빈 땅이 없다시피 한 서울에서 새 아파트 공급이라는 수확을 거두려면 오랜 시간과 노력을 들여 밭을 일구고 씨를 뿌려야 한다. 정비 구역을 지정하고 조합설립 인가가 나는 데까지만 10년, 20년씩 걸리는 재건축·재개발 사업지가 허다하다. 소유주들이 뜻을 모아 조합을 만드는 데까지 나아갔다고 해도 건축계획을 확정하는 사업시행인가와 조합원 분담금을 결정하는 관리처분계획, 이주·철거의 긴 터널을 통과하기까지는 수많은 암초가 존재한다. 조합과 비대위·조합과 공공기관 사이의 갈등, 상가나 종교 시설 소유자들의 알박기 등으로 사업이 좌초되거나 수년간 멈춰 설 수 있다. 인내의 세월을 지나 비로소 삽을 뜨려는데 시공사와의 공사비 갈등에 휘말리기도 하고 문화재나 거대한 암반, 오염토 문제가 튀어나오기도 한다.

쓰러져 가는 주택을 새 아파트라는 황금알로 바꾸는 작업은 이처럼 힘겹고 더디지만 기존 주택의 노화와 가구 증가로 생겨나는 수요를 충족하려면 필수적이다. 서울 새 아파트의 한 해 수요는 4만5000여 가구로 추산된다. 2010년부터 현재까지 평균 입주 물량은 3만5000가구 정도다. 공급 부족이 만성화되어 있는 셈이다. 그런데 최근 만성질환이 급성으로 악화 중이다. 2020∼2022년 사이 4만 가구를 넘었던 서울 아파트 착공 물량은 2023년 2만여 가구로 반토막(부동산R 114)이 났다. 올해는 1만6148가구(10월 기준)로 더 줄었다. 내년은 3만6000여 가구가 집들이를 하지만 2026년부터는 입주 물량이 1만 가구에도 미치지 않을 것으로 예상된다.

공급난은 아파트 가격을 끌어올릴 가능성이 높다. 물론 아파트값을 좌우하는 요인에 공급만 있는 건 아니다. 코로나19 이후 부동산 시장은 금리와 대출 규제에 보다 민감해졌다. 지난 9월부터 매매 대출이 강화되자 시세 오름폭은 둔화하고 있다. 미래의 어떤 정부든 서울 아파트로 과도한 유동성이 흐르는 것은 막으려 할 것이다. 하지만 한쪽 구멍을 막는다고 흐르는 물을 언제까지 가둘 순 없다. 흐르지 못한 물은 다른 쪽 구멍으로 새어 나오거나 한 번에 터질 지경으로 차오를 것이다. 주택담보대출을 틀어막으면 전세가 오르고, 전세가를 잡으려고 전세 대출을 조이면 월세가 폭등해 주거 부담이 가중되는 풍선효과가 우려된다. 2027∼2028년 공급난의 아비규환을 피하려면 혼란한 정국 속에서도 씨를 뿌려야 한다.
김영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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