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석주 시인

한 해가 저물면 내 맘은 멜랑콜리
멀어진 것들을 향한 그리움 맺혀

우린 숱한 끝 넘어 오늘에 닿아
오늘은 우리 인생의 가장 젊은 날

삶은 과거에 고립된 채 살지 못해
함께 살아 있음을 기뻐하며 웃자


해질 무렵 집을 나와 임진강과 그 너머 북한의 산야가 한눈에 들어오는 전망 좋은 데를 찾았다. 바람이 멎자 풀씨를 쪼며 재잘대던 되새 떼가 포르릉 날아간다. 인적이 없어 한적한 강변에서 황혼의 빛을 받으며 한참 동안 강물을 바라보며 서 있다. 문득 강물 앞에서 ‘물이여, 물이여, 밤낮을 쉬지 않고 흐르는구나, 모든 것은 이와 같구나’ 했다는 공자의 모습을 상상한다. 작년에도 올해도 흘렀을 강물이여, 만물은 너와 더불어 쉬지 않고 다시 흐르겠구나.

땡볕으로 정수리가 타들어 가던 여름이 엊그제 같은데, 어느덧 겨울이다. 12월의 끝은 한 해의 끝, 이는 새해의 시작과 맞물린다. 한 해가 저물 무렵 내 안의 추억과 멜랑콜리가 폭발한다. 지난날을 관조하는 마음에는 멀어진 것들을 향한 그리움이 맺힌다. 프랑스 작가 마르셀 프루스트에게 마들렌이 있었다면 내게는 늙은 어머니의 쿰쿰하고 감칠맛 나는 청국장이 있다. 스산한 초겨울 저물녘 늦은 밥상을 받고 목으로 넘기며 감탄을 하던 어머니의 청국장 맛은 결코 잊을 수가 없다. 돌아가신 어머니가 해주던 음식들, 내 미각에 새겨진 그 음식의 맛은 내 기억 속에 오래 남아 있을 것이다.

왜 옛날은 자꾸 돌아와서 그리움을 앓게 하는가. 세밑 인파와 흥겨움이 한 데 어울려 들썩이던 오일장 마당도, 가설극장 천막에서 흘러나오던 신명 나는 트럼펫 소리도, 그리고 소년 시절에 처음 듣고 놀랐던 파리 나무십자가 소년합창단의 ‘아베 마리아’도 내 그리움의 세목에 들어간다. 묵은해가 가고 곧 새해가 돌아온다. 우리는 생의 문턱을 넘고 숱한 끝을 넘어 오늘에 닿는다. 한병철은 그 문턱을 ‘시간 집약적 이행 지점들’이라고 말한다. 우리 생은 허들처럼 문턱들을 품고 있다. 그 문턱을 넘어서 나이를 먹고 나서야 비로소 새 지평으로 나아갈 수 있다. 나는 상류에서 흘러와 몇 굽이를 돌아 노년의 입구인 하류에 닿았다. 세월의 안쪽에는 우리가 숨 가쁘게 넘은 문턱들과 끝이 켜켜로 쌓여 있다.

새날이 밝으면 어제는 과거로 변한다. 나라는 존재는 과거-현재-미래라는 연속성 위에 서 있다. 그 누구도 현재에 머물러 있을 수는 없다. 현재는 이내 과거로 밀려나고 또 다른 현재가 그 자리를 메운다. 과거의 현존은 기억에 보존되지만, 우리는 과거에 고립된 채 살지는 못한다. 과거가 땅속에 숨은 뿌리라면, 현재는 그 뿌리에서 땅 위로 솟아난 줄기와 잎이다. 우리 안에 쟁여진 과거의 이러저러한 일화 기억은 추억의 원소들이다. 과거가 없다면 현재도 존재할 수 없는 까닭이다.



어떤 지점을 지나면 우리의 감정과 세계관, 즉 내면 형질이 바뀌어 버리는 탓에 그 전으로 회귀할 수 없게 된다. 우리가 지나친 그 지점이 생이 방향을 바꾸는 변곡점이었기 때문이다. 생의 변곡점은 숱한 우연을 뚫고 우리 삶의 한가운데로 직진한다. 그러는 과정에서 시간의 질서가 뒤틀리고, 예측하지 못한 파동이 일어난다. 그 파장에 따라 삶은 더 좋아지거나 더 나빠지거나 한다.

오늘은 우리 인생의 가장 젊은 날, 다시 오지 않을 좋은 날이다. 죽지 않고 살아 있으니, 우리는 열린 문과 송아지들과 어린 소나무들과 함께 살아 있음을 기뻐하며 맘껏 웃자. 올해 심장과 방광은 튼튼하고 폐와 위도 그럭저럭 건재했다. 하지만 먹다 남긴 사과는 갈변하고, 어제 신은 양말 한 짝은 어디론가 사라지고, 낡은 구두는 버려진다. 한 골목의 이웃들은 삶이 곤핍하고 하루 살기는 고단했다. 경제는 하강 국면에서 허덕이고 서민 가계의 실질 소득은 줄었다. 자영업자와 소상공인들은 불황을 견디다 못해 업장의 문을 닫았다. 지리멸렬한 정치로 황폐해진 민생이 민낯을 드러내고 있다.

곧 새해예요. 나와 결별 인사를 나누고 먼 곳으로 떠난 당신은 잘 있나요? 지금 우리가 지나는 오늘은 다시 돌아오지 않겠지요. 우리가 추억을 점화하는 동안 삭풍이 불고 하천은 얼겠지요. 눈발은 그치질 않고, 연사흘 내릴 때도 있겠지요. 한파가 맹수처럼 한반도를 가로지르면 설악산 대청봉도, 김제 만경평야도, 지리산 노고단도 폭설이 쌓이겠지요. 내설악 산양들은 눈 속에서 먹이를 찾아 헤매겠지요. 동네 길고양이들은 어디서 먹이를 구할까요? 중환자실 침상에 누워 있는 이의 무의식엔 어떤 기억이 파노라마처럼 펼쳐질까요? 겨울의 밤들은 왜 이리 어두운가요?

우리는 사냥개 스무 마리와 함께 국경에 도착한다. 우리는 묵은해와 새해 사이를 가로지르는 국경을 넘는다. 어린 딸은 웃자라 품을 떠났지만, 부엌을 지키는 조왕신은 여전히 그 자리에 있다. 지금은 서편으로 떨어지는 해가 어둠을 데려오는 시각. 보라, 어둠이 오고 있다. 칠흑 어둠 속 국경에는 별빛만 영롱하게 빛난다. 어둠 속에서도 별은 희망의 표상으로 반짝이는 것이다. 우리는 별을 보며 방향을 가늠하고 저마다의 길을 가야 한다.

당신은 고독한가? 고독을 두려워하지 마라. 고요하게 엎드려 산사나무의 가지들이 바람에 떨며 우는 소리에 귀를 기울여라, 빗방울처럼 서로에게 기대고 있는 동안 우리는 행복했다. 역마다 기차가 출발하고 항구마다 정박한 배들이 떠나는 이 시각, 부디 잊지 마라. 멀리 떨어져도 우리는 기쁨으로 손을 맞잡고 별 아래에서 윤무(輪舞)를 추어야 한다.

장석주 시인
장석주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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