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러스트 = 김유종 기자
일러스트 = 김유종 기자


■ 2025 신춘문예 - 동화

다시 봐도 경비원 할아버지가 만드는 로켓은 굉장했다. 이것에 비하면 다른 로켓 키트들은 전부 시시해 보였다.
전기주전자는 우리 집에 있는 것보다 성능이 좋지 않은 것 같았다. 아무리 기다려도 물이 끓지 않았다.
그동안 경비원 할아버지가 침을 튀기며 전기주전자를 자랑했다.
“이게 독일제야, 독일제. 내가 젊을 때 독일에서 일했거든. 그때는 독일제 하면 알아줬어…”
전기주전자를 경비원 할아버지는 티포트라고 불렀다.


“일, 이, 삼, 사….”

술래가 숫자를 세기 시작했다. 나는 서둘러 숨을 곳을 찾았다. 놀이터에 숨으면 금방 들킬 것 같았다. 경비실로 가보아도 택배 상자가 몇 개 없어서 그 뒤에 숨기는 어려워 보였다. 자전거 보관함에 가보려다가 지하로 내려가는 계단을 발견했다. 고개를 빼고 아래를 살폈지만 어두워서 잘 보이지 않았다. 술래가 와도 쉽게 찾을 수 없을 것 같았다.

계단을 내려가자 둥근 손잡이가 달린 문이 있어 열고 들어갔다. 지하 주차장으로 가는 길인 줄 알았는데 아니었다. 줄줄이 늘어선 기둥 사이로 노란색과 파란색의 커다란 파이프가 길게 뻗어 있었다. 바닥에는 흙먼지가 가득했고 젖은 종이 냄새가 났다. 멀리 꼬마전구처럼 작은 불빛이 보였다. 함부로 들어갔다가 혼날 것 같아 망설이다가 계단 위에서 발걸음 소리가 들리는 바람에 허겁지겁 안으로 들어갔다.

지하실은 생각보다 따뜻했다. 나는 노란색 파이프를 따라 걸었다. 세 번째 기둥을 지나자 주위가 조금씩 밝아졌다. 문 한쪽이 떨어진 수납장 위에 작은 등이 빛나고 있었다. 수납장 옆에 머리가 하얀 할아버지가 앉아 있었다. 회색 셔츠에 남색 바지, 경비원 옷을 입은 할아버지가 컵라면을 먹다 말고 나를 쳐다보았다.

“와아!”

내가 탄성을 지른 건 라면이 맛있어 보여서가 아니었다. 경비원 할아버지 옆에 커다란 원통이 서 있었다. 내가 그 속에 들어갈 수 있을 정도로 컸다. 아래에서 위로 조금씩 얇아지는 모양이었다. 가장 두꺼운 부분은 두 팔로 껴안으면 간신히 손끝이 닿을 것 같았다. 제일 아래쪽에는 네 개의 얇은 판이 세로로 붙어 있었다.

“만지지 마라.”

퉁명스러운 목소리에 나는 손을 움츠렸다. 만지는 대신 손가락을 뻗어 원통을 가리키며 물었다.

“이거 로켓이죠?”

“그래.”

경비원 할아버지는 삼각김밥을 뜯어 국물만 남은 컵라면 용기에 넣었다. 숟가락으로 밥을 꾹꾹 누르더니 국물과 함께 밥을 떠먹었다. 나는 경비원 할아버지의 입이 멈추기를 기다려 다시 물었다.

“할아버지 거예요?”

“내가 만들었으니까 내 거지.”

“진짜 할아버지가 만들었어요?”

“그래.”

국물까지 싹 비우고 나서 경비원 할아버지가 일어났다. 전기주전자에 생수를 붓고 스위치를 올렸다. 전기주전자의 몸통은 은색이고 손잡이는 검은색이었다. 뚜껑이 뾰족해서 고깔모자 같았다.

“커피 줄까?”

“네.”

나는 아직 커피를 마셔본 적이 없었다. 경비원 할아버지는 전기주전자에 생수를 더 부었다. 물이 끓을 동안 로켓을 구경했다. 완성되면 내 키보다 클 것 같았다. 요즘 유행하는 로켓 키트 중에 이 정도로 큰 것을 본 적이 없었다. 정신없이 구경하는데 전기주전자가 부글거리는 소리를 내며 뭉실뭉실한 수증기를 뿜어냈다.

“다른 사람에게 말하지 않으면….”

경비원 할아버지가 커피가 담긴 종이컵을 내밀며 말했다.

“또 와서 구경해도 된다.”

“아무한테도 말 안 할게요.”

“만지지는 말고.”

“절대 안 만질게요.”

나는 경비원 할아버지와 새끼손가락을 걸고 굳게 약속했다. 커피는 향기만큼 맛있지 않았다. 단맛 뒤에 쓴맛이 숨바꼭질을 하듯 숨어 있었다. 왜 아빠가 커피를 마시지 못하게 했는지 알 것 같았다. 결국 반도 마시지 못하고 남기고 말았다.

지하실 밖으로 나오자 햇빛이 눈부셨다. 그때까지 나를 찾고 있던 술래와 헤어져 집에 돌아갔다. 부엌에서 저녁을 만들고 있던 아빠가 나를 보자마자 소리쳤다.

“또 공 차다 왔니? 길에서는 위험하다니까.”

“공 안 찼어. 숨바꼭질했어.”

감자를 썰던 아빠가 힐끔 내 옷차림을 살폈다. 옷은 깨끗했다. 더러워지기라도 했으면 또 잔소리를 들을 뻔했다. 아빠는 말없이 당근을 꺼냈다. 나는 조심스럽게 물었다.

“크리스마스 선물로 로켓 키트 사주면 안 돼?”

“생일선물로 받았잖아.”

“그건 너무 작단 말이야. 더 큰 거 갖고 싶어.”

“더 크면 위험해서 안 돼.”

“아빠가 도와주면 되잖아.”

“내가 도와주면 무슨 의미가 있어.”

아빠는 돌아보지도 않고 당근을 자르기 시작했다. 나는 입을 부루퉁 내밀고 방으로 들어가 침대에 풀썩 누웠다. 내 방에는 우주 사진이 잔뜩 붙어 있었다. 푸르게 빛나는 지구, 막대나선 모양의 우리 은하, 달에 갔다 돌아온 유명한 연예인, 새로 출시된 우주 여객선, 화성에 가는 우주선….

처음 로켓 제작 키트가 나왔을 때는 손바닥만 한 크기였다. 누구나 쉽게 조립해서 하늘로 쏘아 올릴 수 있었다. 갈수록 로켓 크기가 커졌고, 점점 더 높이 올라갔다. 로켓 키트 발사장도 생겼다. 내가 생일선물로 받은 건 고작 팔 길이만 했다. 지하실에 있는 로켓을 아빠에게 보여주면 뭐라고 할까. 입이 근질거렸지만 꾹 참았다.



다음 날 지하실에 내려가니 경비원 할아버지가 또 컵라면을 먹고 있었다. 다시 봐도 경비원 할아버지가 만드는 로켓은 굉장했다. 이것에 비하면 다른 로켓 키트들은 전부 시시해 보였다.

“코코아 줄까?”

“좋아요.”

커피가 아니라 다행이라고 생각하며 로켓을 구경했다. 전기주전자는 우리 집에 있는 것보다 성능이 좋지 않은 것 같았다. 아무리 기다려도 물이 끓지 않았다. 그동안 경비원 할아버지가 침을 튀기며 전기주전자를 자랑했다.

“이게 독일제야, 독일제. 내가 젊을 때 독일에서 일했거든. 그때는 독일제 하면 알아줬어. 얼마나 튼튼한지 벌써 몇십 년이나 지났는데 아직도 멀쩡한 거 봐라.”

전기주전자를 경비원 할아버지는 티포트라고 불렀다.

“겨울에 보일러가 고장 나면 티포트로 물을 끓여서 씻었거든. 꽝꽝 얼어붙은 수도관을 녹이는 데에도 제법이었다니까. 지금도 매일 이걸로 커피를 타 마신단 말이지. 컵라면도 먹을 수 있고. 이만하면 아직 쓸 만하지.”

드디어 물이 끓었을 때는 티포트 이야기를 듣지 않아도 되어서 좋았다. 나는 코코아를 받아 들고 후후 숨을 불어 식혔다. 달콤한 맛이 익숙했다.

“로켓 다 만들면 쏘아 올릴 거죠? 저도 구경 가면 안 돼요?”

“글쎄다, 손주한테 크리스마스 선물로 줄 거라.”

“한 달밖에 안 남았네.”

나는 실망을 감추지 못하고 한숨을 쉬었다. 경비원 할아버지가 한쪽 눈썹을 들어 올리더니 그때까지 구경하러 와도 된다고 말했다.

“로켓 만드는 건 언제 와야 볼 수 있어요?”

“쉬는 시간에 만드니까 너는 보기 힘들걸.”

“쉬는 시간이 언젠데요.”

“새벽. 너 자는 시간.”

“왜 새벽에 만들어요?”

“낮에는 일해야 되니까 그렇지.”

경비원 할아버지가 순찰 나갈 시간이라며 일어났다. 나는 코코아를 얼른 마시고 따라 일어섰다. 경비원 할아버지가 손전등으로 발밑을 비추며 말했다.

“너무 자주 오지 마라. 들킨다.”

“내일 말고 모레 올게요.”

“공부해야지. 일주일에 한 번만 와. 수요일마다 어떠냐?”

“싫은데요.”

결국 일주일에 두 번 오기로 약속하고 다시 새끼손가락을 걸었다. 문 앞에서 경비원 할아버지가 나를 먼저 내보냈다. 계단에 발을 올리고 뒤를 돌아보았다. 손전등을 껐는지 지하실이 어두컴컴해졌다. 지우개로 지운 것처럼 경비원 할아버지의 모습이 보이지 않았다.



약속대로 나는 일주일에 두 번 지하실을 찾아갔다. 때로는 필요한 정보를 인터넷에서 검색해 알려주기도 했다. 경비원 할아버지가 칭찬해 줄 때마다 어깨가 으쓱해졌다. 내 가슴 높이까지 오던 로켓은 어느새 내 키를 넘어섰다.

지하실에 갈 때마다 경비원 할아버지는 나에게 코코아를 타주었다. 뜨거운 김이 올라오는 코코아가 식기를 기다리며 로켓을 구경하고 있으니 경비원 할아버지가 물었다.

“로켓이 그렇게 좋아?”

“당연하죠. 전 나중에 커서 로켓 만드는 사람이 될 거예요.”

“우리 때는 자동차가 최고였는데… 내가 자동차 만드는 일을 했었거든. 그동안 만든 부품이 백만 개는 될 거다. 그때는 지나가는 차마다 전부 내가 만든 부품이 들어가 있었다니까.”

경비원 할아버지는 자동차 이야기를 또 한참 했다. 가끔은 아이엠에프 같은 내가 알지 못하는 어려운 말을 꺼내기도 했다. 그렇게 많은 자동차를 만들었는데 정작 자기 차는 없다는 이야기를 중얼거릴 때는 눈썹 끝이 처져서 우울해 보였다. 자동차 이야기가 끝나나 싶었더니 다시 티포트 이야기로 돌아가는 바람에 지루해졌다. 내가 발돋움해서 로켓 안쪽을 구경하는 데 열중하자 경비원 할아버지가 말했다.

“로켓이 무슨 쓸모가 있는지 나는 아직도 모르겠다.”

“우리 할아버지도 그렇게 말했는데.”

커피는 써서 마시기 싫지만 향기를 맡는 건 좋았다. 커피 향이 나는 코코아나 코코아 맛이 나는 커피가 있으면 좋겠다. 나는 커피 향을 맡으며 코코아를 홀짝였다. 빈 종이컵을 내려놓은 경비원 할아버지가 손등으로 입을 닦고 물었다.

“뭐라 하시던?”

“네?”

“로켓 말이다. 네 할아버지가 뭐라 하셨는데?”

“쓸데없는 게 우라지게 비싸구나, 막 이랬어요.”

굵은 목소리를 흉내 내며 말하자 경비원 할아버지가 한쪽 입꼬리를 올렸다.

“그래서 내가 말해줬죠.”

나는 우리 할아버지 앞에서 그랬듯이 고개를 쳐들고 팔짱을 끼며 말했다.

“우주에 버스를 타고 갈 수는 없잖아요.”

경비원 할아버지가 뭔가를 꾹 참는 것처럼 얼굴을 찡그렸다. 나는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우리 할아버지가 그랬듯이 경비원 할아버지 역시 입을 실룩거리다가 웃음을 터트렸다.



경비원 할아버지는 티포트를 부수고 있었다. 나는 깜짝 놀랐다.
오래된 티포트가 얼마나 물을 잘 끓이는지 자랑하고 또 자랑했는데…
어쩌면 너무 오래돼서 고장 났는지도 몰랐다.
경비원 할아버지는 티포트를 로켓 머리에 얹었다.
크기가 딱 맞았다.
“로켓 완성하면 네가 가져라.”


크리스마스가 가까워질수록 로켓은 빠르게 완성되어 갔다. 이제 머리 부분만 남았는데, 경비원 할아버지는 딱 맞는 고철을 찾지 못했다고 했다. 나도 아빠 몰래 부엌을 뒤져봤지만 적당한 걸 발견하지 못했다. 한동안 지하실에 가도 경비원 할아버지를 만날 수 없었다. 경비원 할아버지는 로켓을 만드는 대신 뭔가 다른 일로 바쁜 것 같았다. 그래도 작은 등을 끄지 않고 항상 켜 놓았다. 희미한 빛을 받으며 서 있는 로켓을 만져보고 싶었지만, 새끼손가락을 걸고 한 약속을 떠올리고 나는 하얀 입김만 뿜어냈다.

학원에 다녀오자 집 거실에 사람들이 모여 있었다. 이미 아는 분도 있었고, 처음 보는 분도 있었다. 인사를 하고 방에 들어가는데 ‘경비원’이라는 말이 들려와 발을 멈추고 말았다.

“최저임금이 오르잖아요.”

“그렇다고 경비원을 해고해요? 10년 넘게 일하신 분도 계신데.”

“그래서 더 문제죠. 너무 나이가 드니까 경비실에서 꾸벅꾸벅 졸더라고요.”

“무인경비 시스템을 도입하면 경비원은 필요 없지 않아요?”

잘 모르는 말이 있어서 다 이해하기는 어려웠지만 해고가 무슨 뜻인지는 알고 있었다. 경비원 할아버지가 해고되면 로켓은 어떻게 되는 거지.

나는 친구를 만난다고 하고 바로 지하실로 내려갔다. 안쪽으로 들어갈수록 깡깡거리는 소리가 크게 들려왔다. 낮에는 일해야 되니까 로켓을 만들 수 없다고 하지 않았나. 의아해하면서도 드디어 로켓 만드는 걸 구경할 수 있나 싶어 서둘러 걸음을 옮겼다.

경비원 할아버지는 티포트를 부수고 있었다. 나는 깜짝 놀랐다. 오래된 티포트가 얼마나 물을 잘 끓이는지 자랑하고 또 자랑했는데… 어쩌면 너무 오래돼서 고장 났는지도 몰랐다. 경비원 할아버지는 티포트를 로켓 머리에 얹었다. 크기가 딱 맞았다.

“로켓 완성하면 네가 가져라.”

경비원 할아버지의 말에 나는 눈을 동그랗게 떴다.

“손주 녀석은 필요 없다더라. 크기만 해서는 안 된다는구나.”

“바보 아냐? 이건 사고 싶어도 못 사는 건데.”

입을 비죽거렸더니 경비원 할아버지가 내 머리를 쓰다듬었다. 마디가 굵고 울퉁불퉁한 손이 거칠 줄 알았는데 의외로 부드러웠다. 나는 눈치를 보다가 조심스럽게 물었다.

“진짜 제가 가져도 돼요?”

“너도 많이 도와줬잖아.”

“진짜, 진짜죠?”

“그래. 크리스마스 선물이다.”

“와아!”

나는 환호를 지르며 팔짝팔짝 뛰었다. 경비원 할아버지는 내 머리를 문지르던 손으로 로켓 위에 올라간 티포트를 쓰다듬었다.

“평생 물만 끓였는데 한 번쯤 별을 구경하는 것도 괜찮겠지.”

로켓 키트가 우주까지 날아갔다는 말은 들어본 적이 없었다. 구름에만 닿아도 성능이 좋은 거라고 말하려다가 나는 입을 닫았다. 이렇게 큰 로켓이라면 우주까지 날아갈 수 있을지도 모르잖아. 벌써 그날이 기대돼 몸이 들썩거렸다.

며칠 뒤 지하실에 내려가자 경비원 할아버지는 없고 완성된 로켓만 서 있었다. 까치발을 하고 팔을 위로 쭉 뻗어야 겨우 로켓 머리와 손가락 높이가 비슷해졌다. 나는 세 걸음 뒤로 물러나 보았다. 은색, 검은색, 노란색, 빨간색 색종이를 찢어 붙인 것처럼 얼룩덜룩했다. 핸드폰으로 사진을 찍고 다시 가까이 갔다.

“내 거야.”

경비원 할아버지가 가지라고 말했으니 틀린 말은 아닌데도 어쩐지 가슴이 답답했다. 나는 주위를 두리번거리다가 조심스럽게 손을 가져다 댔다. 처음으로 만진 로켓은 울퉁불퉁했다. 서로 다른 쇳덩어리를 이어 붙인 자국이 나뭇가지처럼 불거져 있었다. 얼마 만지지 않았는데 손이 시릴 정도로 차가워졌다. 나는 얼른 주머니에 손을 집어넣고 돌아섰다.

지하실을 나와 계단을 올라가자 눈이 쏟아지고 있었다. 바닥에 깔리기 시작한 하얀 눈송이를 구경하다가 엘리베이터로 향했다. 게시판 안내문에서 ‘경비원’이라는 단어를 발견하고 자세히 읽었다. 무인경비 시스템 도입으로 경비원을 감원한다는 내용이었다. 집에 들어오자마자 나는 아빠에게 물었다.

“무인경비가 뭐야?”

“사람이 필요 없는 경비라는 뜻이야. 기계가 대신 일하는 거지.”

“감원은 뭐야?”

“사람 수를 줄인다는 뜻이야.”

그제야 나는 머릿속에서 까맣게 지워졌던 해고라는 말을 다시 떠올렸다.

“경비원 할아버지 쫓겨나는 거야?”

“쫓겨나는 거 아니야. 나이가 너무 많아서 일하기 힘들다고 그만두셨어.”

“그만뒀다고?”

꽥 소리 지르자 아빠가 눈을 크게 떴지만, 나보다 놀라지는 않았을 거다. 그때가 마지막인 줄도 모르고 혼자 좋아했다고 생각하자 미안해졌다. 동시에 깨달았다. 약속을 지켜야 할 사람은 더 이상 여기에 없었다. 나는 오랫동안 묵혀 두었던 비밀을 입 밖으로 꺼낼 때가 되었음을 알았다.

“지하실에 로켓이 있어.”

“로켓이라니?”

“경비원 할아버지랑 같이 만들었어.”

나는 그동안 있었던 일들을 모두 털어놓았다. 미리 알리지 않았다고 잔소리하던 아빠는 지하실에서 로켓을 보더니 입을 다물었다. 저녁에 회사에서 돌아온 엄마는 반대로 입을 벌렸다. 정확히는 로켓이 아니라 그 옆자리를 보고 있었다. 경비원 할아버지가 물을 끓여서 커피를 타 마시고, 컵라면을 먹던 공간을 응시하며 한동안 미간을 찡그린 채 서 있었다.

집에 돌아와 엄마와 아빠는 뭔가를 한참 상의했다. 어쩌면 크리스마스이브에 로켓 키트 발사장을 예약해 줄지도 몰랐다. 그날 밤 가슴이 설레어 뒤척거리다가 늦게 잠들었다. 그리고 꿈을 꾸었다.

꿈속에서 나는 로켓 키트 발사장에 있었다. 쏟아지는 햇빛이 눈부셨다. 주위에 수많은 로켓이 있었지만, 내 로켓만큼 커다란 건 없었다. 다들 내 로켓을 보고 감탄하며 지나가 어깨가 으쓱해졌다.

앞자리부터 차례대로 로켓을 쏘아 올리기 시작했다. 얼마 올라가지 못해 땅에 떨어지는 것도 있었고, 제법 높이 올라갔다가 천천히 떨어지는 것도 있었다. 순서를 기다리는 동안 빠르게 해가 졌다. 내 차례에는 주위가 어두워져서 도로 지하실에 내려와 있는 것만 같았다.

발사대에 로켓을 세우는데 구경하는 사람들이 몰려들었다. 그중에는 경비원 할아버지도 있었다. 내가 소리쳐 부르자 경비원 할아버지가 엄지손가락을 들어 보였다. 수많은 사람이 쳐다보자 발사 버튼에 얹은 손가락이 떨렸다. 나는 심호흡을 하고 숫자를 거꾸로 세기 시작했다.

“십, 구, 팔….”

주위에 있던 사람들이 같이 숫자를 셌다. 경비원 할아버지도 함께였다.

“사! 삼! 이! 일!”

다 같이 “발사!”를 외치는 순간 나는 버튼을 눌렀다. 불이 붙고, 모래가 움푹 파이고, 로켓이 하늘로 솟아오르자 환성이 일었다. 별이 보이지 않는 캄캄한 하늘을 향해 로켓이 날아갔다. 우주까지 가지 못하면 어쩌나 걱정했는데 로켓은 떨어지지 않았다. 희고 몽실몽실한 구름에 닿을 때까지 계속 올라갔다.

어느새 나는 로켓이 되어 있었다. 이대로 높이높이 올라가서 우주에 도착할 거고, 구덩이가 숭숭 파인 달도 볼 거고, 뜨겁지만 멋지게 타오르는 태양도 보게 될 거야. 우주에서 보는 별은 얼마나 예쁠까. 언젠가 우주선을 타고 화성에도 가야지.

물이 끓을 때와 비슷한 냄새의 구름을 지나자 어두컴컴한 밤하늘에 은하수가 펼쳐졌다. 아름답게 빛나는 별 무리를 보는데 경비원 할아버지가 티포트를 부수던 모습이 떠올랐다. 그러자 어디선가 코코아 맛이 나는 커피 향이 솔솔 풍겨왔다. 나는 코를 킁킁거리다가 뒤를 돌아보았다. 순간 숨이 막혔다. 로켓이 계속 날아오고 있었다. 하늘을 향해 솟아오르는 로켓과 힘이 다해 떨어지는 로켓들로 발밑이 가득했다. 그리고 밤하늘처럼 찬란하게 빛나는 도시의 불빛이 눈에 들어왔다.

나는 조금 무서워졌고, 조금 쓸쓸해졌다. 어쩌면 나는 로켓이 아니라 티포트가 된 걸지도 몰랐다. 나중에 다시 경비원 할아버지를 만나면 이번에는 내가 이야기를 한참 들려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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