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경란 소설가

기억 속 첫 공간은 셋방 살던 집
보잘것없었지만 행복한 일상

엄마가 장사하던 대구의 시장
슬픔으로 가득 찬 성장의 장소

K-팝 응원봉 흔들리는 여의도
훗날 어떤 공간으로 기억될까


글 쓰는 요리사 박찬일의 에세이집 중 ‘추억의 절반은 맛이다’가 있다. 먹는 데 별 관심이 없는 나도 어찌나 재미있었던지 제법 두꺼운 책을 단번에 읽었다. 그러나 책장을 덮으면서는 고개를 갸우뚱할 수밖에 없었다. 추억의 무려 절반이 맛이라면 나머지 절반을 어떻게 찢어 나누어야 수많은 추억의 요소를 사이좋게 배열할 수 있단 말인가. 추억을 함께 만든 사람들과 그 추억을 나눌 사람은 논외로 치더라도 우리에겐 음악도 있고, 영화도 있고, 문학도 있고…, 있는데 말이다.

이건 순전히 내 생각이지만, 추억의 절반쯤은 공간에 내어주면 안 될까. 이유는 있다. 공간 없이는 누구도 존재할 수 없고 어떤 사건도 일어날 수 없다는 게 그 이유 중 하나이고, 그보다 중요한 건 어떤 공간은 떠올리기만 해도 그 자체로 벌써 가슴이 먹먹해진다는 사실이다. 그런 공간이 내게만 있지는 않으리라.

내 가장 먼 기억 속의 공간은 김원일의 장편소설 ‘마당 깊은 집’과 비슷했다. 작중 주인은 위쪽 별채에 군림했지만, 주인 할머니는 그 집에서 가장 작은 대문 옆 단칸방에 기거했다는 점이 소설과는 달랐다. 그 작은 방에서 손자 둘을 키우며 살았는데, 또 소설과는 달리 무척 인자하신 분이었다. 미취학 아동이던 내가, 출근하고 장사 나간 부모님 대신 그 할머니의 보살핌을 자주 받았던 건 물론 그 방에서 그 옆방에 세든 할머니와 함께 치던 민화투를 어깨너머로 배운 건 덤이었다. 그 방에서 드라마 ‘여로’를 보았고, 외화 ‘제5전선’을 보았다.

그 집의 세입자는 우리 집을 합쳐 대여섯 가구 정도였다. 다행히 서로 싸우지는 않았고 적당한 평화가 유지됐는데, 그건 ‘아랫방 할매’로 불리던 주인 할머니의 근엄하고 후덕한 통솔 덕분이었다. 지금 돌이켜봐도 임대인과 임차인의 팍팍한 관계는 아니었던 듯하다. 그분의 어른 역할이 어린 내 눈에도 듬직했으니.

물리적으로는 기실 보잘것없는 집이었다. 판자를 얼기설기 덧대어 만든 대문은 항상 열려 있었고, 초입에는 역시 성근 판자문을 어설프게 단 재래식 변소가 있었다. 대문을 지나 냄새를 참으며 변소 앞을 지나치면 마당이었다. 마당의 삼면에 방과 부엌을 앉힌 집이었다. 한쪽 면에는 펌프와 수도를 동시에 쓰던 수돗가가 있었고, 그 뒤로 장독대가 있었다. 장독대에 면한 담장에는 나팔꽃이 올라갔다. 나팔꽃을 따라 까치발을 하면 그 너머로 이웃집 마당이 보였다. 어른들은 담장을 사이에 두고 고개를 쑥 뽑아 알은 체를 하곤 했다. 종종 부침개 접시가 오가기도 했을 것이다.



그 집 수돗가에서 빨래를 했던 추억 한 자락을 들춰 본다. 여섯 살 무렵 연년생 동생을 업고 놀아주다 동생의 노란 원피스에 흙이 잔뜩 묻었다. 온통 흙이라 비만 왔다 하면 고무신이 쩍 들러붙던 마당이니 흙이 안 묻게 놀 도리가 없었다. 동생의 옷을 벗겨 수돗가에서 빨긴 빨았는데 그다음이 문제였다. 흔들리는 바지랑대에 척 걸쳐진 빨랫줄이 아득해 보였다. 어찌어찌 말려서 엄마 오시기 전 다시 입혔던 기억이 있으니 누군가 널어주었을 것이다.

그 무렵 내게 중요했던 또 하나의 공간은 엄마가 장사하던 대구의 어느 시장이다. 엄마가 보고 싶을 땐 예의 ‘마당 깊은 집’을 나서서 팔짱을 꼭 낀 자세로 시장까지 걸어가곤 했다. 어린아이에게는 멀고 번잡스러운 길이라 두 팔을 엇갈려 몸에 붙인 자세는 저절로 터득한 방어술이었던 것이다. 시장에서 먹고 자랐다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시장은 내게 성장의 공간이었고, 때로는 슬픔과 고통의 공간이기도 했다. 어린 시절의 나는 상가가 밀집해 있던 미로 한가운데서 번번이 길을 잃곤 했다. 그러나 그곳은 엄마가 있는 곳이었으므로 마치 햇빛을 향해 고개를 드는 식물처럼 나는 가고 또 갔다. 학교도 들어가지 않은 아이가 자꾸 찾아오는 게 엄마는 참 난감했을 것이다. 그 모든 장면을 이제는 추억이라고 뭉뚱그려 말할 수 있게 되었다. 시간은 뾰족한 돌덩어리도 매끈한 조약돌로 연마하는 법이다.

최근 대만 작가 우밍이의 연작소설집 ‘햇빛 어른거리는 길 위의 코끼리’에 빠져들게 된 건 거기에 등장하는 공간 때문이었다. 소설의 배경은 1961년 건설되어 1992년 철거된 타이베이(臺北)의 대형 상가 중화상창이다. 육교로 연결된 여덟 개의 동으로 이루어진 상가는 타이베이의 랜드마크로 한 시대를 풍미했다. 소설을 읽다 보면 진작 사라진 공간이 경험 없는 추억을 건드린다고 할까, 낯설면서도 익숙한 얼굴에 매혹당한다. 상가에서 성장한 소년과 나는 사랑에 빠지고 말았다. 아니, 소년과 사랑에 빠진 사람은 지금의 내가 아니라, 시장통을 헤매고 다니던 소녀였다. 닮았지만 다른 두 공간이 ‘금실’처럼 두 아이를 이어준 것이다.

공간 이야기를 하자니 여의도를 빼놓을 수 없게 되었다. 한강 작가가 말한 대로 ‘이토록 고통스럽고 폭력적인 세계’에서 ‘동시에 세계는 이렇게 아름다움’을 단적으로 보여준 공간. 그곳에서 시민들은 ‘우리의 가슴과 가슴 사이 그걸 잇는 금실’의 실재를 선명하게 감각했다. K-팝 응원봉을 흔들며 새로운 시위 문화를 이룩한 청년들에게 훗날 여의도는 어떤 추억의 공간이 될까. 답이 빨리 나오길 기원한다. 참, 나도 응원봉을 마련했다. 자랑하자면 내 건 송골매다. 세대 통합이 별건가.

이경란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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