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미숙 논설위원

미국 이어 프랑스 독일 혼란 속
러·북 ‘불량국의 축’ 악성 진화
비상계엄 후 멈춰선 대한민국

캠프데이비드 합의 부정하며
북·중·러로 외교 선회 예고 野
尹은 외교 유산 지킬 결단해야


연말의 기류가 우울하고 답답하고 암담하다. ‘2024년은 대한민국을 비롯해 세계 각국에 끔찍한 해가 될 것’이라는 여러 기관의 예측대로 미국에선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이 재선됐고, 유럽연합(EU)의 양대 지주인 프랑스·독일은 내정 혼란에 빠졌다.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은 내각 불신임 사태 후 사퇴 압박을 받고, 올라프 숄츠 독일 총리도 연정의 사실상 붕괴로 인해 내년 1월 신임 투표를 앞두고 있다.

자유주의 국제질서 복원을 내건 조 바이든 미 대통령이 퇴장하는 상황에서 프랑스·독일 정국마저 폭풍전야인 것은 우리나라에도 중대한 도전이다. 유엔을 비롯해 나토(NATO)와 주요 7개국(G7)의 중심축 국가들이 흔들리면 한국의 안보와 경제도 위협받게 된다. 이 와중에 러시아와 북한이 중심인 ‘불량국가의 축(Axis of rogues)’은 우크라이나전쟁을 계기로 군사적으로 악성 진화 중이다. 중국 또한 대만에 대한 무력시위를 늘리며 핵·미사일 전력 확대에 골몰해 동북아 안보는 악화 일로다.

이런 상황에서 윤석열 대통령은 비상계엄으로 한국을 단번에 민주주의 모범국에서 쿠데타 우려국으로 강등시켰다. 본인의 ‘정치적 자폭’에 그치지 않고 한국까지 전방위 위기로 몰아넣었다. 미국은 살얼음판 같은 정권교체기인데 귀띔조차 하지 않은 채 군부대 이동 등 돌발 사태를 벌여 동맹 불신까지 자초했다. “TV를 통해 계엄 발표를 알게 됐다”는 제이크 설리번 미국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의 말엔 윤 정부를 더 이상 신뢰할 수 없다는 분노가 깔려 있다.

계엄 파동으로 인해 윤 대통령의 외교·안보적 성과도 빛을 잃게 될 듯하다. 미·일에서 ‘노벨 평화상감’으로 평가됐던 윤 대통령의 한일관계 정상화는 물론이고, 지난해 8월 한·미·일 정상의 ‘캠프데이비드 합의’도 휴지 조각이 될 위기다. 일본의 지도자 기시다 후미오(岸田文雄)는 지난 10월 1일 총리직에서 사퇴했고, 바이든 대통령은 내년 1월 20일 백악관을 떠난다. 윤 대통령이 유일하게 캠프데이비드 합의를 지속시킬 지도자였지만, 이제 그 가능성도 사라졌다.

2022년 한국 대선은 동북아 지정학에 가장 중요한 선거로 불렸다. 문재인 정부 때의 친중·친북 지속이냐 탈피냐를 결정짓는 전환적 선거였다. 윤 대통령 취임 직후 바이든 대통령이 방한한 배경엔 한국의 자유 진영 복귀 축하 뜻이 담겨 있다. 윤 대통령의 대일(對日) 이니셔티브에 화답해 바이든 대통령이 한일 정상을 캠프데이비드로 초청한 것은 한·미·일 3국 체제를 제도화하겠다는 의지다. 미국·일본·인도·호주의 쿼드(Quad)와 더불어 한·미·일 공조를 아시아 안보 중심축으로 삼겠다는 구상이다.

캠프데이비드 합의는 한·일이 미국과 함께 과거를 넘어 미래로 간다는 의지를 문서에 담았다는 점에서 ‘동아시아판 아브라함 협정’으로 볼 수 있다. 트럼프 1기 행정부 때 시작된 이스라엘과 아랍 국가들과의 수교 이니셔티브는 바이든 행정부에서도 지속됐다. 트럼프 당선인은 바이든 대통령과 정치적 관점은 다르지만, 북·중·러 위협에 대응하기 위해 한·일과의 공조 강화 조치에 나설 것이다. 캠프데이비드 합의가 바이든 대통령의 유산이라 해도 아브라함 협정처럼 심화시킬 게 분명하다.

야당은 윤 대통령 1차 탄핵소추안에서 북·중·러 적대시와 일본 중심 외교를 소추 사유로 명시했다. 2차 탄핵안에선 빠졌지만, “중국에 셰셰하면 된다”는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의 인식이 그대로 반영된 것이다. 윤 정부의 외교 업적을 부정하면서 일본의 과거사 반성 부족을 핑계로 북·중·러 편으로 선회하겠다는 꼼수다. 트럼프 2기 시대 한국이 친중·친북·반일로 회귀한다면 한미동맹은 파탄 위기에 내몰릴 것이다.

윤 대통령은 이제부터 역사를 응시하며 할 일을 해야 한다. 절체절명의 위기 때 부모는 아이를 살리려 사력을 다한다. 윤 대통령도 자신의 분신인 외교 유산을 지키기 위해 그렇게 해야 한다. 한국의 북·중·러 선회 차단과 한·미·일 협력체제 수호가 핵심이다. 그래야 훗날 ‘윤 대통령이 야당의 비토크라시와 충돌해 정치적 파산을 했지만, 미래지향적 외교 덕분에 한국이 글로벌 리더십을 확장할 수 있었다’는 평가를 받을 수 있다. 내년은 한일 국교정상화 60주년이다.

이미숙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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