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충주시 중앙탑면의 선돌(立石)마을에는 삼국시대 고구려의 장수왕이 이 지역을 차지한 뒤 ‘이제부터 여기는 우리 땅이야!’라는 의미로 세운 충주 고구려비가 있다. 북쪽에는 장미산(336.4m)이 솟아 있고, 동쪽으로는 남한강의 탄금호가 있다. 1981년에 국보로 지정돼 그 내용이 이미 잘 알려졌기 때문에 새로운 역사 이야기를 덧붙이기 어려울 것 같은 상황이다. 하지만 ‘고구려비가 왜 그곳에 있지?’ 이런 질문을 던지면 금방 답을 하기가 어렵다. 힌트는 선돌마을 북쪽의 장미산성에 있다.
장미산성은 정상에서 시작해 남쪽 능선을 따라 작은 골짜기를 둘러싼 퇴뫼식과 포곡식이 혼합된 둘레 2.9㎞의 대형 석성이다. 지형을 절묘하게 이용하여 정교한 성벽을 쌓았고 신선한 물도 공급할 수 있어 대규모의 장기전을 수행할 수 있는, 흔치 않은 삼국시대의 산성이다. 고구려 때 충주의 고을 이름이었던 국원성이 이 장미산성이다. 삼국시대 충주의 도시는 통치자가 거주하며 고을을 다스리던 장미산성과 남쪽 아래의 일반 주거지로 이뤄져 있었는데, 고구려가 여기에 비를 세워 자신의 땅임을 만방에 선언한 것이다.
신라는 수십만의 당나라군이 수도 경주까지 침략할 것에 대비해 평양-경주를 잇는 최단 코스의 길목에 초대형의 포곡식 산성을 만들었다. 신라 문무왕 13년(673), 충주 지역에서도 장미산성을 포기하고 충주시내 남쪽의 대림산(489m)에 훨씬 크고 넓은 골짜기를 둘러싼 둘레 약 5000m의 초대형 포곡식 산성인 대림산성을 만들어 통치성으로 삼고 만반의 준비를 했다. 하지만 전쟁은 임진강 유역에서 대규모 전면전을 통해 승리하면서 끝났다.
장미산성의 장미(薔薇)는 장미꽃과 한자가 같다. 아름다운 장미꽃을 닮은 산인지, 어딘가에 장미꽃의 명당이라도 숨어 있는지 상상력을 자극하는 이름이다. 아쉽겠지만, 그것은 아니다. ‘성이 있는 산’이란 뜻의 우리말 ‘잣뫼’를 비슷한 소리의 한자 薔薇로 표기한 후 한자의 소리로 읽은 이름이다.
국립중앙도서관 학예연구관
주요뉴스
이슈NOW
기사 추천
- 추천해요 0
- 좋아요 0
- 감동이에요 0
- 화나요 0
- 슬퍼요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