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승훈 논설위원

헌법에 관한 상식 무너진 시국
野 마패였던 내란죄 철회 논란
벚꽃 대선 셈법에 대의도 훼손

탄핵 정국이 진영 대결장 변질
정치투쟁에 尹 반전 기회 노려
헌법 신뢰 세울 헌재 책임 막중


법이 다스리는 나라다. 왕이나 권위주의 권력, 독선의 지도자가 아니라 ‘우리는 법의 제국의 신민이며, 법의 방법과 이념의 신민’(로널드 드워킨 ‘법의 제국’)이다. 그 나라의 기초는 ‘근본’ ‘권리장전’ ‘최고 규범’, 그 무엇으로 정의하든 바로 헌법이고 그것의 실질적 효력을 담보하는 보루가 헌법재판 제도다. 국민주권이 곧 의회주권이던 시대에 국회가 제정한 법률도 기본권을 침해하는 현실(미국 마버리 대 매디슨 사건)을 시원으로 헌법질서 수호를 위해 마련된 것이다. 나라마다 유형이 다르지만, 법률을 헌법에 부합하도록 통제하고, 탄핵과 국가기관 권한 다툼을 심판한다. 대의민주주의에 기초해 인민민주주의를 굴복시킨 주역이기도 하다.(성낙인 ‘헌법학’)

헌법과 헌법재판소에 대한 이런 상식이 이 나라에선 속절없이 무너지고 있다. 헌법이 개정된 38년 전엔 상상조차 못한 사태와 사건이 연속 발생한 탓은 있을 것이다. 완벽한 제도가 있으랴만, 일이 터지면 숭숭 뚫린 구멍이 보이고 제도 때문이라고 이구동성 몰아간다. 하지만 헌법상 권한이라며 탄핵안 발의 건수가 최다를 기록했고, 이를 빌미로 헌법상 권한이라며 비상계엄 사태가 벌어졌다. 이게 위헌·위법이라며 대통령을 탄핵소추 해놓고 줄 탄핵을 했다. 대통령의 체포·수색 영장 집행을 놓고도 위헌·위법 소송이 난사된다. 헌법과 법률을 자기 이해에 따라 자의적으로 해석하고, 억지 논리로 선동하고(惑世) 사람을 유인하는(誣民) 일이 다반사다. ‘제도적 자제가 헌법 정신’이란 문구는 교과서에 사장됐다.

더불어민주당이 윤석열 대통령에 대한 탄핵심판에서 ‘내란죄’를 놓고 소추 사유 철회 논란을 일으킨 것은, 그런 편의적 헌법 사용법의 절정이다. 소추 사유도 공소장처럼 변경할 수 있고, 심리 내용의 동일성이 유지된다면 법리상 가능하다. 그런데 그 엄중한 새벽에 국회에 모여 비상계엄 해제를 의결하면서 “국헌 문란 목적으로 군경을 동원해 폭동을 일으킨 내란죄”를 부르짖었던 민주당이다. 경악하고 분노한 국민 가슴에 통탄할 못처럼 박힌 게 내란죄다. 대통령만이 아니라 국무위원, 군·경찰 수뇌부에 ‘오라를 받으라’고 불호령 하는 암행어사 행세를 한 민주당의 ‘마패’가 내란죄였다. 제 뜻대로 하지 않으면 ‘내란 공모’ ‘내란 부역자’로 낙인 찍고, 권한대행 총리마저 탄핵소추를 하지 않았나. 그 대의명분을 정작 법정에서는 사실상 외치지 않겠단다.

민주당이 주장하는 ‘신속한 국정안정’의 속뜻이 ‘조속한 대선 실시’란 것을 설마 대중이 모르리라 생각하진 않았을 것이다. 그대로 감행한 것은, 헌법과 법률을 자의적으로 활용하는 게 어느덧 습벽이 됐음을 의미한다. 이재명 대표가 제1당의 당수와 의원 배지의 권력, 온갖 편법의 수사·재판 지연으로 위기를 넘겨 온 게 2년 반이나 됐다. 더는 5개 재판에 생사여탈을 맡기지 말고, 탄핵심판을 2월 말까지 끝내서 ‘4월 벚꽃 대선’으로 가자. 잠시 비난을 받는 것은 대선 승리로 갈아엎을 수 있다. 그게 셈법일 텐데, 그로 인해 탄핵 정국은 정치 패거리 싸움으로 변질했다. 내란죄 철회 논란은 비상계엄 선포에 대한 국민 심판을 진영 간 세력 대결로 뒤바뀌는 방아쇠가 됐다.

탄핵소추의 정쟁화는 윤 대통령이 바라던 것이다. 진작 지지자들에게 “끝까지 싸우겠다”고 하지 않았던가. 대리인단의 변호사는 아예 탄핵심판은 “집단과 집단의 경연장이고 온 국민이 참여하는 체제·가치·이념 투쟁의 장, 전쟁의 장”이라고 했다. 수사주체 논란에다 체포·수색 영장 발부와 집행과정에서 공수처의 헛발질까지 겹쳐 기세등등이다. 반(反)이재명의 진지를 구축해놓고 버티면 불구속 상태에서 방어하면서 반전의 기회가 올 거라고 믿는 듯하다. ‘법 위에 군림하는 사람 없다’는 원론은 귓등으로 흘린 지 오래다. 어쩌다 윤 대통령도, 이 대표도 사법 리스크 탈출의 모델로 도널드 트럼프를 경외하는 처지가 됐는지. 두 사람에게 ‘헌법 수호’는 허언이다.

탄핵심판에 조금의 하자라도 있다면, 정치 후폭풍과 국민 분열, 내전(內戰)의 도화선이 될 게 분명해졌다. 사법의 정치화를 막을 주체는 헌재다. 헌법에 대한 ‘존중의 태도’가 공정과 정의를 견인한다는 당연한 원리를 보여줄 책임이 헌재에 지워졌다.

오승훈 논설위원
오승훈 논설위원
오승훈

기사 추천

  • 추천해요 0
  • 좋아요 0
  • 감동이에요 0
  • 화나요 0
  • 슬퍼요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