 봉사”
“작가는 역사를 만드는 사람이 아니라 역사를 겪는 사람을 위해 봉사할 수밖에 없습니다.”
1957년 노벨문학상을 수상한 알베르 카뮈가 당대에 겪어낸 참혹함은 어쩌면 지금보다 컸을지도 모른다. 2차 세계대전의 상흔이 채 가시지도 않은 프랑스에서 그가 허무와 폐허 속에 ‘예술’의 필요성에 대해 고민한 흔적은 수상 연설문에도 남아있다. 그가 꼽은 예술가가 짊어져야 할 두 가지 능력은 ‘진실에 대한 섬김’과 ‘자유에 대한 섬김’이다. “우리는 오늘날엔 핵무기에 의한 파괴의 위협을 받는 세계 속에서 우리의 자식과 작품을 길러 나가야 한다”며 자신의 작품, 그가 “지금도 그 덧없으나 자유로웠던 행복의 추억이나 소생”이라고 일컫는 ‘이방인’과 ‘페스트’ 같은 시대의 명작이 “이 세상에서의 고통스러운 삶을 겨우 견디고 있는 그 모든 말 없는 사람들 곁에 남아 두 눈 질끈 감고 버틸 수 있도록 도와준다”는 사실에 감사함을 보냈다.
신재우 기자 shin2roo@munhw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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