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3이 망친 K-문화의 성과들 한강·오징어게임 메시지의 힘 문화 파워가 난세 극복할 동력
정치판 오겜 “이러다 다 죽어” 젊은 세대의 달라진 시위 문화 2025년엔 삼류정치 막아내야
29일 무안공항 참사까지 벌어진 비극적이고 안타까운 2024년 한 해가 저물어 간다. 올해는 우리에게 최고의 해가 될 수 있었다. 1990년대 드라마와 가요가 아시아에서 인기를 얻으면서 시작된 ‘한류(Korean Wave)’가 방탄소년단의 역사적인 빌보드 무대 입성(2017), 봉준호 감독의 ‘기생충’(2019), ‘오징어 게임’의 메가 히트(2021), 임윤찬의 밴클라이번 콩쿠르 우승(2022)을 거쳐 한강의 노벨 문학상 수상으로 정점을 찍으며 새로운 단계로 들어선 해였다. 단순히 노래뿐 아니라 젊은 친구들이 즐기는 술놀이 게임까지 히트시킨 로제의 ‘아파트’까지 더해 K-콘텐츠라면 뭐든 될 것 같고, 한국이라면 전 세계 젊은이들이 꼭 한번 와보고 싶은 곳이 되고 있었다.
우리 역사에서 한 번도 경험한 적 없는 문화적 황금기가 열리는 중이었다. 비현실적인 비상계엄이 재를 뿌리기 전에는 말이다. 뒤이은 ‘낙제 수준의 정치’는 우리의 무한한 가능성을 지금도 계속 말아먹고 있다. 정치적 혼란으로 경제가 위태로워지면서 피해는 고스란히 개개인들에게 돌아가고 있다. 어쩌면 우리는 경제적으로 선진국이고, 문화적으로 강국이니 정치 정도는 삼류라도 괜찮다고 오만했는지도 모른다.
하지만 다행스럽게 10대부터 30대까지 젊은 세대들의 K-팝 응원봉 시위가 상징하듯 한국의 문화 소프트 파워가 지금의 난세를 헤쳐나가는 동력이 되고 있다. 실제로 총체적 난국에서도 한강부터 소녀시대와 ‘오징어 게임’까지, 올해 우리를 기쁘게 하고 위로하고 함께한 문화 파워들이 유효한 메시지를 전하며 큰 역할을 했다.
“멈춰야 해요. 이러다 다 죽어요.” 전 세계의 관심 속에 지난 26일 공개된 ‘오징어 게임’ 시즌2에서 주인공 성기훈(배우 이정재)이 돈에 눈먼 사람들에게 처절하게 외치는 말이다. 이는 고스란히 12·3 계엄 후 혼란 속에 자신들의 정치적 이해만을 따져 움직이는 국회를 비롯한 정치권이 들어야 할 경고다. 전편에서 456억 원이라는 거액의 상금을 받은 성기훈은 절박한 사람들을 사지로 내모는 게임을 중단시키기 위해 다시 돌아온다. 하지만 아무리 진실을 말해도 참가자들은 마음을 돌리지 않는다. 한 게임이 마무리될 때마다 생존자들은 게임 중단 여부를 묻는 다수결 투표를 하지만, 매번 더 많은 사람이 ‘한 번 더’ ‘한 게임 더’를 택한다. 급기야 중단을 선택한 ‘엑스(×)’ 세력과 속행을 주장하는 ‘오(○)’ 그룹은 육탄전을 벌이다 유혈사태에 이르게 된다.
전반적으로 ‘오징어 게임’ 시즌2가 시즌1에 못 미친다고 평가받고 있지만, 이와는 별개로 시즌2의 메시지는 드라마 안에만 머물지 않는다. 일부 여당 의원은 여전히 비상계엄을 옹호하고 야당은 세를 앞세운 탄핵 몰이로 정부를 위태롭게 만들고 있다. 이러다 우리, 진짜 다 죽게 생겼다.
“세계는 왜 이토록 폭력적이고 고통스러운가? 동시에 세계는 어떻게 이렇게 아름다운가?” 지난 7일 소설가 한강이 노벨문학상 수상자 강연에서 한 말도 현실을 꿰뚫는다. 한강은 “이 두 질문 사이의 긴장과 내적 투쟁이 글쓰기의 동력”이라고 했지만, 노벨상 수상 작가의 글쓰기를 넘어 우리 모두의 진실이다. 우리는 비상계엄이라는 시대착오적인 폭력과 정치적 불안이라는 고통을 당황스레 경험하고 있다. 1980년 광주민주화운동에 참여한 중학생 동호를 중심으로 떠난 사람과 남은 이들의 고통을 집요하게 사유한 그의 대표작 ‘소년이 온다’는 이제 그저 옛이야기라고만 할 수 없게 됐다.
하지만 이 같은 폭력의 세계에서 젊은 세대들이 형형색색 응원봉과 재기 넘치는 깃발을 들고 윗세대와 함께 K-팝을 부르며 평화 시위를 벌이는 예상치 못한 아름다운 세계를 만났다. 혼란의 2024년을 마무리하며 시위 현장에 쏟아져 나온 이들 MZ 세대가 2025년 새해엔 자신들의 정치적 이해득실만 따지는 삼류 정치인과 이들이 벌이는 모두를 죽이는 ‘정치판 오징어 게임’을 멈춰 세우는 유권자로서의 힘을 발휘하기를 기대한다. 그래서 그들이 현장에서 목청껏 부른 소녀시대의 ‘다시 만난 세계’가 진짜 현실이 되도록 말이다. “이 세상 속에서 반복되는 슬픔 이젠 안녕/수많은 알 수 없는 길 속에 희미한 빛을 난 쫓아가/언제까지라도 함께 하는 거야 다시 만난 우리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