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정철 서울대 교육학과 교수

정부는 1990년대 중반 이후 여러 노력을 통해 대학의 자율성을 높여 왔다. 그 대표적인 것이, 대학의 설립을 비교적 용이하게 하는 대학설립 준칙주의 도입이다. 학칙의 개정에 대해서도 과거에는 정부로부터 승인을 받아야 했으나, 이제는 각 대학의 총장에게 일임됐다. 아직 남아 있는 핵심적인 규제는, 입시와 관련된 이른바 ‘3불’(본고사, 고교등급제, 기여입학제)과 대학의 등록금 책정 정도이다.

최근 서울 시내의 일부 대학이 등록금을 인상하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물론, 대학이 정부로부터 불이익을 감수하고 등록금을 인상할 수도 있다. 그러나 등록금 인상은 사회적으로 큰 파장을 일으킬 수 있는 사회적 이슈이다. 일단, 우리나라 대학의 등록금 수준은 미국·영국·호주 등 이른바 고등교육의 시장주의가 발달한 국가들을 제외하고는 아주 높은 수준이다.

2024년 기준 우리나라 대학의 연평균 등록금은 680만 원이다. 서울대 600만 원, 연세대 900만 원, 고려대 830만 원 등이다. 국립대학의 등록금은 일본 국립대학(530만 원)보다 약간 높고, 사립대학은 일본 사립대학(960만 원)보다 약간 낮다. 다만, 대만의 국립대학 등록금은 우리보다 5분의 1 수준이고, 사립대학은 4분의 1 수준이다.

또한, 일본의 경우 문부성이 국립대학 등록금을 구체적으로 결정해 고시하는데, 각 대학은 고시된 등록금의 20% 범위에서 인상할 수 있다. 그러나 사립대학에 대해서는 별도의 규제가 없다. 참고로, 도쿄(東京)대학은 2025년부터 등록금을 20% 인상하기로 했다. 등록금을 인상하면서 구체적으로 인상된 등록금을 어떤 용도로 사용할 것인지와 가정 배경이 열악한 학생들의 부담을 완화할 수 있는 구체적인 등록금 감면 방안을 제시하고 있다.

대만은 일본보다 좀 더 적극적으로 등록금을 규제하고 있다. 대만의 대학 등록금은 매우 낮은데도 사실상 대학들은 등록금을 쉽게 인상하지 못한다. 등록금을 인상하기 위해서는 정부에 그 타당성을 설명하고, 저소득층을 포함한 학생들의 등록금 부담을 최소화하기 위한 방안을 정부에 보고하고 승인을 받아야 하기 때문이다. 최근에는 교육부가 국립과 사립 간의 등록금 차이를 줄이기 위한 정책을 마련하고 있다. 이러한 정책은 학생들에게 가정 배경에 관계없이 대학교육의 기회를 주기 위함이다.

현재 등록금 인상을 검토하는 대학들은 명망이 높고, 학생 유치에 아무런 문제가 없는 학교이다. 그러나 재정 수지의 어려움을 타개하기 위해 학생의 부담을 늘리는 것만으로 문제가 해결될지 궁금하다. 재정 수지가 힘든 것은 단순히 등록금이 낮아서 생기는 문제가 아니다. 사실, 대학의 재정 여건이 어려운 이유는 지출 측면에 기인한 바 크다. 교육기관의 지출은 인건비와 시설비, 각종 기술 비용 등의 비중이 높다. 이들 항목을 세밀하게 살펴봐야 한다. 또한, 과거 정부가 추진한 각종 재정 지원 사업의 요건을 충족시키기 위해 과잉 투자된 측면도 무시할 수 없다.

대학의 재정구조상 피치 못할 사정이 생겨 대학들, 특히 사립대학들이 등록금을 인상할 수 있다. 그러나 대학의 등록금 인상을 논하기에 앞서 대학의 지출 측면에서 무엇을 어떻게 줄일 수 있는지 먼저 고민해 봐야 한다. 또한, 대학들은 등록금을 인상하지 않으면 안 되는 이유를 학생들에게 설명할 수 있어야 하고, 가정 배경이 어려운 학생들을 위한 지원책을 제시해야 한다. 우리나라 대학들 가운데 용기 있게 등록금 인상이 필요한 이유를 설명하고, 학생과 사회를 설득할 수 있는 학교들이 나타나기를 기대해 본다.

신정철 서울대 교육학과 교수
신정철 서울대 교육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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