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우람 작가의 ‘우나 루미노(Una Lumino)’. 금속, 모터, LED 등 사용. 520×430×430㎝, 2008.
최우람 작가의 ‘우나 루미노(Una Lumino)’. 금속, 모터, LED 등 사용. 520×430×430㎝, 2008.


■ 세계로 가는 K-조각의 미래Ⅱ - 평론가 대담 <시리즈 끝>



진행 및 정리 = 박동미 기자 pdm@munhwa.com

‘세계로 가는 K-조각의 미래’의 두 번째 시즌을 마무리하며, 지난 12일 서울 중구 문화일보사에서 강은주 미술사학자, 홍경한 미술평론가, 최태만 국민대 예술대 교수가 한국 조각의 현주소를 짚고, 가능성을 논했다. 한국 조각의 ‘허리’에 해당하는 12인의 조각가를 집중 조명한 이번 시리즈에 대해 이들은 ‘K-조각’의 저력을 확인할 수 있는 귀한 시도였다고 평했다. 디지털 기술이 고도화할수록, 아날로그 가치가 강조되는 기류는 예술과도 닿아있다면서, 한국 조각의 고유성과 독창성이 21세기 현대미술로서 충분히 경쟁력이 있다고 강조했다. 시리즈는 문화일보와 크라운해태가 공동 기획했으며, 이날 대담은 윤영달 크라운해태제과 회장도 참관했다.

―‘세계로 가는 K-조각의 미래’가 벌써 두 번째 시즌이 종료됐다. 이번 시리즈를 어떻게 봤나.

△강은주 미술사학자(이하 강 사학자) = 새 글이 나올 때마다 재빠르게 찾아봤다. 한국 조각의 ‘허리’라고 들었는데, 정말로 그랬다. 진즉에 조명했어야 할 조각가들이 신문 지면에 소개된 것을 보며 감회가 새로웠다. 흥미롭고 의미 있는 기획이어서 미술계의 한 사람으로서 기뻤다. ‘K-조각이란 뭘까’ 자문하며 지켜봤는데, 그것이 의의가 아닐까. 한국 조각의 고유성에 대한 담론을 이끌어 내는 그 출발로서 말이다.

△홍경한 미술평론가(이하 홍 평론가) = 12명의 조각가를 12명의 평론가가 각자의 방식으로 해석한 점이 신선했다. 작가의 작업 방식이 전부 다르듯, 평론가들도 접근하는 방식이 다르다. 작가 소개와 작품 해설도 좋지만, 그러한 지점까지 파고든 형식이 특별해서 더 눈길이 갔다. 작품에서도 글에서도 고유한 목소리가 들렸다.

△최태만 국민대 예술대 교수(이하 최 교수) = 한국 조각의 정체성이 모호하다고들 하지 않나. 이번 기획 연재와 같은 시도가 그 정체성을 만드는 과정이라고 생각한다. 어떠한 규정을 애써 찾으려 하는 것보다, 이러한 성과물이 모이면 자연스럽게 우리만의 정체성, 고유성과 독창성이 드러날 것이다.

신미경 작가의 천사상 비누 조각 작품.
신미경 작가의 천사상 비누 조각 작품.


―‘K-조각’이 뭐라 생각하나. 실체가 있는가.

△최 교수 = 현실만 보면 한국 조각은 굉장한 위기다. 대학에서 조각 전공이 사라지고, 힘든 작업으로 기피된다. 작품의 부피, 작업 공간에 대한 부담이 있는 것도 사실이다. 그나마 조각을 지탱해 온 것은 공공미술의 한 형태인 환경 미술인데, 그것 역시 대중 취향에만 부응하다가 질적인 빈곤 상태다. 그렇다면, 시대의 흐름에 따라 소멸하는 듯 보이는 조각을 내버려둘 것인가. 그건 안 된다. 정통 조각의 고유한 특징과 매력이 있고, 그것은 사라지지 않는다. 이를 유지하고 발전시키기 위한 방안을 찾기 위해 이번 시리즈도 존재했다고 본다.

△강 사학자 = 그 실체는 좀 더 깊은 논의가 필요하지 않을까. 위기는 기회라고 했다. K-조각을 제대로 생각해 볼 때다. 지난 10월 런던 프리즈에서 마스터스 섹션에 대대적으로 정통 기법의 조각들이 전시된 것을 떠올려 볼 필요가 있다. 아트페어인 프리즈는 상업적인 행사인데, 조각의 물성에 주목했고, 전통적 기법을 고수하는 현대 작가들을 조명했다. 동시대 조각의 가치가 충분히 공유되고 있다는 의미다. 그런 면에서 K-조각의 실체에 대해 고민하는 노력이 더 필요하다.

― 실체가 더 논의돼야 하는 K-조각 가능성과 희망은 있는가.

△홍 평론가 = 조각계가 처한 상황은 열악한데, 미술계 안팎에서 모두 그걸 인식하고 있다. 그래서 이러한 기획도 나왔으니, 그것만으로도 희망과 가능성을 본다. 작가뿐 아니라 비평가의 입장에서도 어려운 상황인데, 이번 연재가 그들에게 비평의 무대도 열어준 셈이 됐다. 뉴미디어, 다양·다원주의 시대에 물성과 재료에 집중하는 전통적 맥락으로 해석할 수 있는 조각들은 소외되고 있다. 그러나 전통의 흐름 위에서 새로운 것들이 만들어지는 것이기에, 다시 소환하고 조명할 필요가 있다. 그때, 균형 잡힌 시선으로 뉴미디어와 전통을 비교 분석할 기회가 생긴다.

△최 교수 = 자꾸 뭔가를 정의하려 들면 실패한다. 한국 조각에도 분명 ‘무언가’가 있는데, 그걸 이론적으로 제시해봤자 설득력이 없다. 최근 아주 희망적인 사례가 있다. 아르헨티나에서 평생 작업하고 귀국한 김윤신 조각가의 귀국 전시가 주목을 받더니, 급기야 올해 베니스비엔날레까지 가게 됐다. 김 작가의 작품은 아주 전통적인 조각 작업인데, 그것이 굉장히 호소력이 있었다. 이게 아주 좋은 신호가 아닐까. 분명 그 장르만의 매력이 있는 것이다.

△강 사학자 = 이번 시리즈에 내가 쓴 편은 이수경과 그의 작품 세계에 관한 것이었다. 이수경뿐만 아니라 비누 작업을 하는 신미경 작가도 그렇고, 한국 조각에 지금 여성 작가들이 신선한 바람을 불러일으키고 있는 듯하다. 현대 미술 작가를 하나의 범주 안에 가둘 수 없지만, 한국 조각의 자장 안에 강서경, 이미래 등 재료와 기법의 발굴을 주도하는 여성 작가들이 많다. 따라서 K-조각도 한국 미술도 전망이 밝다.

이재효 작가의 ‘0221-1110=114013’, 350×350×350㎝, 2014.
이재효 작가의 ‘0221-1110=114013’, 350×350×350㎝, 2014.


― K-조각의 미래를 위해 작업이나 전시 현장에서, 혹은 정책적으로 시급한 것이 있다면.

△강 사학자 = 12인의 작가 중 여성 작가가 2명뿐인 건 아쉬웠다. 국내외에서 활발하게 활동하는 여성 작가들을 더 많이 알려줬으면 한다. 또, 조각과 관련한 다양한 행사나 전시들이 있지만, 정말 재밌고 흥미로운 전시를 자주 만나지 못하는 것 같다. 아르헨티나에서 귀국한 김윤신 작가가 평단이나 대중의 지지를 동시에 얻고 있는데, 시대와 세대를 아우르는 한국 여성 조각가 전시를 기획해 보는 것도 좋을 듯하다. 물성과 조형의 측면에 집중하면서도 흥미로운 시선으로 접근하는 그런 것 말이다.

△홍 평론가 = 현재 한국은 상업미술이 지배하는 상황이고 쉽게 개선될 것 같지는 않다. 거대한 흐름을 되돌리기엔 너무 많은 에너지가 필요하기 때문이다. 그러한 가운데 조각의 가치와, 그를 통한 작품관, 세계관을 지키기 위해 애쓰는 작가들을 좀 더 집중 조명하고, 존경의 시선을 보내줘야 할 것 같다. 또, 여전히 조각을 장식적 역할로 여기는 경향이 짙은데, 예술이 가진 사회적 역할에 관심을 둔 작가와 작품을 좀 더 비중 있게 소개해 주었으면 한다. 예술과 예술가는 사회에서 하나의 등불이 될 수 있고, 나침반이 될 수 있다. 그 안에서 K-조각의 가능성을 타진해 볼 수 있을 것이다.

△최 교수 = 작가와 작품 지원도 중요한데, 결국 이는 누군가의 기록이 있어야 알려지고, 규정된다. 그런 면에서 이번 시리즈의 역할도 의미 있는 것인데, 앞으로는 연구자에 대한 지원도 늘었으면 한다. 한국 근대 이후 조각을 정리한 책이 딱 한 권밖에 없다. 그마저 15년 전에 나온 것이다. 또, 조각이 미술관이나 공원에만 있는 것이 아님을, 우리 일상에, 삶에 가까이 있음을 느끼도록 해주는 작업들이 필요하다. 그것은 자연스럽게 글로, 전시로, 책으로 보여주는 것들이 아닐까.

이길래 작가의 ‘세 뿌리를 가진 소나무(Pine Tree With Three Root) 2015-1’, 250×193×150㎝, 2015.
이길래 작가의 ‘세 뿌리를 가진 소나무(Pine Tree With Three Root) 2015-1’, 250×193×150㎝, 2015.


―K-조각을 응원하는 차원에서, 세 번째 시리즈에 제언을 한다면.

△홍 평론가 = 시리즈를 공동기획한 문화일보와 크라운해태, 평론가들은 K-조각을 위한 임시 공동체다. 공동체 차원에서 ‘다음’까지 염두에 두면 어떨까. 즉, 연재 후의 창작 활동까지 고민하는 기획이 되면 좋겠다. K-조각을 해외에 알린다면, 평론가들이 만드는 담론이 관건이다. 연계 프로그램을 만드는 것도 도움이 될 것이다.

△최 교수 = 시즌 2에 소개된 작가들은 인지도가 높은 편이다. K-조각을 대중에 알린다는 측면에선 효과적이지만, 발굴의 재미는 없었던 것 같다. 세 번째 시즌은 기획의 방향을 좀 더 명확히 하면 좋겠다. 발굴이 목표가 아니라면, 기존 조각가를 재평가하는 방식을 택하면 어떨까. 미술계에 새로운 언어를 가져오기 위해서 말이다. 또, 거시적 관점에서 K-조각의 현재와 미래를 염두에 둔 평론의 장으로서 존재하기를 바라본다.

△강 사학자 = 시리즈의 제목에 ‘세계로 가는’이란 표현이 있다. 이를 좀 더 구체화했으면 한다. 해외 미술관, 박물관 등에 알린다고 한다면 영문판 도록도 필요할 것이다. 또, 입체미술, 개념미술이라고 하는 현대 미술의 장에서 작가들이 어떻게 전통적인 조각을 수용하고, 새로운 방향을 모색해 나가고 있는지, 변화하는 양상까지 다룰 수 있다면 훨씬 더 풍부한 이야기를 들을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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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동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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