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충남 사회부장

독선·불통 권위주의형 리더십
제왕대통령·극단 정치도 심화
의대 증원 밀어붙여 갈등 확산

87체제 바꿀 개헌 필요하지만
연금·노동 등 4대 개혁 더 절실
민주 리더십 세워야 개혁 성공


12·3 비상계엄 사태에다 12·29 무안공항 제주항공 참사까지 겹치면서 힘겹고 우울한 새해다. 탄핵소추 여파도 계속되고 있다. 수사에 불응하는 윤석열 대통령은 새해에도 지지자들을 향해 “이 나라를 지키기 위해 끝까지 싸울 것”이라고 했다. 극우 성향 지지자들 외 여론의 반응은 싸늘하다. 문화일보 칼럼 ‘보수의 진짜 배신자’ 댓글을 보니 ‘경제 추락시키고 자영업자 몰락의 길로 안내’ ‘분노조절장애’ ‘보수우파의 배신자’ 등이 달렸다. ‘계엄이라는 납득 불가 행동, 리더 모습은 눈 씻고 찾을 수 없다’는 등 비난 글도 넘쳤다. 원로 보수 논객 조갑제 씨조차 “특수부 검사를 오래 하다 보니까 국민을 피의자로 보고 세상을 만만하게 본 것 같다”며 무능하고 국민에 대한 예의가 없다고 비판했다.

무엇이 이런 참담한 상황에 이르게 했는가. 그의 통치 스타일은 ‘권위주의적 리더십’ 그 자체였다. 대통령 이미지는 독선, 독단, 불통, 외골수, 독불장군에다 부정선거 음모론에 심취한 망상까지 더해졌다. 마키아벨리는 군주론에서 ‘통치자는 사랑받기보다 두려운 존재로 여겨지는 편이 더 낫다’고 했는데, 이를 따르고 싶었던 것 같다. 비상계엄 당시 평소 증오했던 인사들에 대한 체포조 가동, 구금, 수사 계획과 부정선거 수사를 통한 국회 해산, 이를 대체할 별도 입법기구 신설 계획까지 드러났다.

민주적 리더십을 결여한 윤 대통령은 자신의 ‘4대 개혁’도 망가뜨렸다. 노동·교육·연금·의료 개혁과 저출생 극복은 국가 어젠다였다. 국민적 공감대도 컸다. 그럼에도 일방적인 개혁 추진은 저항의 강도만을 키웠을 뿐이다. 의료개혁이 대표적이다. 필수·지역 의료 위기 해결을 위한 의대 증원은 압도적 다수의 지지를 받았다. 하지만 2000명 증원을 밀어붙이면서 전공의들과 의대생들의 집단 사직과 동맹휴학이라는 강력한 반발을 불렀다. 단계적 증원을 해도 목표 달성이 가능하다는 조언에는 귀를 닫았다. 27년 만의 의대 증원 자체만으로도 성공인데 숫자에 집착했다. 의정 갈등 심화로 총선 패배 위기에 놓인 한동훈 당시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이 중재에 나섰지만 허사였다. 증원 과정에서 박단 전공의 대표를 딱 한 차례 만난 것 외엔 의료계 설득 노력도 사실상 전무했다.

지난해 5월 제21대 국회 막바지에 여야가 어렵게 타협한 국민연금 개혁안도 구조개혁을 동반해야 한다는 명분으로 거절했다. 보험료율을 현행 9%에서 13%로 인상하고, 소득대체율을 현재 42%에서 44%로 올리는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의 제안을 수용했다면 역시 27년 만의 연금개혁에 성공할 수 있었다. 대다수 언론이 사설에서 구조개혁도 필요하지만 일단 모수개혁부터 해야 한다며 여야 합의 수용을 촉구했다. 이제는 모수개혁조차 쉽지 않은 상황이 됐다. 민주적 리더십은 소통과 설득을 통해 비전에 대한 공감대를 형성하고 대화와 타협을 통해 실행하는 리더십을 의미한다. 윤 대통령이 개혁에 저항하는 세력을 ‘처단’하는 것이 아니라 설득하고, 공식적으로 딱 한 번 회담한 이 대표를 정치 파트너로 인정했다면 여소야대 한계 속에서 개혁을 실천한 대통령으로 평가됐을 것이다.

1987년 체제가 만든 현행 5년 단임 대통령제는 승자 독식과 권력 집중을 부른 ‘제왕적 대통령’과 정권 획득에만 매몰된 양당 구도 고착으로 정치 양극화를 심화시키고 있다. 극단화한 정치 구조는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역대 대통령들의 리더십을 권위주의형으로 몰고 간다. 검사 출신인 윤 대통령에서 극단화했을 뿐이다. 박명림 연세대 교수는 “대통령 개인과 대통령제의 이중 리스크 극복은 한국 공동체의 존망이 걸린 문제”라고 일갈했다. 중앙집중 권력의 분산, 의회 권력과 대통령 권력 간 견제와 균형, 실질적 다당제 등 협치의 제도화가 필요하다. ‘로마 공화정의 몰락-독재의 탄생’을 펴낸 에드워드 와츠 캘리포니아대 교수는 ‘한국 사람들은 제도와 구조, 정치 지도자들의 건전성 유지를 최우선 과제로 삼음으로써 이미 쟁취한 자유를 계속 지키길 희망한다’고 썼다. 비상계엄을 막아낸 시민의 힘으로 민주적 리더십 선출과 민주공화정에 충실한 헌법 개정이 꼭 이뤄질 것으로 믿는다. 그래야 개혁에 성공할 수 있다.

김충남 사회부장
김충남 사회부장
김충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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