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2025 신춘문예 - 평론 심사평
매년 그렇듯, 문학 평론 분야의 투고작 수는 다른 장르 투고작 수를 절대적으로 밑돌았다. 그러나 상대적으로는 그렇지 않았는데 올해 이 부문 투고작 수만 놓고 보면 평년의 두 배에 달했다. 이른바 ‘한강 효과’가 문학 평론 부문에까지 미칠 줄은 몰랐다. 새삼 노벨 문학상 수상의 ‘사건성’을 실감했다.
평년보다 훨씬 많은 작품이 투고되었으니 기대도 컸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우려도 없지 않았는데, 이런 현상이 일시적이어서 채 가다듬어지지 않은 평문들이 많이 투고되지 않았을까 싶은 이유였다. 그랬으니 한 편 한 편 읽어 나갈수록 우려보다 기대 쪽으로 마음이 기우는 경험은 즐거웠다. 단숨에 제쳐 놓을 만한 작품이 몇 편 되지 않았고, 대부분 숙독이 필요한 글들이었다.
우선 눈에 띄는 경향은, 이즈음 한국 문학장의 최대 이슈 중 하나라 할 만한 ‘비인간 객체’에 대한 논의가 부쩍 늘었다는 점이었다. SF, 포스트휴먼, 신유물론의 관점에서 작품들을 독해한 글들이 양적으로도 질적으로도 눈을 끌었다. 물론 페미니즘 관련 글들이 그 뒤를 이었다. 페미니즘 비평은 아직 생산력을 전혀 잃지 않아, 예리하고 뜨거운 문장들을 품고 있는 경우가 많았다.
숙독 후, 마지막까지 손에서 놓지 못한 것은 네 편의 글이었다. 김초엽의 ‘스펙트럼’과 우다영의 ‘태초의 선함에 따르면’을 ‘하드하게’ 읽어낸 글 ‘태초의 선함에 따르면’은, 인문학적 SF 읽기의 나이브함에 이의를 제기하며 과학적 근거와 설득력을 갖춘 SF 읽기를 강조하고 또 예시한 글이다. 지금 시점에 꼭 필요한 문제제기였다. 다만 논의 대상의 범위가 너무 좁아 전체 한국 문학장을 포괄하는 넓은 시야의 부재가 아쉬웠다.
유사한 말을 ‘안에 사람들이 있잖아’에 대해서도 할 수 있겠다. 이 글은 서호준의 두 시집 ‘소규모 펜클럽’과 ‘엔터 더 드래곤’을 흥미롭게 분석한 글이다. 게임 속 공간의 토폴로지라고나 할까? 그러나 앞의 글과 마찬가지로, 서호준의 시를 읽는 데 아주 유효해 보이는 필자의 독법이 어떤 방식으로 한국 문학장 혹은 비평장 전반에 대해 유의미한 질문이나 답변을 던지고 있는지는 가늠하기 힘들었다. 말하자면 문맥이 부족했다.
김기태와 문지혁의 소설을 중심으로 ‘리얼리즘’의 다른 용법에 대해 탐구한 글 ‘개인적 리얼리즘’도 흥미로웠다. 전형이나 총체성 같은 전통적 ‘사실주의’의 기율이 아니라 고립적이고 비관적인 현실을 나름대로 리얼하게 살아가는 주인공들로부터 새로운 리얼리즘의 등장을 발견하려는 시도가 엿보였다. 다만 그 분석이 ‘개인적 리얼리즘’이라는 명칭을 부여받았으되, 얼마나 새로운 결과로 이어졌는지는 미지수다.
고심 끝에 당선작은 ‘Frame? Flame! - 김민정, 이소호, 권박의 첫 시집을 중심으로’로 결정했다. 이 글 또한 완전히 만족스러운 글이라고는 할 수 없다. 우선은 왜 하필 ‘세’ 시인의 ‘첫’ 시집인지 그 이유가 납득할 만큼 명확하지 않았다. 그리고 쉽사리 프레임 바깥을 꿈꾸고 선언하는 것보다 ‘프레임 안에서 외치기’가 때로 더 전복적이라는 전언 역시 낯설 만큼 새로운 주장은 아니다. 그러나 이 글의 최대 장점은 시야의 넓음에 있다. 20년 전의 미래파 시인과 최근의 젊은 시인을 ‘프레임’이라는 키워드 중심으로 매끄럽게 묶어내는 능력, 그리고 지금 제기된 우리 사회의 젠더 이슈에 어떻게든 비평적으로 개입하려는 정치적 감각을 두루 갖춘 글이었다. 당선자에게 축하의 말을 전한다.
김형중 문학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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