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3 비상계엄 사태의 막후 설계자로 알려진 노상원 전 정보사령관이 ‘버거 보살’과 같은 패러디물 소재로 회자하고 있다. 노 씨는 2018년 성추행 사건으로 전역 후 점집을 운영해 온 역술인으로 알려져 있다. 그런 그가 김용현 전 국방부 장관과의 인연을 통해 비상계엄 결정에 영향을 끼쳤다는 정황들은 더 황당하다.
정치인들이 객관적인 데이터, 조직 내 의사결정 과정을 따르지 않고 무속에 의지해 국가 중대사를 결정하는 것은 심각한 문제다. ‘지리산 도사’로 불린 명태균 씨가 윤석열 대통령 부부 책사 역할을 하며 대선에 깊이 관여해 온 사실도 놀라운 일이다. 대통령실 용산 이전에 법사와 풍수 전문가들이 동원됐다는 말도 돌고 있다. 예로부터 정세가 혼란하면 도사나 법사가 판을 쳤다.
그러나 경계해야 할 것은 무속에 대한 정치인들의 과도한 의존이지 무속 그 자체라고 할 수 없다. 무속은 오랜 역사를 통해 우리 생활에 뿌리내려온 전통 신앙이다. 한국리서치가 2022년 2월 발표한 여론조사 결과에 따르면 5년 새 점(사주·타로·관상·신점 등)을 본 경험이 있는 이들이 전체 응답자의 41%에 달했다. 점을 보는 이유도 거창하지 않았다. 인생사의 불확실성을 줄이려거나 그저 재미로 보는 사람이 많았다. 가족의 승진이나 입시, 병마와 관련해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무속에 의지하는 사람들도 있다. 정치인들도 다르지 않다. 하루아침에 눈썹 문신을 하고 나타난다거나, 멀쩡한 조상 묘를 이전하는 일은 무속과 연관이 있을 가능성이 크다. 공적인 영역으로 넘어오지 않은 개인 일을 정치인이라는 이유만으로 나무라기는 어렵다.
그런데도 무속은 천박하고 위험한 것이라는 일반화는 정치권에 이미 횡행하고 있다. ‘종북몰이’에 버금가는 새로운 낙인 방식이다. 과거 ‘주사파’ 딱지에 학을 떼던 야권 인사들은 똑같은 방식으로 ‘무속’이나 ‘친일’ 딱지를 붙이고 있다. 정치권에서 ‘무속’ 낙인은 합리적 판단을 할 수 없는 무능한 인물이라는 의미를 갖는다. 박지원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한 고위 공직자 배우자를 향해 “무속에 너무 많이 심취해 있다”고 했는데, ‘무속’ 딱지를 붙여 인신공격 및 명예훼손을 하려는 의도가 빤히 드러나는 처사다.
딱지를 붙이고 낙인을 찍는 행위는 매우 편리하지만, 폭력적인 방법이다. 이것저것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낙인 찍는 것만으로도 특정 세력을 배제하는 효과를 낳는다. 중세 마녀사냥, 반공 몰이와 매카시즘, 한국의 종북 딱지가 그랬다. 최순실 사태 이후 ‘무당 정치’라는 말이 횡행하자 애꿎은 무속인들이 욕을 먹기도 했다. 건진법사, 천공 모두 정통 불교와는 거리가 먼 이들이다.
사회를 후퇴하게 하는 것은 무당이 아니라 무속, 종북, 친일을 향해 묻지도 따지지도 않는 낙인 그 자체다. 건강한 정치를 영위하려면 우리는 계속해서 귀찮은 질문을 던져야 한다. 정치인에게 허용되는 무속은 어디까지인가. 종북 비판을 할 수 있는 반국가행위는 어떤 수위인가. 일본과 교류를 강화하는 오늘날 진짜 친일 행위는 무엇이고, 친일 몰이는 어떤 것인가. 다양한 맥락과 의미, 의도를 찾는 과정에서 우리 정치는 한 뼘 더 성장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