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강석 목사가 미국 뉴브런즈윅 신학교의 언더우드 흉상 앞에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소강석 목사가 미국 뉴브런즈윅 신학교의 언더우드 흉상 앞에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 새에덴교회

담임 목사의 성탄메시지


한국기독교 140주년을 앞두고 얼마 전 주요 일간지 기자들과 함께 언더우드, 아펜젤러 등 선교사들의 흔적이 남은 미국의 유적지를 탐방하고 왔다. 말로만 듣고 책으로만 읽은 곳을 직접 보니까 사뭇 감회가 새롭고 그들을 직접 만나는 듯한 느낌을 받았다.

초기 선교사들은 예수 그리스도의 심장을 가지고 얼마나 조선을 사랑했는가. 그들은 풍토병을 마다하지도 않고 한국 선교를 위해 온몸을 다해 헌신했다. 아펜젤러는 한 사람을 구하다가 물에 빠져 순교했고, 전킨 선교사는 세 아들을 잃으면서도 선교를 포기하지 않았다. 그들은 교회만 세운 게 아니라 학교와 병원을 세웠고 또 한글 보급에도 앞장섰다. 특히 레이놀즈 선교사는 성경을 한국어로 번역하는 것에 혁혁한 공을 세웠다.

선교사들은 독립운동의 사상적, 정신적 기초가 됐다. 당시 미국 선교본부에서는 선교사들의 정교분리 원칙을 고수했다. 그러나 선교사들이 볼 때 일제의 만행이 너무 잔인하고 반민주주의적, 반휴머니즘적, 반근대적이었다. 선교사들은 고통당하는 우리 민족의 고난과 아픔을 외면할 수가 없었다. 그래서 외적으로는 정교분리 원칙을 지키면서도 자신의 신앙양심과 소신을 가지고 진정한 자유와 평화, 박애, 인권을 가르치며 백성들의 잠든 의식을 깨우고 계몽시켰다. 선교사들의 교육을 받은 미션스쿨 학생들이 거리로 나가서 3·1운동을 일으키게 하는 기폭제가 된 것이다. 특히, 스코필드 선교사는 본인이 직접 사진을 찍고 외신 기자들에게 기자회견을 함으로써 3·1운동을 전 세계에 알렸다. 이처럼 선교사들은 3·1운동을 직·간접적으로 후원했다.

교회 조직이 아니었다면 3·1운동은 서울과 평양에서 끝나고 말았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교회나 미션스쿨을 통해서 전국적으로 확산할 수 있었다. 나는 군산제일고(구 영명학교)를 졸업했다. 전킨 선교사가 세운 학교로, 그곳에서도 3·1운동을 했다. 또, 전킨 선교사 부인이 세운 멜본딘여고가 전신인 영광여고도 3·1운동에 앞장섰다.

초기 선교사들이 뿌린 씨앗의 열매는 세계적으로 주목할 만한 선교 업적을 이뤘다. 한국교회가 세계 모두가 주목하는 부흥과 성장을 일구어낸 것이다. 그리고 이제 곧 한국 개신교 선교의 역사가 140주년을 맞이한다. 2025년엔 이를 기념하는 다양한 행사가 펼쳐진다.

그런데 140주년이 중요한 것은 아니다. 140주년 자체를 기념하려고 해서는 안 된다. 그것은 하나의 공시적인 행사에 불과하다. 우리는 한국기독교 140주년을 맞되, 통시적인 기념행사를 열어야 한다. 미래학자 최윤식 박사의 “한국교회는 잔치하다가 망할 뻔했다”는 말에 주목해야 한다. 잔치는 하되 공시적 행사를 해서는 안 된다. 대신 거시적이고 통시적인 잔치를 해야 한다. 선교사들이 품었던 그 심장으로 말이다.

하나님이 맨살의 아기 예수로 오신 성탄절이다. 세상에 어떻게 하나님께서 인간의 육체로 탄생하실 수 있단 말인가. 그 어떠한 천재 문인, 철학자, 과학자라 할지라도 성탄의 신비스러운 사랑을 설명할 수 없을 것이다. 140년 전, 푸른 눈의 선교사들이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과 희망의 빛을 전해 주었던 것처럼, 우리도 성탄의 따스한 사랑을 이웃에게 전하자. 차가운 겨울밤을 밝히는 빛이 되고 꽃이 되자.

소강석 새에덴교회 목사·한국교회미래재단 이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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