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기은 정치부 차장

보수·우파가 그래도 윤석열 대통령을 지지한 것은, 그의 ‘리걸 마인드’(legal mind·법률적 사고방식)에 대한 믿음 때문이었다. 매 순간 유불리를 저울질하는 여의도식 정치공학에서 벗어나, ‘법과 원칙’에 따라 엄정한 국정 운영을 할 것이라 기대한 것이다. 법적 소양을 바탕으로 쟁점에 대한 균형 있는 판단을 하고, 법리를 바탕으로 자신과 주변의 사소한 문제에도 엄격하며, 체화된 자유·법치주의 신념을 바탕으로 사익이 아닌 공동의 이익을 위해 투신하는 모습을 원했을 것이다.

그러나 12·3 비상계엄 사태를 겪으며 보수주의자의 이 같은 기대는 처참히 무너졌다. 윤 대통령은 반민주·반헌법적 비상계엄 선포에 대해 “나는 잘못이 없다”는 입장을 보인다. 실제 윤 대통령은 5차례 걸친 대국민담화에서 ‘놀라고 불안했을 국민’에게만 사과했을 뿐, 계엄 선포 자체에 대해서는 단 한 차례도 사과하지 않았다. 그가 정당하다고 믿는 계엄 논리는 이렇다. ①계엄은 대통령 고유 통치 권한으로, ‘헌법의 틀’ 안에서 이뤄졌다. ②국헌문란 목적이 없는 2시간짜리 ‘경고용 계엄’이다. ③야당은 이를 내란이라 칭하며 광란의 칼춤을 춘다. ④구국의 결단을 한 나는 끝까지 싸울 것이고, 머지않아 직무에 복귀할 것이다. 이는 국민의 인식과 심각하게 괴리돼 있다. 국민은 눈으로 목격한 현상, 즉 총 든 군인이 야밤에 국회에 진입한 것만으로도 반민주·반헌법적이라 판단한다. 계엄 포고령에 ‘포고령 위반자를 처단한다’ 해놓고, 해제 후 2시간짜리 ‘경고용 계엄’이라 둘러대는 것은 국정 최고 지도자에 대한 한때의 기대를 접게 하는 대목이다.

윤 대통령의 계엄 이후 행보도 윤석열식 리걸 마인드 실체를 의심하게 한다. 윤 대통령은 검찰총장 재직 당시 국민으로부터 수사 정당성을 얻기 위해 ‘살아 있는 권력’에 대한 엄정하고 공정한 수사를 거듭 강조했다. 그러나 정작 살아 있는 권력이 된 지금, 그는 ‘법 기술자’ 행태를 보이고 있다. “법적·정치적 책임을 피하지 않겠다”고 해놓고서는, 거듭된 수사기관 소환 통보를 대놓고 무시한다. 이는 현직 대통령에 대한 강제수사가 쉽지 않은 점, 체포영장 청구 시 48시간 내 구속영장 청구가 뒤따라야 해 수사팀이 시간에 쫓기는 점을 알기에 내린 결정일 것이다.

더욱 우려되는 지점은, 윤 대통령이 그릇된 방법으로 탄핵 정국을 돌파하려 한다는 점이다. 윤 대통령은 12일 “자유민주주의를 지키는 길에 모두 하나가 돼 주시길 호소드린다. 국민 여러분과 함께 싸우겠다”고 했다. 여론재판 성격이 강한 헌재 탄핵 심리에 대비해 우파 지지자를 강하게 결집하려는 의도인 것이다.

누군가는 “대통령이 오죽하면 계엄을 선포했겠느냐”고 한다. 일부 이해가 가는 측면도 있지만, 그렇다고 외교·안보·경제를 쑥대밭으로 만든 반민주·반헌법적 계엄 자체를 정당화할 수 없다. 윤 대통령은 헌재 탄핵 변론을 준비하기에 앞서 국민 앞에 서야 한다. 이 자리에서 국민을 존중하지 않은 점, 가족 등 주변 문제에 엄격하지 못한 점 등에 대해 사과부터 하는 게 도리다. 그게 평생 리걸 마인드를 배운 윤 대통령의 마지막 책무다.

손기은 정치부 차장
손기은 정치부 차장
손기은

기사 추천

  • 추천해요 0
  • 좋아요 0
  • 감동이에요 0
  • 화나요 0
  • 슬퍼요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