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3 계엄은 ‘불능미수 내란’ 尹대통령도 수사 지연 안간힘 법치의 실질 훼손 갈수록 극성
지난해 12월 29일 아침 전남 무안공항에 착륙하던 제주항공 여객기가 동체착륙을 하다가 방위각제공시설(LLZ)이 설치된 콘크리트 둔덕에 충돌하면서 폭발해 불길에 휩싸였다. 이 사고로 후미에 타고 있었던 2명의 승무원을 제외한 탑승 179명 전원이 사망했다. 사고기는 중심을 잘 잡고 내려앉았지만 2m 높이의 콘크리트 옹벽을 들이받고 폭발해 처참하게 파괴됐다. 이후 사고 원인에 대한 국토교통부 공무원과 항공 관련 전문가들의 설명은 기이하게도 하나같이 무안공항의 시설에는 문제가 없었다며 감싸고도는 모습을 보였다.
국토부 항공정책실장은 방위각제공시설이 활주로 종단안전구역 밖에 설치돼 있어 ‘부러지기 쉬운 재질’로 해야 한다는 조항이 적용되지 않는다고 했다. 그런데 기자들이 찾아보니 ‘공항·비행장시설 및 이착륙장 설치기준’ 제21조 제4항에 ‘방위각제공시설이 설치되는 지점까지 종단안전구역을 연장하여야 한다’는 내용이 있었다. 이에 대한 답변은 ‘규정을 정밀 검토해서 결론을 내리겠다’는 것이었다.
언론에 출연해 사고 원인과 활주로 시설 등에 대해 설명하던 ‘항공 관련 전문가’들도 공항 시설에는 문제가 없었다며 감싸고돌긴 마찬가지였다. 콘크리트로 제작해야 했던 데 대한 답변은 대개 다음과 같았다. 정밀 접근 시설은 오차가 있으면 안 되므로 단단한 구조물로 받치고, 강풍 등 외부 요인으로부터 보호를 받아야 한다. 부러지기 쉬운 재질로 제작돼야 한다는 것은 지침일 뿐이다. 국제민간항공기구(ICAO) 규정은 권장사항이다. 그 내용이 국내에 적용되는지에 대해서는 정밀 검토가 필요하다.
국토부 고시를 담당 공무원이 모를 리 없다. 항공 전문가들이 활주로 설치기준 관련 법규를 모를 리도 없다. 관련 규정은 아무리 들여다봐도 오해의 여지가 없는 명백한 내용이다. 그런데도 애써 설명을 복잡하게 함으로써 규정 위반의 명확성을 흔들려고 한다. 해당 국토부 고시는 달리 해석할 여지가 없다. 방위각제공시설을 받치고 있던 콘크리트 옹벽은 설치기준에 위배되는 시설물이라는 결론에 이르러야 한다. 그런데도 관련 공무원과 전문가들은 끝까지 법규 위반이 아니라면서 버틸 때까지 버틴다.
그런데 결국 법령 위반이라는 결론에 다다를 것이 뻔해 보이는데도 끝까지 아니라고 강변하는 모습은 낯설지 않다. 조국 전 의원은 교도소에 수감되는 순간까지 검찰 해체를 외쳤다.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는 백현동 사건, 대장동 사건, 대북송금, 성남FC, 공직선거법 위반, 위증교사 등 어마어마한 사건들로 기소됐으며, 일부는 2심 재판까지 진행 중이다. 그래도 꿋꿋하게 자신은 무죄라며 검찰이 소설을 쓴다고 말한다. 이 대표 사건들은 법률 전문가답게 지연작전이 성공하고 있다. 그래도 종국엔 유죄 판결이 확정될 것으로 예상되니 시간을 끄는 것밖에 안 되지만, 어쨌든 법치주의 구현을 온몸으로 막아서는 모양새다.
최근엔 윤석열 대통령도 이 대열에 동참한 것으로 보인다. 비상계엄 선포는 실패한 내란이었고, 수단에 대한 착오로 인해 불가능한 일이었으므로 불능미수에 가깝다. 그래도 처벌 대상이긴 한데, 수사를 가능한 한 지연시키려는 듯하다.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법에 따른 수사 대상에 내란죄가 포함돼 있지 않고, 내란이나 외환의 죄를 범한 것이 아니면 현직 대통령은 형사소추 대상이 아니므로 공수처 수사에 응할 이유는 없다. 하지만 법률 전문가인 윤 대통령이 내란죄 수사와 탄핵심판 절차를 최대한 지연시키기로 작정한 것 같다. 지연작전의 최고봉인 민주당이 윤 대통령의 전략을 간파하고 내란 행위를 탄핵 사유에서 빼기로 한 것을 보면 틀리지 않는 듯하다.
법치주의 국가는 공권력을 통해 국민에게 불이익을 부과할 때 까다로운 절차를 거치도록 제도화하고 있다. 그 제도를 잘 활용할 수 있는 능력을 갖춘 사람들이 법률 전문가들이다. 이 중 일부가 법치주의의 실질적 가치를 훼손하는 일들이 점점 더 극성을 부리는 상황이다. 이들이 국회·언론·시민단체·수사기관과 사법기관 등을 장악하며 영향력을 높여가는 중이다. 근본적인 대책을 고민할 때다. 군대를 동원하는 계엄령 선포로 해결될 문제는 분명 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