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봄 대비 폐지수거량 35% 줄어
모아둔 폐지 서로 가져가 싸움도
서울 양천구 일대에서 20년째 폐지를 줍고 있다는 김영규(79) 씨. 그는 최근 한 무인매장 앞에 있는 50㎝ 높이의 폐지 더미를 실으려 15걸음 정도 떨어진 곳에 리어카를 세워놓고 폐지를 주우려다 뒤늦게 도착한 다른 노인이 폐지를 채가는 모습을 목격했다. 화가 난 김 씨는 “임자가 있으면 그냥 지나가야지!”라며 언쟁을 벌였다. 김 씨는 “폐지 근처에 리어카가 있으면 그냥 지나가는 게 이곳의 규칙”이라며 “경기가 나쁘니 팔아봤자 1000원밖에 안되는 폐지까지 뺏으려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13일 서울 지역 고물상 등에 따르면 장기 불황 여파로 폐지 줍는 노인들 사이에서 ‘폐지 쟁탈전’이 벌어지고 있다. 자영업자들이 거리에 내놓는 쓰레기가 급감하면서 이를 차지하기 위한 경쟁이 치열해지면서다. 고물상 직원 이하신(55) 씨는 “올봄에 비해 들어오는 폐지 양이 35% 정도 줄었다”고 말했다.
5년째 폐지를 줍고 있는 장명자(81) 씨도 지난 2일 자신의 텅 빈 리어카를 보고 혼비백산했다. 아픈 몸을 이끌고 전날 오후 7시부터 이날 오전 1시까지 양천구 일대를 돌며 버려진 옷가지와 폐지를 모아놨는데, 모두 사라졌기 때문이다. 장 씨는 “아침에 고물상에 팔려고 하니 누군가 훔쳐갔었다”며 “CCTV를 봤지만 리어카가 사각지대에 있어 범인을 찾지 못했다”고 토로했다. 고물상을 운영하는 김진덕(45) 씨는 “노인들 사이에서 폐지를 훔쳐가는 일이 최근 들어 빈번해졌다”며 “많을 때는 하루에 2∼3명의 노인이 억울함을 토로하고 간다”고 말했다.
폐지수집 노인들은 “쓰레기 보기가 금 같다. 길거리에 휴지 한 장 없다”고 입을 모았다. 15년째 폐지를 수거하고 있다는 나모(81) 씨는 “요즘 파지는 물론 쇼핑카트에 꽂아놓은 전단지 같은 것들도 다 빼가서 순식간에 사라진다”며 “요즘 경기가 참 안 좋다는 뜻”이라고 한숨지었다. 홍모(83) 씨 또한 200m 남짓의 거리를 가리키며 “여름만 해도 박스 10개는 나오던 거리가 요즘에는 3개 나오면 다행일 정도”라며 “1500원이 아까워 핫팩도 못 사고 비닐장갑을 끼고 폐지를 줍고 있다”고 말했다.
지난 7월 보건복지부가 발표한 ‘폐지수집 노인 전수조사’에 따르면 전국 폐지수집 노인은 1만4831명으로, 이들의 월평균 소득은 기초연금까지 포함해 76만6000원에 불과하다. 정순둘 이화여대 사회복지학과 교수는 “폐지수집 노인의 생활 수준을 면밀히 조사해 지원이 필요한 이들에게는 적극 지원해야 한다”고 말했다.
노수빈·노지운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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