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역사 속의 This week
은퇴 후 예능 프로그램에 출연해 말 많은 친근한 이미지로 ‘투 머치 토커’라는 애칭이 생긴 야구인 박찬호. 30년 전에는 한국인 첫 메이저리거로 ‘코리안 특급’이라 불리며 한국 야구 역사를 새롭게 써내려갔던 스포츠 영웅이었다.
그는 1994년 1월 12일 미국 프로야구 메이저리그(MLB) LA 다저스에 입단했다. 이날 로스앤젤레스(LA) 코리아타운의 한 호텔에서 열린 입단식에서 피터 오말리 구단주와 토미 라소다 감독이 참석한 가운데 박찬호는 등번호 61번 유니폼을 들고 활짝 웃었다. 자신이 쓰던 16번을 원했으나 다저스의 투수 코치가 사용하고 있어 16번을 뒤집은 61번을 선택했다고 한다.
공주중, 공주고를 거쳐 한양대 2학년에 재학 중이던 그는 시속 160㎞에 육박하는 강속구로 스카우터들의 주목을 받았고, LA 다저스와 계약금 120만 달러라는 파격적인 조건으로 계약을 맺고 메이저리그에 진출했다. 그러나 애틀랜타 브레이브스를 상대로 한 데뷔전 등에서 부진한 투구를 보이며 20일도 안 돼 마이너리그로 내려갔다.
절치부심 끝에 빅리그로 돌아온 그는 1996년 4월 시카고 컵스전에서 첫 승을 기록했고, 1997년부터 2001년까지 5년 연속 두 자릿수 승수를 기록하며 정상급 투수로 우뚝 섰다. 한국이 외환위기로 힘들었던 시절, 그가 보내오는 승전보는 국민에게 용기와 희망을 줬다.
다저스에서 맹활약한 박찬호는 2001년 자유계약선수(FA) 신분이 되면서 텍사스 레인저스와 5년간 6500만 달러 초대박 계약을 하고 이적했으나 부상 등으로 인해 3년간 14승에 그치며 먹튀 논란이 일기도 했다. 이후 샌디에이고 파드리스, 뉴욕 메츠, LA 다저스, 필라델피아 필리스, 뉴욕 양키스, 피츠버그 파이리츠 등 여러 팀에서 뛰었다. 2010년 10월 통산 124승을 거두며 아직도 깨지지 않고 있는 메이저리그 아시아 선수 최다승 기록을 세웠다. 그로부터 두 달 뒤 17년간의 메이저리그 생활에 마침표를 찍었다. 그는 일본프로야구 오릭스 버펄로스를 거쳐 고향 팀인 한화 이글스에서 뛰다가 2012년 은퇴를 선언했다.
21세에 메이저리그에 진출해 데뷔 30주년을 맞은 지난해 그는 한국에서 최초로 열린 MLB 개막전 시구자로 나섰다. 자신이 현역시절 뛰었던 LA 다저스와 샌디에이고 파드리스의 경기에서 그는 두 팀의 유니폼이 반반으로 섞인 유니폼을 입고 마운드에 섰다.
한국 야구 메이저리그 선구자였던 그는 시구에 앞서 “30년 전에는 그 이후에 벌어질 일들을 전혀 상상하지 못했다. 하루하루가 사실 쉽지 않고 어려웠다. 그 결실이 30년 후에 한국에 이런 일이 벌어지는 역사가 됐다”고 되돌아봤다. 30년 전에 썼던 글러브를 끼고 그가 힘차게 던진 공은 포수로 나선 후배 김하성(샌디에이고 파드리스)이 받았다.
김지은 기자 kimjieun@munhw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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