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우 오경화. 사진=김남준 PD
배우 오경화. 사진=김남준 PD


최근 인기리에 종영한 tvN 드라마 ‘정년이’를 통해 안방극장 시청자들에게 눈도장을 확실히 찍은 배우가 있다. 주인공 윤정년 역의 김태리와 찰떡 케미스트리로 1화부터 눈길을 사로잡은 배우 오경화다. 윤정년의 언니 윤정자 역으로 출연한 그는 팍팍한 현실 속에서도 꿈을 잃지 않고 국극 무대에 서겠다는 동생 정년이를 위해 엄마를 설득하는 K-장녀 역할을 소화해 시청자들의 눈시울을 붉혔다.



오경화의 연기는 연기라기보다 극 중 인물 그 자체였다는 평가가 첫 방송부터 쏟아졌다. 자연스러운 말투와 눈빛으로 인해 각종 커뮤니티에는 ‘도대체 저 배우가 누구냐’, ‘정자의 눈물에 나도 울었다’는 글들이 잇따라 올라왔다. 직전 전파를 탄 ENA 드라마 ‘나의 해리에게’에서도 열연을 펼쳐인지, 연이어 시선을 사로잡는 그의 연기에 놀랍다는 반응도 터져 나왔다. 그런 칭찬이 어색하다는 오경화는 “연기는 다 같이 만드는 것이라 생각한다. 제 앞에 계신 분들은 물론, 카메라 뒤에 계신 분들도 연기에 영향을 준다”며 “그분들 덕분에 그렇게 연기할 수 있었고 연기를 잘 봐주신 분들께도 감사하다”고 말했다.
사투리를 연기를 위해 엄마역 문소리, 김태리 배우와 목포 3박 4일 ‘어학연수’까지 다녀왔다는 오경화. 이런 노력 덕분에 더 밀도 있게 정자 캐릭터를 완성할 수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추운 겨울이지만, 오경화 인생에는 봄이 왔다고 할 수 있겠다. 배우로서 주목을 많이 받고 있는데 소감이 어떤가.
=20대 어느 날, 어쩌다 연기가 하고 싶어 배움의 길로 접어들고 이 자리까지 왔는데 사실 처음 누군가 저를 알아봐 준 건 드라마 ‘하이에나’였다. 그 뒤로도 야금야금 독립영화 등을 했기에 알려졌다고 생각했지만, 제 생각과 달리 제 대표작은 정년이었다(웃음). 특히 정년이와 나의 해리에게가 같이 공개되면서 저라는 배우가 더 알려지게 된 것 같다. 너무 감사한 나날이다.

-드라마 정년이가 종영했는데, 정년이 언니 정자 연기에 대해 호평이 많았다.
=저는 제 연기에 야박한 편이다. 어떤 작품을 하든 아쉬운 점이 항상 있다. 그래서 정자 역도 그렇고 나의 해리에게의 김민영 역도 더 재미있게 할 수 있었을 텐데, 조금 더 여유 있었으면 어떠했을까 그런 생각을 한다. 다만, 연기를 하고 나면 저는 그 캐릭터를 배에 실어 떠나보냈다고 여긴다. 아쉬움은 남지만, 그렇다고 후회하진 않는다. 저 순간의 윤정자와 김민영은 저랬구나, 그런 생각을 할 뿐이다. 오히려 이런 인터뷰 자리에서 나의 연기를 돌아보고 그런 호응을 전해주심에 감사함을 더 느끼곤 한다.

-주변 반응은 어떤가. 부모님도 좋아하실 것 같다.
=제가 먼저 댓글을 본 건 아니고 지인분들이 캡처해서 SNS로 전달을 많이 해줬다. 저는 제가 친구가 없는 편이라 여겼는데 수 많은 친구들이 있더라(웃음). 친구들에게 고맙고 미안하고. (오경화는 저 순간 카메라를 보며 친구들을 향해 “친구들아 너희의 존재를 늘 떠올릴게, 고마워”라고 말했다.)
‘정자를 보며 같이 눈물을 흘렸다’는 반응이 유독 기억에 남는다. 제가 하고 싶었던 연기는 그런 공감, 소통이었다. 그것이 순간 이루어졌다는 생각에 감동을 받았다.
어머니는 정보의 바다에 계신다. 제가 모르는 부분까지 다 알고 수집해오셔서 저에게 전달해 주시는데 좋아하시는 것이 느껴진다. 아버지는 차분히 별말씀이 없으시지만, 누군가 저에 대해 물어 보면 대답을 해주시는 것으로 표현을 대신한다.
아, 아버지와 이런 일화가 있다. 정년이 1화에 빨래터 장면이 나오는데 아버지가 전화를 걸어와 방망이질 연기가 어색했다고 하셨다. 저는 그 말에 정확히 어떤 부분이 어색했는지 물었고 그 전화 마지막에 아버지가 “그래야 너가 밥을 먹고 살지”라고 했다. 디테일을 신경을 써야 좋은 연기자가 될 수 있다고 조언하신 것 같다.

-배우로서 체감하는 변화가 있나.
=아직 큰 변화는 없다. 다만, 최근 개봉한 영화 ‘1승’에 제가 잠깐씩 나온다. 지난달 말 포토월 행사가 있어서 대기하고 있는데 감사하게도 정영주 배우님이 저를 알아봐 주시더라.

-정년이 드라마 이야기를 좀 더 해보면, 김태리·문소리 배우와의 호흡이 좋았다.
=두 배우 모두 일, 연기에 충실하신 분이다. 연기는 물론이고 삶의 태도에 있어서도 배울 점이 많은 분들이였다. 배우로 이런 대답은 직무유기처럼 보일 수도 있는데 두 분이 워낙 연기를 잘하시는 분들이라, 처음에 제가 좀 얹어갈 수 있겠다고 생각했었다. 실제로 정자를 오롯이 담아내지 못하는 순간도 있었는데, 두 분 연기에 자연스럽게 실려 갈 수 있었다.

-세 분의 연기 호흡에 3박 4일간 진행된 일명 ‘목포 어학연수’도 도움이 된 거 같다. 광주 출신인 것으로 아는데 극 중 인물의 사투리를 정확히 표현하기 위해 목포에 간 것으로 아는데.
=목포 어학연수는 김태리 언니(실제 김태리가 오경화보다 1살 위다)가 처음에 제안했다. 어학연수라는 표현도 태리 언니가 썼는데 재미있어서 저도 언제부턴가 그 표현을 쓴다. 광주와 목포 사투리가 미세하게 다르다는 걸 저도 알고 있었고 직접 가서 몸으로 느끼는 경험이 다를 것 같았는데 진짜 큰 도움이 됐다. 목포의 에너지가 남달랐다. 경로당, 버스터미널 등 사투리가 많이 들리는 곳에 가서 듣고 녹음하고 귀가 트이는 연습을 했다.
같이 지내는 기간 동안 편안한 대화를 주고 받으며 정년이와 정자로 스며들 수 있었다. 같은 숙소에 머물면서 요리도 해주셨고 홍어도 나눠 먹고 했다. 언니들이 외식을 많이 사주셨다.

배우 오경화. 사진=김남준 PD
배우 오경화. 사진=김남준 PD


-기차역에서 정년이를 떠나보내는 장면이 많이 회자 됐다.
=그 장면은 정자부터 찍었다. 정자를 연기하면서 제가 많이 울었고 감정이 너무 나왔다. 대본에 울면 안 된다는 지문이 있는 건 아니었지만, 제가 좀 참았더라면 그 에너지가 눈물로 빠져나가지 않고 태리 언니에게 갔을 텐데 하는 생각을 했었다. 또 하나, 태리 언니가 제가 연기할 때 정년이 그 자체로 존재해주었는데 그 장면은 카메라에 담기지 않고 제 눈에만 담겼다는 점이다. 아직도 그 표정과 연기가 생생하다. 다소 엉뚱하지만, 내 눈이 카메라였다면 하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배우 문소리는 ‘추월만정’을 직접 불러 화제가 되기도 했다. 같이 연기하면서 느낀 점은.
=목포에 머물 당시 문소리 언니와 대화할 기회를 많이 얻었다. 연기로 이미 존경하는 분이셨지만, 삶의 태도와 관련해 해주시는 말씀 하나하나가 새겨들어야 할 부분이 많았고 ‘저런 삶을 살고 싶다’고 여기게 됐다. 여유를 잃지 않고, 매 순간 최선을 다하시면서 밀고 나가는 느낌이었다.

감정적인 상태로 무언가를 바라보지 않고 이성적으로 사물을, 또 상황을 보시더라. 그 점이 인상 깊었다. 배우를 할 때 편협하지 않으려면 계속 조절을 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추의 저울처럼 오가면서도 중심을 잃지 않는 게 어려운데, 그런 점을 문소리 언니에게서 느꼈다. 시청자에게 해답을 주기보단 해석을 낳을 수 있는, 이른바 틈을 남겨놓는, 배우가 되어야 한다고 생각해왔는데 소리 언니, 태리 언니 모두 그런 배우였다. 그분들의 인생에 조금이나마 녹아 들어간 것이 제게 행운이다.

-정년이에서 이번에 해보지 못한 다른 욕심 나는 캐릭터가 있다면.
=무조건 매란국극단 단원이다(웃음). 소리도 하고, 연기도 하고, 춤도 추고 칼도 휘둘러보고. 다양한 역할을 해보고 싶다.

-이제 배우 오경화의 삶에 대해 좀 이야기해보겠다. 원래 대학 때 연기 전공이 아니었다고.
=광주에서 정보기술(IT) 쪽 전공으로 대학을 다니던 중 대학 교류제도로 서울에 잠시 올 기회가 있었다. 홀로 한 학기 정도 보내며 외로움과 공허함을 느낄 무렵 그 고독 속에서, 배우와 연기에 대한 관심이 생겼다.

드라마 ‘해를 품은 달’이 TV에 나오는데 장영남 배우가 나오더라. 죽음을 맞이하는 장면이었는데 아주 안타깝고 아픈 장면이었는데도 제 눈엔 눈동자 그 너머 행복해하는 눈빛이 읽혔다. 연기에서 오는 희열이라고 해야 할까. 그걸 느낀 순간 이 감정을 놓치면 안 되겠다 싶더라. 광주에 내려오자마자 저도 모르게 배우학원에 등록했다. 더도 덜도 말고 딱 한 번만 연기를 해보자 하고 시작했는데 그때 이후로 쭉 배우의 길을 걸었다.

-1년에 한두 편 이상 꾸준히 작품을 해왔다. 그래도 포기하고 싶었던 순간은 없었나.
=작품 활동을 하긴 했지만, 단역을 할 때 아르바이트도 많이 했다. 그런데 제가 일머리가 없더라(웃음). 가장 길게 한 게 약 13개월 정도 일한 간장게장 전문점이었다. 그때 이모님들이 밥도 챙겨주시고 잘해주셨다. 형편이 넉넉하지는 않았지만, 그리 부족하지도 않았다. 제게 스크루지 같은 면모가 있다. 없으면 없는 대로 잘 견딘다.
어떤 배우들은 그만둘 생각을 전혀 해본 적 없다고 하시더라. 그런데 저는 매일같이 이 직업을 그만둬야 하나 생각을 한다. 달이 달의 뒤편을 보지 못하듯 저도 저를 제대로 보지 못한다. 그래서 ‘진정 너가 원하는 게 뭐냐’고 묻는다면, ‘매일 그만두고자 한다면서 왜 안 그만두냐’ 물으면 저도 할 말이 없다. 저를 끄집어 내서 스스로에게 질문을 던지고 거기에 이렇게 답했다. “미안한데, 아직은 좀 찝찝해. 그래서 조금 더 해보자 이런 마음이야.” 포기의 순간에 저를 붙잡은 건 그런 마음인 것 같다.

-어떤 배우로 남고 싶은지.
=어떤 직업적인 이름으로 존재하고 싶지는 않은 것 같다. 우선은 인간 오경화로 하루하루 잘 살아나가고 싶다. 눌리면 눌리는 대로, 행복하면 행복한 대로. 상황마다 즐기며 유연하게 살아나가는 게 지금의 목표다. 크게 흔들리지도 않고, 또 흔들려야 할 때는 적당히 흔들리면서.

-마지막으로 하고 싶은 말은.
=배우 오경화로 시청자분들, 팬분들을 만날 수 있어 저한테는 매우 귀중한 기회다. 저는 이후에 또 변할 수도 있고 유지될 수도 있다. 지금 이 순간만 유효한 이야기일 지도 모른다. 그렇지만 이 순간에 충실히 살아나가고 있음을 알아주셨으면 좋겠다.
지금도 지하철 탈 때나, 버스 탈 때 많은 분을 만난다. 그 분들의 삶을 몰래 염탐하고 있다. 제가 도움을 얻는 일도 많다. 그 분들의 삶을 응원하고 저에게도 응원을 보내주시기를. 다시 한 번 감사드린다.

곽선미 기자
곽선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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