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당(明堂)’이라는 말을 들으면 어떤 이미지가 떠오를까? 무덤과 집을 만들면 자손과 집주인이 번성하고 부귀영화를 누리는 곳, 마을이 있으면 판사와 검사가 많이 나고 박사가 넘쳐나는 곳, 궁궐이나 대통령 관저가 들어서면 나라가 번영하는 곳 등등 이런 것이 아닐까? 모두 풍수의 관점에서 바라보는 명당의 이미지다. 그런데 놀랍게도 최초의 명당 개념에는 그런 의미가 전혀 들어 있지 않았다. 어학사전에서 ‘명당’이라는 단어로 검색하면 보통 이렇게 나온다.

①어떤 일에 썩 좋은 자리 ②임금이 조회(朝會)를 받던 정전(正殿) ③풍수지리에서, 후손에게 장차 좋은 일이 많이 생기게 된다는 묏자리나 집터.

③은 풍수의 관점에서 만들어진 명당의 정의다. ①은 ③이 변형돼 현재 ‘운동 경기나 공연에서 구경하기 좋은 자리’ ‘돈을 잘 벌 수 있는 길목’ 등을 가리킬 때 쓴다. ②가 중국의 고전 ‘주례(周禮)’ ‘예기(禮記)’ 등에 기록된 최초의 명당 개념이다. 조회는 모든 벼슬아치가 함께 모여 임금에게 문안을 드리고 국가의 중요한 사안을 아뢰던 일, 정전은 궁궐에서 조회가 거행되는 건물이다. 백과사전에서 ‘명당’의 기원을 찾아보면 대략 이렇게 나온다.

천자(天子)가 하늘의 명을 받아 백성을 다스린다는 중국 고대의 정통적 정치사상을 나타내는 상징적 의미를 담은 건물이다. 조회나 제사, 경사스러운 상을 주는 경상(慶賞), 뛰어난 선비를 뽑는 선사(選士) 등 국가의 중요 의식이 행해졌다. 하나라에서는 세실(世室), 은나라에서는 중옥(重屋)이라 하다가 주나라에서부터 명당이라 하였다.

만약 명당의 최초 개념 ②만 사용되던 고대 중국에서 누군가 ①과 ③의 의미로 명당이란 용어를 쓰고자 했다면 그것은 천자에 대한 반역이다. 성공하면 모르지만 성공하지 못하면 죽음뿐이다. 다행히 우리나라에서는 명당의 의미가 역사적으로 계속 변해 왔고, 지금도 변하고 있다.

국립중앙도서관 학예연구관

기사 추천

  • 추천해요 0
  • 좋아요 0
  • 감동이에요 0
  • 화나요 0
  • 슬퍼요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