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강을 사이에 두고 양평군의 두물머리 맞은편에 남양주시 조안면이 있다. 조선 후기 최고의 실학자 다산 정약용(1762∼1836) 선생의 고향 마재마을이 있고, 그의 생가와 묘소, 실학박물관이 하나의 세트를 이루어 많은 방문객이 찾는다. 옛 중앙선 선로에 만든 국토종주자전거길이 팔당호를 따라 면을 관통하고, 새롭게 단장한 능내역 폐역은 봄가을이면 자전거를 빌려 타는 사람으로 인산인해를 이룬다.

조선 시대 강원도의 원주, 횡성, 평창, 영월, 정선, 강릉, 삼척, 울진, 평해에서 경기도의 양평과 지평을 거쳐 서울을 오가던 평해길도 조안면을 지나갔다. 양평 남한강가의 평해길을 지나온 사람들은 지금의 양수대교에서 나룻배를 타고 북한강을 건넌 뒤, 능내리의 봉안역을 지나 예봉산(678.8m)과 예빈산(587m)의 높은 산지를 피해 돌아 한강가의 팔당 벼랑길을 따라갔다. 그 반대도 마찬가지였다. 그런데 이런 평해길을 통하지 않고 높아서 험하고 힘들기는 하지만, 빨리 가기 위해 소수의 사람이 선택하던 길이 하나 있었다. 양수대교 남서쪽에서 서북쪽의 조안2리로 꺾어서 예봉산과 예빈산 사이의 새재를 넘어 팔당에 이르는 지름길이 그것이다.

조안2리의 옛 이름은 새울로, 새재 밑에 있는 골짜기의 마을이어서 그렇게 불렀다. 새재는 길이 높고 험하여 힘들지만 짧아서 빨리 갈 수 있는 고개란 의미의 문경새재와 이름도, 뜻도 같다. 새울에서 ‘울’은 골짜기의 마을을 가리키는 우리말 중의 하나로, 한자로는 鳥(새 조)와 洞(골 동)의 뜻을 빌려 鳥洞이라고 표기했다. 그런데 지명 조사차 이곳을 방문했을 때 鳥洞을 한자의 뜻으로 풀어 만든 잘못된 유래가 마을 앞의 안내 표지판에 이렇게 기록돼 있었다.

‘옛날 이곳에 새가 머물다 날아갔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박씨 선조가 한양 가는 길에 이 지역에서 해가 저물어 쉬게 되었는데, 새소리가 듣기 좋고 물이 좋아 가려 했던 길을 멈추고 여기서 살기로 하고 마을 이름을 ‘조동’이라 하였다는 이야기도 있다.’

국립중앙도서관 학예연구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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