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종진 한국보훈복지의료공단 이사장이 지난 12월 23일 강원 원주 보훈공단 집무실에서 진행된 문화일보 인터뷰에서 보훈병원 위상 강화와 보훈 의료·복지 서비스 개선 방향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원주 = 박윤슬 기자
윤종진 한국보훈복지의료공단 이사장이 지난 12월 23일 강원 원주 보훈공단 집무실에서 진행된 문화일보 인터뷰에서 보훈병원 위상 강화와 보훈 의료·복지 서비스 개선 방향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원주 = 박윤슬 기자


■ 현안 인터뷰 - 취임 100일 윤종진 한국보훈복지의료공단 이사장

美 보훈분야 주체는 공무원
실리 안따지고 유공자 예우
韓은 공단 직원이 담당하며
여전히 경제성 고려 분위기

보훈병원의 첨단 의료환경
의수 등 보장구 분야 최고
2023년 기준 일반 환자 8%
위탁병원 늘면 이용 증가


원주 = 정충신 선임기자 csjung@munhwa.com

윤종진(57) 한국보훈복지의료공단(이하 보훈공단) 이사장은 “국가 보훈 중 상해를 입은 국가유공자들을 위한 보훈 의료·복지 서비스는 나라의 존립, 국격과 관계가 있다”며 “앞으로 국가유공자뿐 아니라 제복근무자, 지역주민으로 공공의료 서비스 대상을 넓혀 보훈병원의 임무와 역할을 확대하겠다”고 밝혔다.

8일로 취임 100일을 맞은 윤 이사장은 “미국은 보훈에 대해서는 경제성을 고려하지 않고 지원한다”며 “국가를 위해 희생한 사람들을 예우하는 보훈정책이 국민통합에 기여하는 만큼 충분한 보상을 해야 한다는 공감대가 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그는 “우리나라는 아직까지 보훈을 경제성 위주로 판단하는데 이제는 보훈병원을 공공의료의 한 축으로 보는 인식의 전환이 필요한 시점”이라고 강조했다. 보훈공단은 전국 6개 보훈병원과 8개 보훈요양원, 위탁병원 등을 통해 국가유공자들에게 밀착형 서비스를 제공한다. 인력 규모 면에서도 300여 개 정부 산하 공공기관 중 10위권에 해당하는 매머드 기관이다. 지난 12월 23일 치악산이 바라보이는 강원 원주 보훈공단 집무실에서 윤 이사장 인터뷰가 진행됐다.

―마지막 국가보훈처 차장, 초대 국가보훈부 차관을 거쳐 보훈공단 이사장이 된 감회가 남다를 것 같다.

“정부가 지향하는 여러 가치 중 가장 기본이 국가를 위해서 희생한 분들에 대한 제대로 된 예우, 즉 보훈이라 생각한다. 보훈공단은 보훈을 행하는 가장 큰 집행기관이다. 이런 의미 있는 기능을 수행하는 기관의 이사장을 맡게 돼 굉장히 영예롭게 생각하며 큰 책임감을 느낀다. 근무하는 동안 뭔가 하나는 제대로 이룩하고 가야겠다는 마음이 있다.”

―보훈 의료가 왜 중요한가.

“‘일상 속 살아있는 보훈’을 실천하는 중요한 역할을 담당한다. 국가유공자 고령화에 따라 병원과 요양병원, 요양원을 이용하는 수요가 증가했기 때문이다. 공단은 전국 6개 보훈병원과 3개 요양병원, 8개 보훈요양원, 보훈재활체육센터 등을 운영하고 있다. 단일 체계로는 국내 최대 규모의 공공의료·복지기관으로 성장했다.”

―보훈 의료 시스템은 국가유공자만을 위한 공공병원으로 인식되고 있다.

“보훈 의료 수준에 대해서는 여러 가지 평가가 있겠지만, 오해도 섞여 있다. 중앙·광주·부산·대구·대전 보훈병원은 보건복지부가 시행하는 공공보건의료 시행결과 평가에서 4년 연속 최우수 등급을 받는 등 상위권을 유지하고 있다. 공단은 보훈 의료의 미래도 준비하고 있다. 국가유공자를 비롯해 군인·경찰·소방·해양경찰·법무 공무원 등 전현직 제복근무자, 지역 주민으로 공공의료 서비스 대상을 넓혀 보훈병원의 임무와 역할을 확대하려고 한다. 전국 네트워크를 갖추고 다양한 서비스를 제공한다는 보훈 의료의 장점을 살리면 공공의료 분야에서도 충분히 더 많은 일을 할 수 있다고 확신한다.”

―국가 보훈 영역 속에서 보훈 의료 시스템 개선이 왜 필요한가.

“국가 보훈은 크게 세 가지 영역으로 나뉜다. 유공자가 생활하는 데 어려움이 없도록 물질적·경제적 보상이 첫 번째다. 둘째는 불편함이 없도록 의료·복지 서비스를 제공하는 것이다. 셋째, 희생이 헛되지 않도록 선양하는 보훈 문화 확산이다. 이 중 가장 중요한 것이 상해를 입은 분들을 위한 의료·복지 서비스다. 이는 나라의 존립, 국격과 관계가 있기 때문이다.”

―미국과 우리나라의 보훈 정책 차이점과 보훈 의료 개선 방향은.

“우리는 보훈부 산하 공공기관인 보훈공단이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는데, 미국은 보훈 담당자가 모두 공무원이다. 우리나라보다 체계가 잘 잡혀 있는 선진국 사례를 참고해서 의료·복지 서비스를 개선해 나가려고 한다. 보훈공단이 수립한 중장기 경영전략에는 중증 진료 역량 강화와 차세대 병원정보시스템(HIS) 도입 등 의료 경쟁력을 높일 방안들이 포함돼 있다.”

―전공의 집단행동 등의 영향으로 보훈 의료 인력 운용 및 공단 재정 상태가 좋지 않은 것으로 알고 있다.

“의료 인력 운용과 공단 재정 문제는 서로 맞물려 있다. 재무 구조를 개선하려면 보훈병원 진료 활성화가 시급한데, 이를 위해서는 의료진을 충원해야 하기 때문이다. 공단은 전공의 공백 대안으로 전문의 중심체계 전환, 진료지원(PA) 간호사 확대를 추진하고 있다. 최근 재무 구조가 다소 악화된 데는 구조적인 원인이 있다. 보훈 가족에 대한 서비스 수준을 유지하면서도 민간 병원·요양원과 달리 영리적으로 운영할 수가 없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국가의 지원이 더욱 절실하다.”

윤 이사장은 “보훈부와 힘을 합해서 보훈공단의 재정적 실정을 알리고, 국가 예산을 확대 지원받아 보훈 가족에게 충분한 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며 “복권기금 등을 활용해 민간 대학병원, 상급종합병원 못지않은 시설을 갖춘 보훈병원을 100% 이용할 수 있도록 모든 직원이 일심동체가 돼 더 일하는 조직으로 만들고자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국가에서 조금 더 도와주고 우리가 더 열심히 보훈 가족에게 의료·복지 서비스를 제공하다 보면 재무건전성도 좋아지리라 기대한다”며 정부 지원을 요청했다.

―보훈병원의 위상을 높이기 위해 공공의료기관으로서 역할을 강화해야 한다는 지적이 있다.

“보훈공단이 운영하는 보훈병원은 공공의료기관으로서 차별화된 장점을 갖고 있다. 고령인 국가유공자에게 질병 치료만큼 중요한 것이 재활이다. 암이나 심혈관·호흡기 질환 등을 치료하는 과정에서 신체 기능이 떨어지고, 보행 장애 같은 후유증도 생기기 때문이다. 공단은 보훈병원 한 곳에서 ‘급성기 치료-재활-요양’이 모두 가능한 통합형 진료 시스템을 구축했다. 보훈병원에서 치료를 마친 환자가 다른 병원에 갈 필요 없이 바로 재활과 요양서비스를 받을 수 있도록 촘촘한 연계 시스템을 마련하고 있다.”

―보훈병원 통합형 진료시스템은 어떻게 운영되는가.

“중앙(서울)·부산·광주병원은 재활센터와 요양병원을 모두 가동하고 있으며 대구·대전병원은 재활센터를 개원했다. 말기암 환자와 가족을 돌보는 호스피스 완화의료센터도 운영 중이다. 중앙보훈병원은 서울 남부와 강원 지역을 담당하는 권역 호스피스센터로 지정돼 전문인력 양성, 지역사회 교육까지 담당하고 있다. 광주보훈병원에도 호남권 최대 규모(29병상)인 완화의료센터가 있다. 이런 시스템은 민간 의료체계에서는 제공이 불가능하다. ‘급성기 치료-재활-요양’에서 호스피스, 임종과 장례까지 이어지는 통합형 서비스를 제공하는 공공의료기관으로는 보훈병원이 유일한데, 앞으로는 공공의료 서비스의 모델까지 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

―보훈병원을 전 국민이 이용할 수 있다는 건 잘 알려져 있지 않다. 일반 환자는 얼마나 되는가.

“2023년 기준으로 일반 환자는 전체 인원의 8% 수준이다. 지역별로는 광주가 16.9%, 대전이 10.0%로 높은 편이고, 환자가 가장 많은 서울 중앙보훈병원은 5.0%로 평균보다 낮다. 국가유공자와 일반 환자는 똑같이 진료를 받을 수 있고, 진료비를 정산하는 방식만 다르다.”

―일반 병원에 비해 보훈병원 장점은.

“보훈병원은 최첨단 의료 장비를 적극 활용하고 있다. 특히 중앙보훈병원은 복권기금으로 대형병원 10여 곳만 보유한 첨단 암 치료장비인 선형가속기(트루빔 에스티엑스)를 도입해서 사용하고 있다. 또 전쟁에서 팔과 다리를 잃은 상이군경을 위해 시작된 의수·의족 등 보장구 분야는 보훈병원이 가장 풍부한 노하우를 보유하고 있다. 훌륭한 인프라를 갖춘 보훈병원을 지역 주민들이 많이 이용하면 좋겠다.”

―보훈의료체계가 지원 대상이나 범위, 인프라 등 양적으로 급성장한 데 비해 접근성이나 질적 성장은 부족했다는 지적이 있다.

“보훈의료체계는 공단이 직접 운영하는 6개 보훈병원과 위탁병원으로 이뤄져 있다. 이 비율을 어떻게 할지에 대해 논란이 있지만, 저는 공공의료체계(보훈병원)를 중심으로 하면서 위탁병원을 추가해 조화를 이뤄야 한다고 생각한다. 또 양적 성장과 질적 성장도 균형을 이루고자 한다. 먼저 접근성 측면에서는 위탁병원이 늘어나고 있다. 전국 위탁병원은 정부 정책에 따라 2027년까지 1140곳(시·군·구 평균 5개소)으로 확대될 예정이다. 보훈부는 보훈병원이 없는 지역에서 신뢰도 높은 공공의료기관이 보훈병원 역할을 하는 준(準)보훈병원 제도도 검토하고 있다.”

―보훈의료체계 편의성 강화를 위한 대책은.

“급성기 치료-재활-요양을 보훈병원 안에서 한 번에 받을 수 있는 통합의료서비스를 활성화하려 한다. 예를 들어 급성기 치료를 마친 환자가 바로 옆 재활센터에서 일상 복귀를 준비하고, 만성 질환으로 요양병원에 입원한 환자의 상태가 나빠지면 곧바로 보훈병원으로 옮기는 것이 가능하다. 중앙보훈병원이 시작한 진료비 자동결제(하이패스) 시스템도 다른 보훈병원으로 확대하고 있다. 또 대중교통과 자가용 승용차를 이용하는 고객을 위한 투자도 진행했다. 중앙보훈병원은 서울 지하철 9호선 중앙보훈병원역과 연결 통로를 개통했고, 대구·대전 보훈병원은 주차장을 확충했거나 공사 중이다.”

―보훈공단이 의료진 수급 문제를 개선하기 위한 대책은.

“의료진 수급은 가장 어려운 문제다. 공공기관 경영지침 등을 준수해야 해서 민간처럼 자유롭게 채용하고 대우를 결정할 수 없어 안타깝다. 보훈병원 의료진은 공익을 위해 봉사하는 성격이 강해 정책적인 배려가 필요하다. 현장에는 급여가 낮은 편인데도 보훈이라는 가치가 좋아서 사명감을 갖고 근무하는 훌륭한 의료진이 많이 있다. 그런 만큼 신규 채용을 통한 충원과 함께 현재 근무 중인 의료진에 대한 처우 개선을 추진하고 있다. 지도 전문의 수당 신설, 전공의 수련 수당 확대, 진료협력센터 전담 인력 지원이 이뤄지면 상황이 한결 나아질 것이다. 보훈병원 공중보건의 복무기관 재지정, 지역 2차병원 특화지원 대상 포함 같은 제도 개선과 관련 예산을 정부에 요청한 상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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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충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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