푸른 용의 해, 갑진년(甲辰年)이 저물고 있다. 새해를 맞이한 것이 엊그제 같은데 어느새 연말이다. 올해도 다사다난한 한 해였다. 월초에 터진 대형 사건으로 국민 모두가 어수선한 마음으로 연말을 맞고 있다.
비바람 불고 눈보라 쳐도, 우리의 삶은 앞으로 나아가야 한다. 나라가 정치적 혼란에 빠져 있지만, 국민은 일상의 삶을 잘 유지하는 것이 중요하다. 특히, 연말연시에는 지난해와 새해의 삶을 잘 연결하는 노력이 필요하다.
우리는 지구라는 거대한 우주선을 타고 태양 주위를 도는 우주여행을 하면서 춘하추동(春夏秋冬)의 변화를 경험한다. 지구 우주선은 매일 자신의 몸체를 회전시키며 우리에게 밝음과 어둠의 세계를 보여준다. 연말은 지구가 365번의 자전을 하면서 8760시간 만에 태양을 한 바퀴 돌고 제자리로 돌아오는 시기다. 한 해와 하루는 지구의 공전과 자전에 근거해 삶을 영위하는 중요한 시간 단위다.
나이를 먹을수록 시간의 흐름에 민감해진다. 특히 연말에는 새 달력을 걸고 나이도 한 살 더 먹게 되면서 세월의 빠름을 절감하게 된다. 올 한 해를 잘 산 것일까? 새해에는 어떻게 살아가야 할까? 연말은 차 한 잔을 앞에 두고 창밖의 겨울 풍경을 바라보며 한 해의 삶을 돌아보고 새해를 계획하는 소중한 시기다.
우리의 몸은 ‘지금 여기’라는 시간과 공간의 제약을 벗어날 수 없지만, 우리의 마음은 시공을 자유롭게 넘나들 수 있다. 마음은 지나간 과거와 오지 않은 미래를 현재로 끌어오는 신비로운 능력을 지니고 있다. 그래서 우리 마음은 하루에도 오만가지 생각으로 분주하다.
과거와 미래를 넘나드는 인간의 능력은 축복이기도 하고 재앙이기도 하다. 과거의 경험으로부터 보람과 교훈을 얻고 더 나은 미래를 기대하며 희망과 의욕을 얻는다는 점에서는 축복이다. 그러나 과거를 돌아보며 후회와 자책의 괴로움에 휩싸이게 만들고 미래에 대한 불안과 걱정을 유발한다는 점에서는 재앙이기도 하다. 과거의 삶이 실패작이라고 생각하면 우울해지고, 미래의 삶이 험란하다고 생각하면 불안해진다. 이렇게 자신을 우울하고 불안하게 만든 사람에게는 원망과 분노를 느끼게 된다. 시간을 넘나드는 마음을 사용하기에 따라 우리의 행복과 불행이 결정된다. 축복을 재앙으로 만드는 어리석은 사람도 있고, 재앙을 축복으로 승화시키는 지혜로운 사람도 있다.
지혜 연구로 유명한 독일의 심리학자 파울 발테스에 따르면, 지혜는 인생을 경영하는 탁월한 능력을 의미한다. 지혜로운 사람은 시간의 흐름에 따라 펼쳐지는 자신의 삶을 회고·관리·설계 세 측면에서 잘 경영한다. 인생 회고는 과거의 삶을 정리하며 긍정적인 의미를 발견하는 작업이고, 인생 관리는 현재의 문제를 파악해 해결하는 노력이며, 인생 설계는 미래의 삶을 예상해 계획하고 준비하는 과정이다.
나이를 먹을수록 과거는 길어지고 미래는 줄어든다. 그래서 노년기에는 인생 회고가 중요한 의미를 지닌다. 우리의 기억 속에 존재하는 과거 경험을 박물관처럼 시기별로 잘 정리해 놓은 사람도 있지만, 쓰레기장처럼 무질서하게 내버려두는 사람도 있다. 인생 회고는 나름대로 열심히 살아온 자신의 삶을 돌아보면서 행복했던 순간들을 재경험하고 의미와 가치를 발견하는 일이다. 삶의 의미와 가치는 우리가 부여하고 발굴하는 것이다. 긍정적인 경험을 돌아보게 되면 인생의 보람을 느끼고 도움을 준 사람들에게 감사하는 마음을 갖게 된다. 삶에는 즐거운 일만 있는 것이 아니다. 과거를 돌아보면 힘들고 괴로웠던 일들이 아픈 기억으로 떠오르게 된다. 이러한 부정적인 경험에 대해서는 고난과 역경을 견디며 지금까지 살아온 자신을 대견하게 여기며 인생의 교훈과 의미를 발굴하는 지혜가 필요하다.
길고 먼 미래가 앞에 놓여 있는 젊은이에게는 인생 회고보다 인생 설계가 더 중요하다. 노년기에도 인생 설계는 중요하다. 즐거운 일과 보람 있는 일을 계획하면서 활기차게 살아가도록 노력해야 한다. 매년 조금씩 늙어가는 몸과 마음을 걱정하며 위축되기보다는 노화를 기꺼이 수용하는 마음 자세를 기르는 것이 지혜롭다. 남은 인생에서 하고 싶은 일들을 더욱 촘촘하게 계획하며 희망과 활기를 잃지 않는 지혜가 필요하다.
우리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현재의 삶이다. 인생 관리는 현재 직면한 과제를 해결하면서 ‘지금 여기’에서 몸과 마음을 통해 생생하게 느끼는 행복을 향유하는 것이다. 가장 맛있는 음식은 지금 내가 먹고 있는 음식이고, 가장 소중한 사람은 지금 내 앞에 있는 사람이다. 과거에 대한 미련과 미래에 대한 걱정으로 ‘지금 여기’에 집중하지 못하고 현재의 행복을 충분히 누리지 못하는 것은 안타까운 일이다.
현재는 과거와 미래를 연결하는 고리다. 현재는 과거가 미래에게 릴레이 바통을 넘겨주는 순간이다. 현재의 삶에 대한 인생 관리는 과거의 인생 회고와 미래의 인생 설계 없이 충실하게 이루어지기 어렵다. 연말연시는 지난해가 새해에게 바통을 넘겨주는 시기다. 정국이 어수선한 때이지만, 모두가 지난 한 해를 돌아보며 보람과 감사를 느끼고 새해를 계획하면서 희망과 활기를 되찾는 송구영신(送舊迎新)의 연말이 되기를 기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