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성근 포스텍 총장이 지난 17일 경북 포항시 남구 포스텍 본관 응접실에서 가진 문화일보와의 인터뷰에서 의대 쏠림과 수도권 집중화에 따른 위기 극복을 위해 추진하는 개혁 수준의 ‘제 2건학’ 사업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박윤슬 기자
김성근 포스텍 총장이 지난 17일 경북 포항시 남구 포스텍 본관 응접실에서 가진 문화일보와의 인터뷰에서 의대 쏠림과 수도권 집중화에 따른 위기 극복을 위해 추진하는 개혁 수준의 ‘제 2건학’ 사업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박윤슬 기자


■ 현안 인터뷰 - 김성근 포항공과대학교 총장

의대 열풍·수도권 집중현상 심화
보상 체계·연구 역량 확대 개혁

우수 교원은 정년 70세로 연장
포스텍 오는 연구원 많아질 것

줄세우기 입시 대신 잠재력 평가
2026년엔 외국인 학부생도 뽑아
‘패스파인더형’ 인재 키울 예정


포항=박천학 기자 kobbla@munhwa.com

우수 인재의 의대 쏠림으로 국내 굴지의 이공계 대학마다 위기감이 갈수록 팽배해지고 있다. 올해 설립 38주년. 세계적 연구중심대학 반열에 오른 경북 포항 포스텍(포항공과대)도 이러한 현상을 피하지 못하고 있다. 여기에 심화하는 수도권 집중화로 유능한 교수는 서울로 떠나고 학생들도 수도권 대학으로 몰리면서 학교 위상도 흔들리고 있다는 말도 나온다. 이에 따라 포스텍은 올해부터 10년 동안 1조2000억 원이라는 대규모 투자를 바탕으로 개혁 수준의 ‘제2 건학’ 사업을 추진하고 나섰다. 우수 교원 확보는 물론 다양한 활동 지원으로 학생들이 진정한 글로벌 리더로 성장할 수 있도록 하겠다는 것이다. 특히 2026학년도부터는 개교 최초로 수준 높은 외국인을 선발해 학부생과 함께 새로운 길을 개척하는 ‘Pathfinder(선구자)형 인재’를 키우기로 했다.
김성근 포스텍 총장은 “포스텍의 정체성은 한국을 일깨우는 대학”이라며 “설립 이래 지금까지 늘 험로를 개척해왔듯, 연구와 교육, 입시 등 모든 면에서 새로운 길을 열어가는 대학으로 거듭나겠다”고 강조했다. 김 총장과의 인터뷰는 지난 17일 포스텍 본관 응접실에서 진행했다. 김 총장은 삼성미래기술육성재단 이사장을 지냈으며 지난해 9월 취임했다. 김 총장은 물리화학 분야의 탁월한 연구실적을 인정받아 지난 2006년 교육인적자원부 제1회 국가 석학에 선정됐다.

―포스텍의 위상이 흔들린다는 말은 의외다.

“저는 평생 서울에서 교수를 했다. 교수 사회에서 들리는 이야기를 종합하면 갈수록 포스텍의 위상이 추락하는 것 같은 느낌을 받았다. 대학 구성원들도 이렇게 느꼈을 것이다. 하나의 방증일지 모르지만 유능한 몇몇 교수들이 학교를 떠나 서울로 갔다. 또 옛날에는 서울대나 의대에 합격하고도 포스텍에 오는 학생들이 많았는데, 갈수록 이러한 학생이 줄어드는 것 같다. 이는 학교가 퇴보해서라기보다는 우리나라에 불고 있는 의대 열풍과 수도권 집중 현상이 가장 큰 이유다. 이대로 가다간 제가 제일 우려했던 상황이 나타날지 모른다. 포스텍이 그저 그렇게 잘하는 지방 소재 대학 정도가 되지 않을까 하는 것이다. 국내 최고 또는 세계적인 대학이라기보다 현재 처한 열악한 상황에 그냥 순응하는 대학이 되지 않을까 걱정도 한다. 그래서 대학을 설립했던 당시의 결의와 정신을 되살리기 위해 ‘제2 건학’ 사업을 추진하게 됐다.”

―이공계 대학 위기 진단은.

“이공계는 꽤 오래전부터 위기였지만, 갈수록 심각해지고 있다. 하루아침에 닥친 게 아니다. 우리나라가 굉장히 잘나가던 시절에 대비를 못한 결과로 본다. 크게 두 가지로, 하나는 지금까지 대한민국 발전을 이끌어왔던 이공계 인력들이 다른 분야로 대거 빠져나간다는 점이다. 특히 의약계열 선호가 가장 큰 문제다. 이는 정당한 보상 체계가 따라주지 않았기 때문이다. 또 이공계 사람들이 외국으로 나가는 것이다. 과거에는 아무리 대우를 못 받아도 국내에 있었다. 하지만 이젠 자본과 인재는 국경이 없다. 외국에서 받는 대우가 워낙 좋기 때문에 ‘애국심 마케팅’은 통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지금도 꾸준히 인재가 유출되고 있다. 대책을 마련하기에는 너무 늦지 않았나 우려스럽다.”

―그래도 국가 차원의 대책이 필요하다.

“기본에 충실해야 한다. 정당한 보상 체계를 도입해야 한다. 사람 귀한 줄을 알아야 한다. 미국도 많은 문제를 안고 있지만 잘하는 것 하나는 인재에 대한 보상책이 확실하다는 점이다. 그래서 영국, 독일, 프랑스, 일본, 한국 등 세계 각 국가의 인재들이 미국으로 향하고 있다.”

―‘제2 건학’ 사업은 이공계 인재 양성 문제를 정면돌파하려는 의지로 보인다.

“올해부터 10년간 1조2000억 원을 투자한다. 우수 교원과 학생을 확보하고 성과 중심의 보상 체계와 도전적 연구 문화를 정착시키는 것이다. 교육과 연구 전 분야에 걸쳐 다시 건학하는 수준의 혁신적인 사업을 추진할 것이다.”

―효과는 보고 있나.

“초기 외부 연구비 수주가 어려운 신임 교수들의 연구 기반을 실질적으로 지원하기 위해 지난 9월부터 신임 교원 정착지원금을 2억5000만 원에서 5억 원으로 국내 대학 가운데 최고 수준으로 확대했다. 탁월한 업적을 달성한 50~55세 우수 교원을 대상으로 정년을 65세에서 70세로 새로 연장하는 ‘정년연장 조기 결정제도’도 도입했다. 올해는 성과를 내기 위한 제도 개혁에 집중했는데 이미 수도권 대학의 교수 몇 분이 포스텍으로 오려고 하고 있다. 그동안 지방에서 수도권으로 가기만 했다. 이분들이 오시면 연구원이나 대학원생들이 같이 오는 파급효과도 있을 것이다. 해외 인재 영입도 추진 중이다.”

―학생들을 상대로 한 동기 부여도 중요하다.

“올해부터 학부생들에게 연간 250만 원, 4년간 총 1000만 원 상당의 진로 탐색 바우처를 제공하고 있다. 이를 통해 학생들이 국제전자제품박람회(CES)와 노벨 위크(Nobel Week) 등 글로벌 행사에 참여토록 하고 있다. 연구, 창업, 인턴십 등 다양한 활동을 자기 주도적으로 설계하고 진로를 탐색해 진정한 글로벌 리더로 성장할 수 있도록 지원하고 있다.”

―2026학년도부터 신입생 선발에 심층 면접을 도입하는 등 입시제도도 개편한다고 들었다.

“단일계열 일반전형 면접 반영 비율을 33%에서 50%로 대폭 확대할 계획이다. 이는 지원자 개개인의 잠재력을 더욱 심층적으로 평가하기 위한 전략이다. 현재 수험생 1명당 30분간 진행되는 면접은 생활기록부를 바탕으로 한 ‘잠재력 면접’과 정답이 없는 제시문 기반의 ‘사고력 면접’으로 구성돼 있다. 그러나 30분 면접으로는 반복 학습을 통해 답변을 준비해 온 학생이 월등히 유리하기 때문에 2026학년도부터는 장시간 심층 다면 면접을 통해 학생 개인의 다양한 본질적 능력을 평가할 생각이다. 아울러 그룹 토의 등 새로운 평가 방식을 검토 중이며, 입시개혁소위원회를 통해 내년 3월까지 구체적인 입시제도 개편 방안을 마련할 예정이다.”

―입시제도도 제2 건학처럼 개혁하는 것 같다.

“우리나라는 인재라고 하면 시험을 잘 보는 사람으로 판단하는 경향이 있다. 시험 성적을 기준으로 인재를 평가하는 것은 전통적인 방법이다. 서구 사회는 오래전부터 이를 탈피하기 시작했다. 이제는 공정성과 함께 단순히 시험 성적으로는 변별하기 힘든, 좀 더 넓은 영역에서 인재라고 판단되는 사람을 뽑아야 한다. 그래서 입시 제도 틀을 바꾸려고 한다.”

―기존에도 창의적 인재를 발굴하지 않았나.

“현재 우리나라의 ‘줄 세우기식’ 입시는 단순히 정해진 정답을 찾는 ‘문제풀이 숙련공’을 양성할 뿐, 미래를 선도할 창의적인 인재를 육성하는 데 한계가 있다고 생각한다. 학생들의 잠재력을 평가하는 입시제도를 통해 창의적이고 논리적 사고를 할 수 있는 미래 과학자를 선발하려고 한다. 거듭 말하지만, 입시제도 개편의 핵심은 면접 비중을 확대해 이를 더욱 효과적으로 달성하는 데 있다.”

―입시제도 개편으로 얻고 싶은 인재는.

“미래를 이끌어갈 대체 불가능한 인재, 즉 남들과 다른 시각으로 문제를 바라보고, 단순히 따라가는 것이 아니라 새로운 길을 개척할 수 있는 ‘선구자형 인재’를 키우는 것이다.”

―외국인을 학부생으로 선발하는 이유는.

“개교 이래 처음으로 2026학년도 입시부터 선발한다. 새로운 입시 제도를 통해 새로운 인재를 뽑고 그 인재를 글로벌 인재로 키우기 위한 것이다. 우리나라에서 가장 혁신적이고 가장 국제화된 대학이 되겠다는 것이다. 국제화는 단순히 외국 학생만 데려오는 것이 아니라 우리 학생들하고 어울려서 새로운 걸 창조하는 것이다. 그래서 아주 높은 수준의 외국 학생들을 받아들일 생각이다. 한류 문화 등을 이유로 유학생이 오는 것과 차원이 다르다. 포스텍은 학생들이 졸업하고 단순히 취업하는 대학이 아니다. 국가 미래를 먹여 살리고 세계를 선도할 인재를 양성하는 그런 책임 있는 학교다.”

―양자(量子·Quantum) 기술과 인공지능(AI)이 한국을 먹여 살릴 이공계 분야 기술의 대세로 떠오르고 있다.

“그런 분야가 중요한 것은 분명하다. 그러나 우리나라의 가장 큰 병폐 중의 하나가 지나치게 유행을 추종하는 것이다. 10~20년 전엔 한국이 먹고살 길은 ‘나노과학’이라고 엄청나게 주목했다. 다시 말하면 선택과 집중이라는 미명하에 그때그때 유행하는 것만 뒤쫓아 간다는 것이다. 메타버스도 유행이었던 수년 전을 떠올려 보라. 하지만 몇 년 지나지 않아 다 잊고 새로운 먹잇감을 찾는다. 하나의 기술이 전 세계를 제패할 수 있다는 건 착각이다. 인류 역사가 그걸 절대로 허용하지 않는다. 학계에서 자주 말하는 기초 원천기술에 꾸준히 투자해야 한다는 게 그런 이유다.”

―2025년을 맞이하는 각오나 다짐은.

“포스텍의 정체성을 두고 ‘한국을 일깨우는 대학’이라고 최근 한 교수님이 말했다. 마음에 깊이 와 닿았다. 포스텍은 한국 최초의 연구중심대학으로 출발했고, 이후에도 한국에서 처음으로 시도되는 실험과 도전을 이어가고 있다. 이러한 노력은 궁극적으로 글로벌 경쟁력을 강화하는 데 그치지 않고, 인류의 지속가능한 미래를 위한 실질적인 해법을 제시하는 데 목표를 두고 있다. 내년엔 세계적 수준의 연구 역량과 깊은 사회적 책임감을 겸비한 대학으로 더욱 발전하도록 하겠다.”



학생 30명과 ‘노벨 위크’ 참관… “세계적 업적 이룬 사람 보며 시야 넓어졌길”

노벨상 수상자들 강연 함께 들어
“미래 향한 큰 동기부여 됐을 것”


김성근 포스텍 총장은 지난 5~12일 스웨덴 스톡홀름에서 개최된 ‘노벨 위크(Nobel Week)’ 행사에 학생들을 인솔해 참관했다. 노벨 위크 참여는 김 총장이 포스텍에 취임한 이후 사실상 ‘제1호 사업’으로 학생들에게 노벨상의 깊은 의미를 이해시키고 학업의 동기를 부여하기 위한 것이다. 총 135명의 학생이 신청한 가운데 치열한 경쟁 끝에 30명이 선발돼 김 총장과 동행했다. 학생들의 비용은 학교 측이 전액 지원했다.

―학생들을 노벨 위크에 파견한 이유는.

“우리나라는 표면적으로는 국제화된 나라로 보이지만, 실제로는 매우 폐쇄적인 측면이 많다. 우리끼리만 소통하고 한국식으로만 얘기한다. 학생들에게 다른 세계를 보여주고 싶었다. 학생들한테 지역에 있다고 해서 지역적인 생각을 하지 말고 오히려 글로벌하게 생각하라고 조언한다. 큰 업적을 이룬 사람들의 얘기를 듣고 오는 것이 학생들에게 큰 동기 부여가 될 것이다.”

―노벨 위크에 어떤 프로그램이 있는지.

“그해 노벨상을 받은 사람들의 강연이 있다. 노벨상을 받은 해는 아무리 좋은 대학에서 아무리 많은 돈을 줘도 수상자를 모시지 못한다. 이 프로그램에 참여하면 수상 업적을 누구보다 먼저 직접 들을 수 있다. 이러한 기회를 얻는 사람은 전 세계적으로 1000명도 안 된다.”

―포스텍에도 노벨상에 근접한 연구자들이 많다.

“노벨상은 골을 많이 넣고 달리기를 잘하면 주는 상이 아니다. 노벨상은 기록경기가 아니라는 것이다. 노벨상은 없던 길을 여는 사람이 받는다. 100m 달리기를 가장 잘하는 사람한테 주는 게 아니라 없던 육상경기를 만드는 사람한테 주는 것이다. 이런 기준으로 봐야 하는데 우리 사회는 제일 잘하는 사람을 이 상에 근접했다고 착각하고 있는 것 같다.”

―노벨 위크 기간이 학기 중이어서 참여하기 힘들 것 같은데 많은 학생이 신청했다.

“노벨 위크는 매년 12월 초에 개최되는 국제적인 행사다. 학생들이 기말고사를 1~2주일 앞둔 시점에 참여하게 된다. 많은 학업적 압박을 받을 수밖에 없는 데도 관심이 많다. 저는 학생들이 단기적인 학점 경쟁보다 더 넓은 시야를 갖고 장기적인 진로 계획을 세우기를 바라고 있다.”

김 총장은…

△1957년 대구 출생 △서울대 화학과 △미국 하버드대 화학물리학 석·박사 △서울대 화학부 교수 △기초과학연구원 이사 △서울대 자연과학대학 학장 △카오스재단 이사 및 과학위원장 △삼성미래기술육성재단 이사장
박천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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