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41) 선택은 책임의 동의어
■ 이솝 우화
양치기 거짓말 반복에
주민들 안도하며 관대
결국 손해 본 건 마을
惡 안 끊고 방치한 탓
‘의’로써 분노할 건가
‘이’ 추구해 넘길 건가

“이익을 추구할 것인가, 아니면 의로운 길을 갈 것인가?” 손해를 감수하면서도 의로운 행동을 하는 사람들은 종종 고지식하고 바보 같다는 핀잔과 조롱의 대상이 되는 반면, 이익을 잘 챙기는 사람들은 윤리적 흠결에도 불구하고 영리하고 똑똑한 사람으로 부러움의 대상이 되곤 한다. 정녕 의로우면서도 손해를 보지 않고, 넉넉히 이익이 생겨 풍요로운 삶을 누리는 방법은 없는 것일까? 그런데 정의와 이익은 서로 충돌하는 것만은 아니며, 올바르게 사는 것이 궁극적으로는 최대의 이익을 도모하는 일이라는 항변이 있기도 하다.
그런데 내가 정의롭게 사는 것만큼이나 중요한 일이 있다. 다른 사람의 불의에 대해, 특히 공적 임무를 맡은 사람의 불의에 대해 분노하고 저항하는 일이다. 우리에게는 ‘거짓말쟁이 양치기’로 잘 알려진 이솝 우화의 ‘장난치는 양치기’는 그 점을 잘 알려준다. 양치기가 양 떼를 몰고 마을로부터 멀리 나갔다. 그는 갑자기 마을을 향해 외쳤다. “늑대가 나타났어요. 양 떼가 위험해요!” 이 소리를 들은 마을 사람들은 깜짝 놀라 너나 할 것 없이 양치기를 향해 뛰어갔다. 헐레벌떡 양치기가 있는 곳에 도착하니, 웬걸, 늑대는 없고 양들은 평화롭게 풀을 뜯고 있었다. 이 장면을 본 마을 사람들의 반응은 어땠을까? 그들은 양치기가 장난친 것을 알고 ‘휘유’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허허’ 웃으면서 마을로 돌아갔단다.
여기서 잠깐 마을 사람들의 행동에 주의를 기울일 필요가 있다. 그들은 왜 양치기의 외침을 듣고 그것이 마치 자기 일인 양, 양치기에게 달려갔을까? 그리고 양치기가 거짓말을 했다는 사실을 알고도 분노하고 꾸짖기보다는, 왜 안도의 한숨과 웃음을 지었을까? 아닌 게 아니라 양치기가 돌보는 양들은 마을 사람들 각자의 자기 몫이 있는 마을 전체의 공동 재산이었기 때문이었다. 양치기는 자기 양을 치고 있던 것이 아니라, 마을 사람들에게 위탁받고 공동의 양을 돌보던 것이었다. 그러니, 늑대가 나타났다는 말에 식겁한 마을 사람들이 자기 양을 지키기 위해 만사 다 제쳐 두고 양치기에게로 달려갔고, 양들이 안전하다는 사실에 분노보다는 안도감이 더 먼저였던 것이다.
그러고도 양치기는 똑같은 거짓말을 두 번, 세 번 반복했고, 그때마다 마을 사람들은 양을 지키기 위해 양치기가 있는 곳으로 달려갔다. 마을 사람들은 양치기의 거짓말에 화가 났지만, 점잖았고 너그러웠다. 하지만 그것은 결국 독이 되었다. 마을 사람들은 양치기의 거짓말 습관과 올바르지 못한 행동에 의분을 느끼며 당장에라도 쫓아냈어야만 했다. 그러나 그러지 못했다. 양이 안전하다는 것에 만족하고 양치기의 불의를 방치한 것은 결국 엄청난 손해와 화를 불러일으키고 말았다. 거짓말에도 불구하고 양치기는 계속 마을 사람들의 양을 돌보는 일을 했다. 마침내 정말로 늑대가 나타나 양 떼를 공격했다. 다급해진 양치기는 피를 토하듯 고래고래 외쳤지만, 마을 사람들은 이번에도 양치기가 장난을 치는 줄 알고 꿈쩍도 하지 않았다. 결국 늑대의 이빨에 양들은 찢기고 피를 흘리며 쓰러졌다.

김헌 서울대 인문학연구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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