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덕환 서강대 명예교수, 화학·과학커뮤니케이션

반도체특별법과 전력망특별법의 연내 입법이 무산됐다. 전 세계 반도체 산업계의 판도가 요동치고 있는 상황에서 한시가 급한 산업계와 경제계가 전전긍긍하고 있다. 자칫하면 우리 경제의 핵심인 반도체 산업이 통째로 흔들릴 수도 있다고 한다. 지난해 수출 총액 6327억 달러의 15.6%를 기록한 반도체는 부동의 수출 1위를 지키고 있는 우리가 절대 포기할 수 없는 핵심 품목이다.

반도체 산업은 연구·개발(R&D)을 통한 끊임없는 혁신이 요구되는 분야다. R&D에 뒤처지는 기업은 가차 없이 퇴출되는 게 냉혹한 현실이다. 집적회로의 성능이 2년에 2배씩 증가한다는 1965년의 ‘무어 법칙’이나 1년에 2배씩 증가한다는 2002년의 ‘황의 법칙’은 의미 없는 구문(舊聞)이 됐다. 이제는 빠르게 실현되고 있는 인공지능(AI) 기술이 요구하는 초고성능의 고대역폭메모리(HBM)가 승부를 결정한다.

반도체 산업은 미래의 게임체인저인 AI의 가장 확실한 견인차다. 반도체 산업의 획기적인 도약을 위한 지원이 지체되면 AI 산업의 본격적인 출범도 어려워진다는 뜻이다. 유럽연합(EU)에 이어 세계에서 두 번째로 법제화한 AI 기본법이 무용지물이 될 수도 있다.

반도체특별법에 대한 여당과 야당의 입장이 크게 다른 것도 아니다. 반도체 산업에 대한 파격적인 지원이 필요하다는 사실은 여야가 모두 동의한다. R&D에 직접 참여하는 고액 연봉의 연구자에게는 주 52시간 근로제를 현장에 따라 유연하게 운용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는 요구도 마찬가지다. 미국·일본·대만의 반도체 업체에서도 연구자에게는 근로시간을 유연하게 적용한다.

야당도 근로시간 예외를 거부하는 건 아니다. 다만, 꼭 필요하다면 특별법 대신 근로기준법을 통해 법제화하자는 게 야당의 입장이다. 노동계의 불필요한 오해를 차단할 수만 있다면 여당과 산업계도 굳이 반대할 이유가 없는 대안이다. 단, 야당이 근로기준법 개정을 핑계로 더는 지체할 여유가 없다는 사실을 분명하게 인정해야만 한다.

전력망특별법도 더 미룰 수 없다. 전력망은 경기 용인에 들어설 반도체 국가산업단지에만 필요한 게 아니다. 지금 국가 전력망이 턱없이 부족한 절박한 상황이다. 동해안에 신설한 석탄발전소가 가동 중단 상태이고, 고리·울산에 건설 중인 원전에도 어려움이 예상된다. 전국에 우후죽순으로 들어서는 태양광·풍력의 계통접속도 원활치 않다.

2008년 경남 밀양 송전탑 논란 이후 전국적으로 이어지는 고압 송전망에 대한 사회적 거부감은 공기업인 한전이 감당할 수 있는 수준을 훌쩍 넘어서 버렸다. 고압 송전선로가 주민들의 건강에 피해를 준다는 과학적 근거는 확실치 않다. 그러나 고압 송전선로가 주민의 재산권에 부담을 주는 건 사실이다. 정부 차원에서 주민에 대한 적절한 보상 체계를 보장하는 노력이 절실하다. 주민에게 거부감을 주지 않는 고압직류송전(HVDC) 기술도 대안이 될 수 있다. 물론 높은 비용은 감수해야 한다.

비상계엄과 탄핵 정국에 항공기 추락 참사로 어수선하다고 경제를 멈춰 세울 수는 없다. 새해 20일 트럼프 2기 행정부가 출범하면 여건은 더 악화할 것이다. 우리 스스로 길을 찾아야 한다. 반도체·전력망특별법이 그 시작이다.

이덕환 서강대 명예교수, 화학·과학커뮤니케이션
이덕환 서강대 명예교수, 화학·과학커뮤니케이션

기사 추천

  • 추천해요 0
  • 좋아요 0
  • 감동이에요 0
  • 화나요 0
  • 슬퍼요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