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매주 영화는 개봉하고, 관객들은 영화관에 갈지 고민합니다. 정보는 쏟아지는데, 어떤 얘길 믿을지 막막한 세상에서 영화 담당 기자가 살포시 영화 큐레이션을 해드립니다. ‘그 영화 보러 가, 말아’란 고민에 시사회에서 먼저 감 잡은 기자가 ‘감’ ‘안 감’으로 답을 제안해봅니다.
(19) 15일 개봉 ‘노스페라투’
공포영화 新거장 로버트 에거스
중세시대 유럽 뱀파이어 재해석
특수효과 없이 맨몸 공포 연기
음산함 극대화하는 촬영기법 등
화려한 비주얼 대비 서사는 단순
로버트 에거스 감독의 영화 ‘노스페라투’(15일 개봉)는 기이하고 생생한 악몽 같다. 꿈에선 말도 안 되는 일이 실제로 벌어지듯, 관객은 과학으로 설명할 수 없는 뱀파이어(흡혈귀)의 저주를 체험한다. 에거스 감독은 흡혈귀 이야기를 현대적인 관점에서 다시 풀어내기보단, 중세 유럽에서라면 있었을 법한 일을 목격하듯 만들었다.
외로운 소녀 엘렌(릴리 로즈 뎁)은 누구든 자신의 영혼에 와달라고(“Come to me.”) 간청하고, ‘어둠에 속한 자’ 노스페라투/올록 백작(빌 스카스가드)이 화답한다. 그때부터 엘렌은 노스페라투가 등장하는 악몽을 꾸고, 노스페라투는 그녀의 영혼과 몸을 완전히 정복하길 원한다. 속임수를 통해 남편 토마스(니콜라스 홀트)를 자신의 성으로 불러낸 노스페라투는 엘렌을 향해 다가온다(“He’s coming.”). 꿈과 현실 양 갈래로 엘렌에게 마수를 뻗치는 노스페라투는 드디어 엘렌이 사는 독일에 도착하고(“He’s here.”), 도시엔 노스페라투가 몰고 온 전염병이 퍼진다.

노스페라투는 ‘병을 옮기는 자’란 의미를 가진 뱀파이어의 별칭이다. 독일 표현주의 거장 프리드리히 빌헬름 무르나우는 저작권 시비를 피하기 위해 브램 스토커의 ‘드라큘라’에서 이름과 설정을 바꾼 ‘노스페라투’(1922)를 만들었다. 공포 영화에서 가장 많이 묘사된 캐릭터인 드라큘라와 달리 ‘노스페라투’는 이번 영화까지 단 두 번 리메이크됐다. 어릴 적 원조 ‘노스페라투’의 광팬이었다는 에거스 감독은 귀가 뾰족한 대머리인 기존 노스페라투의 외형에 콧수염을 붙이고 강한 성적 매력을 더한 절충안을 만들어냈다.
영화 초반 토마스가 노스페라투가 파놓은 덫인 성으로 빨려 들어가듯 가는 방식이 인상적이다. 카메라의 유려한 이동을 통해 상하좌우를 의도적으로 뒤바꿔 혼돈을 극대화했다. 초반 거대한 그림자가 뿜어내는 노스페라투의 존재감은 압도적이다. 긴 손톱 등 부분적으로만 신체를 드러내며 신비로우면서 무서운 존재란 점을 각인시킨다.
카메라는 공중을 표류하며 으스스한 기운을 뿜어내고, 알 수 없는 악마적 힘이 시공간을 뒤튼다. 호러 팬이라면 황홀할 순간이 몇 있다. 눈과 입에 피가 줄줄 흐르고, 비둘기를 산채로 뜯어 먹는 고어(gore)한 장면도 나온다. 노스페라투가 커다란 손 그림자를 엘렌을 향해 뻗으며 도시 전체가 어둠에 빠져드는 장면은 인상적이다. 저주에 걸린 듯한 음산한 분위기가 영화 전편에 흐른다.

여성인 엘렌을 중심으로 이야기가 펼쳐진다는 점은 새롭다. 보통 뱀파이어 영화는 흡혈귀나 흡혈귀 사냥꾼이 주인공인 경우가 많았다. 엘렌은 성적 갈망의 본능으로 노스페라투에 끌리면서도 진정한 사랑을 추구하며 남편을 지키려 한다. 엘렌을 연기한 뎁은 그녀의 영혼이 노스페라투에 잠식될 때마다 몸과 팔다리를 비틀고, 경련을 일으키며, 눈을 까뒤집는다. 특수효과 없이 맨몸으로 만들어낸 공포다.
그러나 노스페라투가 엘렌과 가까워질수록 매력은 반감되고 무서움은 줄어든다. 엘렌에 대해 맹목적으로 애정을 갈구하는 노스페라투는 더 이상 신비로운 존재로 느껴지지 않는다. 원조와 달리 노스페라투와 엘렌의 동침이 직접적으로 나오는 것도 이를 부채질한다. 화려한 비주얼에 비해 서사가 낡고 단조로운 탓에 공허하단 인상도 준다. 출연진이 화려하다. 감독과 세 번째 호흡인 윌렘 데포는 극에 부족한 유머 감각을 끌어올리며 템포를 살린다.
이정우 기자 krusty@munhw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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