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하지만 서울에는 아파트가 충분하지 않다. 서울 전체 주택 292만 가구 중 아파트는 59% 정도인 172만 가구에 불과하다. 76만 가구가 다세대 주택(26.1%), 10만 가구가 연립·공동주택(3.6%) 등이다. 30% 정도가 소위 ‘빌라’에 산다. 빌라는 아파트에 비해 주거 선호도가 떨어지지만 어떤 곳은 수요가 몰리기도 한다. 아파트가 될 가능성이 큰 정비사업지에 위치할 경우다. 신길·아현·돈의문 등 여러 뉴타운의 저층 주거지는 지난 20년 새 84㎡ 국민 평형이 20억 원에 달하는 대단지 아파트로 상전벽해를 이뤘다. 그래서 서울에서 헌 집을 헐고 새집을 짓는 일은 여전히 황금알을 낳는 거위로 여겨진다. 당분간 낡은 집에 살더라도 재개발 사업에 기대감을 품고 빌라를 사들여 이른바 몸테크에 나서는 이유다. 이달에 분양하는 방배 6구역을 재건축한 래미안 원페를라도 로또 청약을 예고하고 있다. 한남4구역에선 시공권을 둘러싼 삼성물산과 현대건설의 각축전이 펼쳐진다.
하지만 사업성이 압도적으로 좋은 소수 사업장을 제외하면 ‘거위’는 멸종 단계에 이를 지경이다. 정비 사업 생태계가 파괴됐기 때문이다. 일례로 빌라 3개 동을 헐어 70여 가구의 아파트를 올리는 서초구 서초동의 한 가로주택정비사업지는 수개월 전에 이미 이주·철거까지 완료했지만 삽을 뜨지 못하고 있다. 복병은 서초구청이다. 옆 아파트 단지 주민들이 주차장 출입구를 아파트 단지와 멀리 떨어진 방향으로 변경해달라는 민원을 제기하자 서초구청은 조합에 민원 해소 방안을 가지고 오라고 했다.. 이미 2년 반 전에 서초구청이 건축 심의를 끝내고 사업시행인가까지 난 사안이다. 조합장은 “결국 설계를 변경하라는 압박인데 착공 직전 설계를 변경하면 사업비가 몇 억은 더 늘 것이고 사업 기간도 늘어난다. 구청은 불만이 있으면 행정소송을 걸라지만 소송에 들어가는 비용과 시간을 조합원들이 져야 하지 않느냐”며 “공사비 폭등으로 가뜩이나 수억 원의 분담금 폭탄을 맞게 됐는데 분통이 터진다”고 말했다. 구청 관계자는 “행정소송 등 방안은 여러 해결방안 중 하나일 뿐으로 대안 마련을 위해 조합 측과 협의를 진행 중”이라고 말했다.
서울에서도 가장 알짜 입지로 평가받는 지역에서도 상황이 이러한데, 다른 지역에서 새 아파트 공급은 더 말라붙을 수밖에 없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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