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세동 논설위원

헌법 제103조는 ‘법관은 헌법과 법률에 의하여 그 양심에 따라 독립하여 심판한다’고 규정한다. 핵심 키워드는 ‘헌법과 법률’과 ‘양심’인데, 둘은 대등 관계가 아니라 종속 관계다. 헌법은 법관의 개인적 양심을 앞세우지 말고 헌법과 법률에 의거한 양심, 즉 직업적 양심을 따르라고 지시하고 있다. 헌법이 말하는 법관의 양심은 정치적 입장, 소신, 철학 등을 말하는 게 아니라 헌법과 법률에 따라 직업윤리에 충실한 재판을 하라는 당부다.

법관이 법 원칙이나 법조문, 확립된 판례에 따르지 않고 ‘하늘을 우러러 한 점 부끄럼 없다’며 개인의 당파적 입장에 따라 재판한다면 이미 판사라고 하기 어렵다. 현실의 법정에선 그런 일이 일어나지 않지만, 내 아버지가 피고인이라도 증거가 가리킨다면 무죄를 선고하지 않는 직업인으로서의 양심을 말한다. 법관이 헌법과 법률보다 자신의 양심을 앞세우면 민주주의의 토대인 법치주의가 무너진다. 김명수 대법원장 때 ‘재판이 곧 정치’라고 믿는 판사들이 득세했고, 일반인들의 법 감정과 상식에 부합하지 않는 정파적 판결이 많아졌다. 현직 판사가 문재인 대통령 비서로 가는 헌정사 유례없는 일도 잇달아 벌어졌다. 모두 법관의 직업적 양심에 반하는 일로, ‘법복을 입은 정치인’이나 ‘법원에 위장취업 한 운동권’이란 비판이 나왔다.

법관이 양심을 지킨다면, 별다른 새로운 증거가 나온 것도 아닌데 1·2심에서 유무죄가 극명하게 갈리는 일도 벌어지지 않는다. 분명 두 재판부 중 한 곳은 양심을 저버리고 주관적·정치적 입장 또는 확증 편향으로 판결한 것이다. 민감한 정치적 사건을 맡은 판사의 고향, 출신 대학, 정치 성향을 뒤지는 지경이 됐다. 모두 법관의 양심을 믿지 못해서 벌어지는 일이고, 원죄는 법원과 판사에게 있다. 고질병인 전관예우도 양심에 반하는 일이다.

지난달 25일 위증교사 사건 재판부가 위증한 김진성 씨에겐 유죄를 내리고 교사한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에겐 무죄를 선고하자 판결의 적절성에 대한 비판이 뜨거웠다. 이 대표와 민주당 지도부도 유죄 선고를 우려했는데, 독특한 논리로 무죄를 내렸다. 법관의 독립적 심판권은 판사 호주머니에 들어 있는 사유재산이 아니다. 산타클로스인 양 마음 내키는 대로 인심 쓰라고 준 권리가 아니다.
김세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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