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현종 논설위원

쥐×끼·부역자 난무하는 여당
尹 앞에선 침묵, 韓에겐 막말
배신자 낙인 두려워 오버 행동

보수는 더 이상 주류 세력 아냐
판도라 상자 연 尹 때문에 폭망
MZ세대 충격 크고 회복 난망


“쥐×끼처럼 아무 말 없이 당론을 따를 것처럼 해놓고 그렇게 뒤통수 치면 영원히 감춰질 줄 알았나.”(유영하) “민주당 부역자들은 덜어 내자.”(강민국) “신념과 소신으로 위장한 채 동지와 당을 외면하고 범죄자에게 희열을 안긴 이기주의자와는 함께할 수 없다.”(이상휘) 지난 14일 윤석열 대통령에 대한 국회의 탄핵소추안이 통과된 후 일부 국민의힘 의원이 탄핵 찬성 의원을 향해 내뱉은 말이다. 표결 직후 의총에서는 한동훈 대표를 향해 대구·경북(TK) 지역 두 명의 의원이 물병을 던졌고, 대구가 지역구인 권영진 의원은 자리를 박차고 연단으로 돌진했다고 한다. 어느 의원은 돌아가며 탄핵에 찬성했는지 반대했는지 고백하자고도 했다. 홍준표 대구시장은 탄핵 찬성파 의원을 ‘레밍’이라는 동물에 비유했다.

이런 발언이나 행동을 한 의원들은 대부분 텃밭인 TK 출신들이다. 아마 이런 행동을 했다는 기사가 나가는 게 나쁘지 않고 오히려 지역구엔 도움이 될 것으로 생각할지 모른다. 다음 총선 때 “나는 배신자가 아니라 의리남”이라고 홍보할 것이 자명하다. 정작 이들 중 누가 윤석열 대통령의 이해할 수 없는 계엄령에 대해 비판했다는 얘기를 들어본 적이 없다. 지난 4일 새벽 계엄령 해제를 위해 본회의 투표에도 참석하지 않은 이들이다. 권력자 앞에서는 고개도 들지 못하고 비판 목소리를 내지 못하는 이들이 한 대표와 탄핵 찬성파 의원들 앞에서는 아주 용감한 행동과 말을 서슴지 않는다.

국민의힘 인사들은 2016년 박근혜 대통령에 대한 탄핵 이후부터 ‘배신자’ 낙인을 가장 두려워한다. 당시 탄핵에 앞장섰던 김무성·유승민 전 의원 등이 정계에서 사라진 것을 들어 ‘의리’를 강조한다. 윤상현 의원이 김재섭 의원에게 “탄핵 반대해도 1년 지나면 다 찍어주더라”고 했던 충고도 같은 맥락이다. 배신자 광풍이 불다 보니 이후 ‘남·원·정(남경필·원희룡·정병국)’ ‘미래 연대’ 같은 소장·개혁파도 사라졌다.

그러나 국민의힘 의원들이 착각하는 것은 ‘배신자’ 프레임 때문에 당이 쪼그라든 것이 아니다. 박근혜 정권 이후 보수는 ‘부정선거 괴담’ ‘극우화’ 등으로 수도권 유권자와 괴리되고 혁신을 등한시하면서 그렇게 됐다. 4년 동안 언론에 한 줄 오르내리지 않는 의원이 수두룩할 정도로 인물도 키우지 못했다. 2008년만 해도 범보수가 수도권에서 82석(55%)을 차지했는데 2016년 37석(33%), 2024년 19석(21%)으로 급격히 존재감을 잃었다. 반면, 영남에서는 여전히 예전 의석을 유지했다. 중도화 전략을 펼 때는 반짝 승리하다가 보수화하면 다시 추락하는 일을 반복한 것이다.

이런 흐름에 더 큰불을 지른 이는 윤 대통령이다. 검찰총장 시절 문재인 정부와 맞서는 이미지 하나로 검증 없이 급하게 영입돼 대통령까지 초스피드로 당선했지만, 그는 진정한 보수주의자가 아니었다. 노무현을 좋아해 연설문을 다 외울 정도라고 하더니 대통령이 되어서는 “이념이 중요하다”고 오락가락했다. 중심이 없다 보니 자신을 지지해주는 극우 유튜버들의 세계에 동화돼 버렸다. 탄핵 표결에 참석했던 김상욱 의원은 윤 대통령을 겨냥, “보수가 아니라 극우주의자이다. 보수의 배신자”라고 말했다. 1980년 5·18의 원죄를 씻기 위해 그동안 보수는 부단히 노력했다. 김종인 전 비대위원장은 국립5·18민주묘지를 방문해 무릎까지 꿇었다. 그러나 45년 만에 깊숙이 파묻어놓았던 ‘계엄령’이라는 판도라의 상자를 윤 대통령이 열어 버리면서 그동안의 모든 노력은 수포로 돌아갔다.

이번 계엄군이 국회의사당 유리창을 깨고 진입하는 모습을 전 국민이 생방송으로 생생히 지켜봤다. 윤 대통령은 “2시간짜리 내란이 어디 있느냐”고 하지만, 그나마 2시간 만에 중단시킨 건 용기 있는 의원들이다. 계엄 충격파는 훨씬 오래 갈 것이다. 특히, 교과서에서만 계엄령을 배웠던 MZ 세대들의 충격이 컸다. 12·3 계엄의 잔상을 없애기 위해 앞으로 얼마나 많은 시간이 필요할지 가늠하기가 어렵다. 국민의힘으로 대표되는 보수는 소멸의 길로 접어들 수밖에 없다. 윤 대통령은 반성과 사과는커녕 “끝까지 싸우겠다”며 마지막까지 보수를 인질로 잡고 버티려 하고 있다. 이런 행태야말로 국민과 보수를 배신하는 일 아닌가.

이현종 논설위원
이현종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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