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계 ‘가교 역할’ 주목하지만
“정부차원 대응이 먼저” 지적도


정용진 신세계그룹 회장이 내년 1월 미국 트럼프 2기 행정부 출범을 앞두고 국내 정·재계 인사 중 처음으로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 당선인과 전격 회동한 데 대해 기대와 우려가 동시에 터져 나오고 있다. 트럼프 당선인이 비즈니스에 대한 이해도가 깊은 만큼 민간외교에 탄력이 붙을 것이란 전망과 함께, ‘정상 교류’를 성사시킨 일본이나 프랑스와 달리 기업인 인맥에만 기댈 경우 보편관세 부과 등 중차대한 통상 및 외교 현안이 산적한 상황에서 되레 역효과가 날 것이란 지적도 나온다.

23일 재계에 따르면 정 회장은 지난 20일(현지시간) 트럼프 당선인의 사저인 미국 플로리다주 팜비치 마러라고 리조트를 방문한 자리에서 트럼프 당선인을 직접 만난 것으로 전해졌다. 당시 정 회장은 트럼프 당선인과 식사를 하며 15분가량 국내외 여러 현안에 대한 의견을 나눴다는 후문이다. 정 회장은 체류 기간 트럼프 당선인의 최측근으로 부상한 일론 머스크 테슬라 CEO를 비롯해 트럼프 정권 인수위원회에 있는 여러 미국 정·재계 인사들을 소개받았다.

재계에서는 정 회장의 이 같은 행보에 큰 의미를 부여하고 있다. 재계 관계자는 “트럼프 당선인은 전통적인 외교 관례 대신 ‘주고받는’ 비즈니스를 선호하기 때문에 기업인들이 대미 외교 분야에서 가교 역할을 할 수 있는 소지가 충분하다”며 “정 회장과 트럼프 당선인이 별도 계획 없이 만난 것도 이런 점을 방증한다”고 설명했다.

다만 정 회장은 트럼프 당선인과 나눈 대화 내용을 구체적으로 언급하지 않으며 신중한 모습을 보였다. 정 회장은 전날 인천국제공항으로 귀국하면서 “트럼프 당선인 주변 인사들이 한국 상황에 관심을 보여 ‘대한민국은 저력이 있는 나라니 믿고 기다려달라. 빨리 정상을 찾을 것’이라고 설명했다”고 말했다. 국내 재계와 트럼프 당선인 사이 가교 역할을 할 가능성에 대해서는 “내가 무슨 자격으로 하겠나”라며 말을 아꼈다. 정부 당국자가 아닌 만큼 국가적 현안을 공개적으로 언급하는 건 적절치 못하다는 판단에 따른 것으로 풀이된다.

재계에서는 정부와 정치권이 나서 기업인들이 민간 외교 분야에서 활약할 수 있는 공간을 만들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재계 관계자는 “주한미군 방위비 분담금 문제와 보편 관세 등 수십조 원이 오고 가는 현안들이 있는 만큼, 국정 혼란으로 구멍 난 통상·외교 라인을 회복하는 데 주력해야 한다”고 말했다. 일각에선 “외교·경제적 현안을 보다 심도 있게 논의하기 위해선 기업인에게만 의존해선 안 된다”는 지적도 나온다.

김호준 기자 kazzyy@munhw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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