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531년(중종 26) 우리나라 최고의 전국 지리지인 ‘신증동국여지승람’(25책)이 간행되었는데, ‘동람도(東覽圖)’라고 불리는 우리나라 전도 1장과 도별지도 8장이 수록돼 있다. 책의 두 면 크기에 맞게 전도를 그렸기 때문에 전도는 남북보다 동서가 더 길게 보이고, 거리와 방향의 정확성은 고려하지 않았다. 도별지도는 왜곡이 더 심하다. 면적에서 큰 차이가 나는 8도를 모두 동일한 크기의 종이 안에 그려 실제 면적과 거리를 비교해 가늠할 수가 없다.
하지만 장점도 많다. 크기가 작아 펼쳐 보기에 편하고 일반 양반들이 필요로 하는 최소한의 공간 정보를 간단하면서도 체계적으로 담았다. 그래서 1500년대 후반부터 전도와 도별지도 9장만 독립시킨 목판본의 지도책이 등장했고, 1600년대부터는 세계지도인 원형천하도와 중국, 일본, 류큐(琉球)의 지도 4장을 합한 13장의 지도책이 다양한 목판본과 필사본으로 유행했다. 조선에서 가장 많이 이용된 최고의 인기 지도책으로, 현재도 국내외에 수백 점이 넘을 정도로 흔하게 전해지고 있다.
지금까지 ‘동람도’와 그것을 기초로 만든 지도책 계통을 나름 자세하게 설명했는데, 이 글의 원래 목적은 여기에 수록된 섬 하나를 소개하는 것이다. 우리나라 전도와 도별지도를 작은 책 크기 안에 그렸기 때문에 상식적으로 동서와 남북 500m 안팎의 작은 섬은 그릴 수 없다. 그런데 그만 한 크기의 섬이 두 개 그려져 있다. 하나는 독도인 于山島(우산도)이고, 다른 하나는 태조 이성계의 증조부인 이행리가 여진족에게 쫓기다 피신하여 위기를 모면했다는 섬이다. ‘용비어천가’에는 이 섬을 ‘赤島불근셤’이라고 기록했는데, 불근셤을 한자 赤(붉을 적)과 島(섬 도)의 뜻을 빌려 赤島라고 표기한 것이다.
‘동람도’의 함경도 지도에는 ‘赤島’라고만 기록돼 있다. 여러분은 어떻게 읽겠는가? 용비어천가의 편찬자들은 ‘적도’라고 읽을까 봐 한글로 ‘불근셤’을 특별히 써주었다. 그 후 이런 친절함이 사라졌다.
국립중앙도서관 학예연구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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