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희수 논설위원

헌정사에 부끄럽게 기록될 불행한 사태가 속출한다. 상상도 못 했던 12·3 비상계엄과 대통령 탄핵소추는 단연 압권이지만, 야당이 주도한 감액 예산이라는 초유의 사태도 빼놓을 수 없다. 파장이 클 게 분명하다. 엎친 데 덮친 셈이어서 새해 국정 파행이 더 심각할 것으로 우려된다.

기이한 것은 윤석열 정부를 탓하며 예산 감액을 밀어붙였던 더불어민주당이 추가경정예산을 요구하는 점이다. 이재명 대표는 국회 탄핵안 가결 다음 날인 지난 15일부터 여야 대표가 만난 18일까지 거의 매일 신속한 추경 필요성을 강조했다. 앞서 우원식 국회의장은 예산이 확정됐던 지난 10일 바로 추경을 준비하라고 했다. 예산을 줄여놓고 해가 바뀌기도 전에 다시 늘리라니 앞뒤가 맞지 않는다. 내년 국정이 걱정되기는 하는 모양이다.

저의는 짐작이 간다. 민주당으로선 예산을 삭감(4.1조 원)함으로써 집권에 대비한 여유 자금을 확보한 측면이 있다. 어차피 내년 추경도 국회가 승인한다. 현 정부는 계획만 짜고 돈은 새 정부가 쓸 가능성이 크다. 민주당은 추경을 통해 고교 및 5세 무상교육(1.6조 원) 꼬리표를 붙여가며 줄였던 정부 예비비를 당초 정부안(2.4조 원)대로 복원하고, 끝내 불발됐던 이재명표(標) 지역화폐 예산(최소 1조 원)도 추가할 수 있다. 심지어 전액 삭감했던 대통령실·감사원·경찰의 특경비·특활비와 마약 등 수사경비(총 500억 원 상당), 대왕고래 예산(497억 원)까지 되살려 엉뚱하게 생색을 낼 수도 있다.

사실 내년 초 추경은 요건을 충족하지 못할 것이란 지적이다. 예상보다 많은 초과 세수가 생기면 세입을 늘리는 경정으로 추경이 가능하지만, 1%대 저성장에선 기대하기 어렵다. 정부는 아직 내년 경제 운용 계획도 못 세웠다. 그래도 경제가 비상이니, 어떻게든 추경을 추진할 개연성이 크다. 그러나 이 경우 적자 국채 발행으로 나랏빚은 더 늘게 된다. 벌써 정치권에선 이 대표를 두고 여의도 대통령이란 말까지 나온다고 한다. 민주당이 여당 행세를 하는 양상이지만, 여전히 책임감이 없다. 이러니 수권·집권 정당으로서의 적격성·자질에 여전히 의문 부호가 달리는 것이다. 여당도 야당도 좀처럼 개선 기미가 안 보인다. 새해에도 국민은 정치를 걱정해야 할 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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