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이현우의 Deep Read - 음모론으로 본 탄핵정국
巨野의 ‘의정 폭주’가 쌓이고 쌓여 ‘尹 희생자’ 프레임 형성…‘탄핵 반대·尹 수호’ 논리로
경쟁 아닌 전쟁 되면 정치가 설 땅 사라져… 탄핵심판 공정성·국가제도 신뢰성 확보돼야

◇합리성의 과잉
전상진 서강대 교수는 음모론이 비합리적이고 근거 없는 주장이라는 폄하를 거부하고 ‘합리성의 과잉’이라는 관점에서 해석한다. 그가 제시하는 음모론의 분석 틀은 윤 대통령 수호에 나선 집단을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된다. 윤 대통령 지지자들을 단순히 민주주의 원칙을 알지 못하고 비판 능력을 결여한 맹목적인 추종자 집단으로 치부하면 정치 위기를 정확히 진단하는 것을 가로막는다.
음모론은 현실을 부당하게 느끼고 분노하는 사람들에게 단순명료하게 그 부당함의 원인과 책임 소재를 밝혀준다는 점에서 매력적이다. 이들에게 음모론은 감정적 상처를 치유하고 도덕적으로 선한 ‘우리’를 공격하는 악한 ‘그들’을 명백히 타기팅 함으로써 도덕적 자긍심을 북돋운다. 정치적 전략으로서 음모론은 자신에게 제기된 비판이나 의혹을 회피하는 데 유용하다. 김건희 여사의 디올백 사건에 대해 불순한 의도를 가진 접근이었다는 점을 강조해 뇌물을 제공한 인물을 범죄자로 낙인찍음으로써 프레임 전환이 가능해졌다. 합리성의 과잉을 이용한 음모론적 논리는 대통령 지지자들에게 비판적 여론의 압박을 덜어주는 유용한 명분이 됐다.
음모론은 또 ‘대통령=희생자’ 프레임을 제공한다. 대통령이 계엄을 선포할 수밖에 없었던 이유는 더불어민주당의 횡포 때문이라는 논리다. 민주당이 윤 대통령 집권 전부터 끊임없이 김 여사 의혹을 제기하고 국회에서 재의결에 실패한 김건희 특검법을 반복해서 통과시킴으로써 대통령을 괴롭혔다는 주장 역시 사실과 합리성에 기반한 것이다.
대통령이 국회를 무시한다는 비판에 대해서는 민주당이 ‘다수의 폭정’으로 법안들을 일방적으로 통과시켜 대통령이 거부권을 행사할 수밖에 없는 상황에 놓였다는 논리를 댈 수 있다. 대통령이 국회를 무시한 것이 아니라 다수당인 민주당이 대통령과 갈등 관계를 조장한 탓이라는 논리가 성립되는 셈이다.

◇음모론의 구조
특히 여소야대 상황에서 민주당은 대통령에게 끊임없이 좌절을 안겨줬다. 윤 정부 들어 민주당이 탄핵을 시도한 건이 29건이나 된다. 예산심의 과정에서 민주당은 대통령 추진 정책예산을 콕 집어 대폭 삭감했다. 민주당이 온갖 수단을 동원해 대통령을 핍박한다는 이러한 희생자 되기 전략은 지지자들을 동원하는 데 효율적이다.
음모론은 결국 상대를 악마화하는 수단으로 사용된다. 지난 총선 과정에서 이재명 민주당 대표는 ‘비명횡사’ 공천을 통해 민주당을 일극 체제로 만들었다. 이후 민주당의 모든 정치 행위는 이재명 대통령 만들기 프로젝트의 액세서리다. 무려 8개 사건, 12개 혐의에 5개의 재판을 받는 이 대표의 범죄와 주변 인사들의 극단적 선택 같은 것도 음모론의 소재로 동원된다. 이 대표는 윤 대통령 탄핵사태를 맞아 헌재에는 신속한 심판을 압박하면서 자신의 재판과 관련해서는 지연 전략을 구사한다.
이 같은 사실에 토대를 둔 합리성의 과잉으로 응결된 음모론은 결론적으로 이 대표가 국가지도자가 되기에는 법적·도덕적 흠결이 너무 많다는 결론에 이른다. 부정선거에 대한 의혹도 심각하다. ‘부정’으로 당선되고 다수 의석을 뒷배 삼아 대통령의 국정에 훼방을 놓는 정치집단을 대통령이 반국가세력이라 부르는 것은 당연하다는 논리가 자연스럽게 생성된다.
이처럼 음모론은 ‘비난 회피-희생자 되기-상대의 악마화’라는 3단계 구조를 통해 완성된다. 그 결과 현 정치의 부당함을 바로잡기 위해 대통령의 계엄선포는 불가피한 선택이라는 견고한 논리를 갖추게 된다. 일부 사실에 기반한 과잉 합리성을 바탕으로 음모론은 윤 대통령 지지자들이 결집하는 정당성을 제공한다. 여기에 편향적 SNS가 이들의 음모론 인식구조를 강화하는 역할을 톡톡히 하고 있다.
◇경쟁에서 전쟁으로
최근의 여론조사 결과를 보면 지난 12월 말 이후 국민의힘은 물론 윤 대통령에 대한 지지율이 오르고 있다. 심지어 대통령직을 수행하고 있을 때보다 지지율이 더 높다. 이를 위기를 느낀 보수의 결집 현상으로 설명하는 것은 너무 단순한 해석이다. 윤 대통령 지지율 상승은 정치경쟁이 정치전쟁으로 바뀌고 있다는 징후로 읽혀야 한다. 박근혜 대통령 탄핵 때와는 전개되는 상황이 다르다. 윤 대통령의 계엄선포 직후 지지율이 위축됐지만 음모론이 정비되고 확산되면서 대통령 지지의 논리적 기반이 마련돼 조직된 대응에 나서는 국면이다.
문제는 음모론이 심각한 정치 비용을 수반한다는 점이다. 정치경쟁에서는 국가 제도의 권위를 인정하기 때문에 선거 결과나 법원의 판단을 존중한다. 그러나 정치전쟁에서는 어떤 경우에도 악마화된 상대를 인정할 수 없기 때문에 그들에게 유리한 형사사법 결정에 불복한다. 한국 정치의 고질병인 진영논리를 넘어 불통의 극한에 이른다. 이성적 판단은 사라지고 선한 우리는 항상 옳다는 도그마에 빠지게 된다. 심지어 불법행위도 악마화된 상대를 분쇄해야 한다는 명분에 의해 정당화될 수 있다.
정치전쟁에 이르게 되면 목표가 정치적 이익 추구가 아니라 악마 같은 정적을 타도하는 것이 되기 때문에 공존의 가치는 상실된다. 이 단계에 이르면 민주주의의 기본가치인 양보와 타협은 그 의미를 완전히 상실하게 된다.
이처럼 심각한 갈등 상황을 해결하는 출발점은 국가제도의 신뢰성 확보다. 현재 상황에서는 헌재의 탄핵 결정에 대한 국민적 신뢰가 중요하며, 특히 심판의 결과 못지않게 종국적 결정에 이르는 과정이 중요하다. 헌재는 신속한 재판이 아니라 공정한 재판이라는 인식을 국민에게 줘야 한다. 이미 탄핵소추 사유 중 내란죄를 삭제하도록 헌재가 권고했는지 여부를 두고 헌재의 정치적 편향성에 대한 의구심이 제기되는 상황이다.
◇국가제도의 신뢰성
음모론은 그걸 비난하거나 억압한다고 사라지지 않는다. 오히려 음모론이 제기하는 의혹을 진지하게 검토하고 합리적으로 대처하는 자세가 필요하다. 대통령 탄핵 정국에서 더욱 크게 번지는 음모론이 정치전쟁을 지원하는 현실을 극복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헌재의 탄핵심판이 신중과 공정 속에서 이뤄져야 한다.
서강대 정외과 교수·전 한국선거학회 회장
■ 용어 설명
‘음모론의 시대’를 쓴 전상진 서강대 교수에 따르면 ‘음모론’은 막스 베버의 ‘신정론’과 동일한 사회적 기능을 함. 과거 세속의 질문에 답을 줬던 신정론의 자리를 지금 음모론이 대신한다는 것.
‘내란죄’는 탄핵 사유의 본질을 구성하므로 이를 철회하려면 국회 재의결이 필요하다는 의견 많아. ‘주석헌법재판소법’에 “탄핵 사유 일부가 취하되면 국회 재의결 필요하다”(677쪽)고 돼 있어.
■ 세줄 요약
합리성의 과잉 : 음모론은 때로 거짓이 지어낸 ‘허구의 총합’이 아니라, 사실에 기반한 ‘합리성의 과잉’으로 나타남. 이 같은 관점은 탄핵 반대 및 윤석열 대통령 수호에 나선 집단의 정서를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됨.
음모론의 구조 : 계엄과 탄핵 정국에서 음모론은 윤에 대한 ‘비난 회피-희생자 되기-상대 악마화’라는 3단계 구조를 통해 완성돼. 과잉 합리성을 바탕으로 음모론은 대통령 지지자들이 결집하는 정당성을 제공함.
경쟁에서 전쟁으로 : 음모론의 횡행은 정치를 경쟁에서 전쟁으로 나아가게 해. 이때 공존의 가치는 상실됨. 갈등을 해결하는 출발점은 국가제도의 신뢰성 확보이며, 현 상황에서 탄핵심판의 공정성이 굉장히 중요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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