잘 잊어버리고 자주 헷갈리는 편이지만, 제가 처음 쓴 글만큼은 선명하게 기억합니다. 학교 숙제로 쓴 동화 패러디였습니다. 신데렐라가 왕자의 청혼을 거절하고 재봉사가 되어 꿈을 이뤘다는 사실을 요정으로부터 전해 들은 소녀가 역시 꿈을 좇는 이야기였죠. 선생님이 반 친구들 앞에서 낭독하도록 했을 때 이름을 모르는 감정들이 몸 안을 간질였습니다. 아마도 그것이 시작이었던 것 같습니다.
처음에는 마냥 재미있었습니다. 인터넷 공간에 자유로이 글을 쓰고 내보일 수 있게 되면서 그것으로 충분하다고도 생각했습니다. 책을 내고 싶은 욕심이 없지 않았지만, 그럴 만한 재능도 열정도 부족하다고 믿었죠. 거센 풍랑과도 같았던 시기를 거치며 많은 것이 달라졌습니다. 지푸라기라도 잡고 싶었던 손에 어릴 때부터 함께해 온 책을 쥐고 있었죠. 구원이라고 하기에는 거창하고 위안이라고 하기에는 소박하지만, 덕분에 침몰하지 않을 수 있었습니다. 한때 그만두려던 씀을 계속하자고 마음먹은 계기이기도 합니다.
걸어도 되나 싶었던 길이 이제 걸을 수 있는, 걸어야 하는 길이 되었습니다. 소설이란 무엇일까. 동화란 무엇일까. 발견했다 싶으면 다시 멀어지는 썰물 같은 질문을 껴안고 계속 끙끙대겠죠. 만약 허락된다면 어리다는 말로 가둘 수 없는 다채로운 존재에게 내보일 글을 쓰고 싶습니다. 파도가 훑고 가는 해안가에서 우연히 주운 조개껍데기에 찰나 머무른 빛깔이 되기를 소망합니다.
긴 시간을 통과해 인연이라는 말을 이해하게 되었습니다. 여기까지 이름을 다 나열하기 힘들 정도로 많은 분께 도움받아 왔습니다. 당선을 가장 먼저 축하해 주신 김지은 아동문학평론가님, 최나미 동화작가님, 감사합니다. 바닥을 더듬듯이 써오며 간간이 그려왔던 선배처럼 진심 어린 조언을 건네주셨죠. 그 다정함을 품에 안고 더 열심히 쓰겠습니다.
언제나 존경하고 친애하는 자수정 문우들, 변함없이 곁을 지켜준 ㅁㅅㅁ와 미와 윤과 정, 사랑하는 가족… 미처 깨닫지 못하고 스쳐 지나가고 만 요정 같았던 분들에게도 이 기회를 빌려 감사 인사와 새해 인사를 전합니다. 모쪼록 다양한 모양의 행복이 두루 피어나기를.
△ 고민실. 1978년 울산 출생. 대학에서 컴퓨터공학을 전공했다. 동화와 소설 창작을 병행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