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무안공항 추모행렬 줄이어
임신 20일 차 딸 잃은 어머니
“네 방 따뜻하게 해뒀는데” 통곡
주차장서 분향소까지 200m 줄
“3시간 기다려도 조문하고 갈 것”
활주로 옆에도 떡국·핫팩 ‘추모’
무안=노수빈·이재희·조언 기자
“딸이 둘째 임신한 지 한 달도 안 됐어요. 여행에서 돌아오면 따뜻한 방에서 재우려고 보일러를 빵빵하게 틀어놨는데, 지금 저 찬 바닥에 누워있어요….”
2일 오전 전남 무안국제공항에서 만난 ‘12·29 무안공항 제주항공 참사’ 사망자 유족 김모(66) 씨는 가슴을 치며 하염없이 눈물을 흘렸다. 김 씨는 이번 사고로 첫째 딸 고모(43) 씨를 잃었다. 고 씨는 6년 만에 둘째를 임신한 임신 20일 차 산모로 “신생아 육아를 하려면 당분간 여행을 못 간다”며 중·고교 동창 4명과 함께 태국 여행길에 올랐다. 엄마 김 씨는 “여행가기 일주일 전 손녀와 딸, 여자 셋이서 온천 여행을 갔는데, 그게 마지막 추억이 됐다”며 “사망자 명단에 내 딸 이름이 있는데, 아직도 믿을 수가 없다. 마치 꿈을 꾸는 것 같다”고 말했다.
참사 발생 닷새째인 이날 무안공항 1층 합동분향소를 찾은 유족들은 가족의 영정사진과 명패 앞에서 목놓아 울었다. 한 유가족은 수프가 담긴 종이 그릇과 김밥을 손에 꼭 챙긴 채 “○○아, 집에 가야지. 집에 가서 밥 먹어야지. 아침 먹자, 응?”이라며 되뇌었다.
새해 첫 평일임에도 불구하고 시민들은 이른 시간부터 분향소를 찾았다. 충남 홍성군에서 농사를 짓는다는 강신만(53) 씨는 “오전 5시에 일어나서 2시간가량 직접 운전해서 왔다”며 “희생자 한 분 한 분의 이름을 불러드리고 싶은 마음에 일찍 출발했다”고 울먹였다. 제주항공 직원 권모(35) 씨는 “신원확인이 안 된 이들도 모두 온전하게 발견됐으면 하는 마음으로 조문했다”고 말했다. 유족들에게 전복죽을 나눠주는 봉사를 하고 있던 정의헌(31) 씨는 “유족들이 오히려 봉사자들에게 ‘고맙다’며 따뜻한 말을 건네고 있다”고 전했다. 새해 첫날인 지난 1일에는 추모객이 몰리면서 공항 외부 주차장까지 200m의 줄이 만들어지기도 했다. 3시간가량의 조문 시간에도 시민들은 “직접적인 현장이 여기니 여기서 조문하겠다”며 추운 날씨에도 꿋꿋하게 자기 순서를 기다렸다.
추모 행렬은 공항 내 계단과 활주로 앞 철조망까지 이어졌다. 1일 오후부터 공항의 1층과 2층을 잇는 계단에는 추모객과 유족들의 추모 메모가 붙었다. 시민들은 ‘안전하고 따듯한 곳에서 편히 쉬세요’ ‘다시는 이런 참사가 반복되지 않는 안전한 대한민국 함께 만들어가요’ ‘외롭지 않고 따듯하고 행복한 여행 하세요’ 등 애도를 표하는 메시지를 붙였다.
이번 참사로 세상을 떠난 가족과 친구를 그리워하는 편지들도 시민들의 눈시울을 붉혔다. 순식간에 부모를 잃은 자녀들은 ‘왜 나 두고 갔어. 엄마 평생 보고 싶으면 어쩌지 나 아직 엄마 보낼 준비가 안 됐는데…’ ‘우리 엄마, 우리 누나, 못 지켜줘서 미안해 세상에서 제일 예쁜데 말을 못 해줬네’ 등의 편지를 남겼다. ‘상냥하고 사근하게 동료들을 챙겨주시는 모습이 늘 인상적이었던 기장님’이라며 사고 항공기 기장을 그리워하는 편지도 붙어있었다. 난간 가득 붙은 쪽지를 바라보던 유족 A 씨는 “나와 같은 고통을 느끼는 사람들이 많다”며 메모지를 연신 손으로 쓸어댔다. 무안공항 활주로 인근에는 폴리스라인이 쳐져 일부 구간이 봉쇄됐지만 시민들이 놓은 핫팩, 빵 등이 줄지어 놓여 있었다. 함평군에서 왔다는 한 시민은 “새해 떡국도 못 드시고… 한 그릇 가져왔습니다”라며 사고 현장에 떡국을 놓고 가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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