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희수 논설위원

정부는 현상유지, 野는 反시장
새해 저성장에 수출·내수 부진
트럼프 2기 출범, 앞길 안 보여

대기업 투자·고용 위축 먹구름
창업세대 도전정신 상기할 때
더 간절한 기업의 도전과 혁신


유난히 차가운 세밑이다. 송년회 같은 연말 행사는 중단됐고, 새해 덕담 인사조차 썰렁하기만 하다. 온 나라가 탄핵 정국의 혼돈에 빠져 얼어붙은 형국이다. 경제는 더 말할 것도 없다. 연말 특수는커녕, 해외 관광객마저 끊겨 위기감만 커져 간다. 체감 경기는 더 냉기류다. 기업들은 인력·사업 구조조정 등 칼바람이 거세고, 새해 계획을 짤 엄두도 못 낸다. 정국이 아무리 어수선해도 경제는 돌아갔지만, 지금은 그런 기대도 못 한다. 이 와중에 거야는 한덕수 대통령 권한대행 탄핵까지 밀어붙인다. ‘위기는 기회’라는 말조차 꺼내기 민망한 비상시국이다.

실제 경제는 사방팔방이 막혔다. 새해 전망은 암울하기만 하다. 어느새 내년부터는 1%대 저성장이 굳어져 버렸다. 한국은행에 이어 정부도 곧 내놓을 새해 경제정책 방향에서 2.2%인 내년 성장률을 1%대로 낮출 것이라고 한다. 일시적인 저성장이 아니라는 게 더 심각하다. 한은은 고령화 등으로 2025∼2029년 5년간 잠재성장률이 평균 1.8%로 떨어질 것으로 추정했다.

경제 지표도 험난한 새해를 예고한다. 각종 경기실사지수(BSI)는 내수 침체 장기화를 경고하고, 숨통을 터왔던 수출마저 환율 폭등 속에 지난 8월부터 4개월 연속 증가율이 둔화 추세다. 무역협회는 올해 사상 최대가 예상되는 수출이 내년에는 시작하자마자 마이너스로 역주행할 것으로 전망했다. 내년 1분기만 해도 15대 수출 품목 중 반도체 등 10개가 부진할 것으로 우려했다. 한국경제인협회의 매출액 1000대 기업 조사에서도 내년 1년간 수출 증가율은 고작 1.4%에 그칠 것으로 나타났다. 그래도 과거 노무현·박근혜 탄핵 때는 각각 중국 특수와 반도체 호황이 돌파구를 열었지만, 지금은 이런 구원투수도 찾기 어렵다. 오히려 새해 1월 20일 미국 도널드 트럼프 2기 행정부 출범으로 앞길이 더 막막해질 것이란 걱정이 크다. 특히, 트럼프발(發) 관세 폭탄이 쓰나미급 재앙을 몰고 올 수도 있다. 중국의 저가 공세도 철강·석유화학을 넘어 더 확산할 게 분명하다.

그런데도 정치권뿐만 아니라, 정부의 역할도 기대할 수 없는 게 현실이다. 기존의 정부 정책은 내년에 사실상 사문화하고, ‘식물정부’는 급한 불 끄기에 급급할 게 뻔하다. 여야는 합의해 놓고도 묵혀 왔던 무쟁점 경제법안을 뒤늦게 처리하겠다고 나섰지만, 가장 시급한 반도체특별법은 야당의 근로시간 예외 반대가 여전해 아무 진전이 없다. 실낱같은 기대를 샀던 여·야·정 협의체조차 26일에도 첫발을 못 뗐다. 정쟁의 장(場)만 넓히고 말 모양새다.

그나마 양곡법·국회증언감정법 등 6개 반(反)시장·반기업 법안은 한 대행의 거부권 행사를 통해 가까스로 막았지만, 여기가 끝이 아니다. 더불어민주당은 상법개정안 추진을 넘어, 법적 정년 연장·노란봉투법 등 노동계 편향의 법안을 강행하는 입법 폭주를 계속할 것이란 관측이 무성하다. 세계를 질주하는 반도체·자동차, 윤석열 정부에서 어렵사리 키워냈던 원전·방산 등이 추락하지 않을지 걱정스럽기만 하다. 트럼프 새 대통령이 호평한 조선도 과연 진가를 발휘할 수 있을지 의문이다. 앞이 안 보인다.

기댈 곳이 없는 국내외 상황에 대기업조차 내년 투자·고용을 축소할 태세다. 한국경영자총협회에 따르면, 30인 이상 기업 239사 가운데 절반(49.7%)이 원가 절감·인력 운용 합리화·신규 투자 축소 등 긴축경영을 계획 중이다. 특히, 대기업의 투자·인력 축소 응답률이 중소기업보다 높다. 대기업의 위기의식이 더 심각하다. 앞으로 중소·영세기업과 자영업자는 더 큰 타격을 입을 것으로 볼 수밖에 없다.

그래도 믿을 건 기업뿐이다. 우리 경제의 거목들인 창업세대와 선대 회장들의 도전정신을 상기할 때다. 다들 불가능하다고 했지만, 포기하지 않고 반도체·자동차·철강·조선 등을 기어이 일으키고 키워 신화를 창조했던 혁신과 돌파력을 되살려야 한다. ‘해봤느냐’는 발상의 전환, 마누라·자식 빼고 다 바꾸라는 신경영 등의 동력인 기업가정신이 더욱 절실하다. 경제는 국가의 기초인 동시에 최후의 보루다. 여기서 멈추면 추락할 뿐이다. 새해가 아무리 어려워도 기업들이 4류 정치에 좌절하지 말고 더 뛰어 경제가 돌아가는 데 앞장서기를 응원한다.

문희수 논설위원
문희수 논설위원
문희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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