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머 미국판 하느님 시리즈 걸작 한 꼭지. 천지를 창조한 하느님이 최초의 남자 아담을 만드셨다. 잠시 휴식을 취한 하느님이 이브를 만들려고 아담의 갈비뼈 하나를 취하셨다. 그런데 커피 한 잔을 내리는 사이, 개가 그만 갈비뼈를 물고 달아났다. 깜짝 놀란 하느님이 얼른 뒤쫓아가 개를 붙잡았지만 이미 늦었다. 꿀꺽한 뒤였다. 하느님은 하는 수 없이 갈비뼈와 비슷한 모양의 개 꼬리를 뽑아 이브를 만드셨다.
이브는 아름다웠다. 그런데 문제가 발생했다. 남자만 보면 꼬리를 쳤다. 여자 후손들이 다 그러했다. 하느님은 남자들을 모아놓고 귀띔했다. ‘여자 꼬리침을 조심해라. 자칫 유혹에 빠지면 심신이 곤궁해지고 농산물 수확량이 줄어들 것이니라!’ 그러나 사내들은 그 말씀을 귀담아듣지 않았다. 여자의 꼬리침은 하느님도 어찌할 도리가 없었다. 하느님은 혼자 탄식했다. 개도 꼬리도 자신의 창조물이었기 때문이다.
하느님 시리즈가 크게 히트하자, 많은 사람이 고개를 끄덕였다. 여자들은 내심 불쾌했지만, 분위기를 깨기 싫어 따라 웃어 주었다. 사람들이 재미 있어 하면 꼭 속편이 나온다. 하느님 시리즈도 금방 속편이 등장했다. 무수한 세월이 흐르고, 하느님이 인간들이 어떻게 사는지 보려고 내려오셨다가 깜짝 놀랐다. 젖과 꿀이 흐르던 에덴동산은 난개발로 고층 건물들이 들어서고 교회와 나란히 나이트클럽이 번쩍번쩍, 게임 센터가 뿅뿅뿅뿅, 번화가 뒷골목에는 좀비 떼처럼 마약 중독자가 흐느적흐느적…. 지구촌 인구도 어느새 수십억 명.
하느님은 다시 탄식했다. ‘여자가 얼마나 꼬리를 쳤으면 저토록 인구가 불어날 수 있단 말인가.’ 그런데 다시 자세히 보니, 엇!? 분명히 여자가 꼬리를 쳐 남자를 유혹하고 있었는데 이게 어찌 된 일인가! 여자보다 남자가 꼬리를 더 잘 치고 있지 않은가. 애교 스킬에서 여자가 우월하나 꼬리의 스케일이나 깊이 면에서는 남자의 적수가 못 됐다. 꼬리뿐이랴. 부와 권력에 아부하는 간도 쓸개도 없는 고학력 사내들. 어떤 독재국가는 할아버지·아버지뻘 부하들이 젊은 왕초 앞에 엎드려 기다시피 자리를 보전하고 있었다. 영화 ‘벤허’를 만든 감독이 시사회에서 ‘오, 주여. 이게 정녕 제가 만든 작품입니까’ 했다는데, 하느님도 그랬다. ‘오, 맙소사! 쟤들이 정녕 내가 창조한 인간들이란 말인가.’ 하느님은 모든 스케줄은 접고 지구를 떠나 버렸다.
그림 = 강철수
하느님 시리즈 속편도 인기를 끌자 얼마 안 있어 3탄이 나왔다. 하느님이 탄식을 하며 떠났었지만, 원래 사랑이 많은 분이라 어느 날 다시 땅으로 내려오셨다. 그리고 두 눈이 휘둥그레졌다. 꼬리를 치고 아부해야 출세를 하는 찌질이 문화가 저물고, 어라? 이건 또 무언가. 지구촌은 완전 1인 독재 마법사 시대로 바뀌어 있었다. 예측의 달인 마법사의 한마디는 곧 지상명령이었고, 개인도 기업도 국가도 그의 지시를 따라야 살아남는단다. 하느님은 기가 찼다. 나도 모르는 절대 권능의 마법사가 웬 놈인가 보니 인간도 유령도 아니다. 사람들은 그를 인공지능(AI)이라고 불렀다. AI는 수천 년이나 걸리는 생명공학 혁명을 불과 몇 년 만에 끝내 버렸고, 스스로 진화를 거듭, 고가의 암 치료제를 머지않아 감기약처럼 약방에서 싸고 쉽게 살 수 있게 된단다. 하느님은 참으로 어처구니가 없었다.
각종 첨단 산업의 설계·제조·보수는 물론이거니와 금리를 더 올려라 내려라, 전쟁을 해라 말아라. 모든 나라가 대통령이나 장관의 말씀보다 AI의 입만 쳐다보고 있다. 검색 엔진의 큰형님으로 추앙받던 저 막강 구글조차 AI의 종횡무진에 긴장했고, 아니 벌써 실직을 우려하는 직원들이 술렁거리기 시작했단다. 문어발에 마당발, 거미손까지 장착한 놈은 예술의 영역에까지 마수를 뻗쳐 노래를 부르고 작곡을 하고 영화를 만들고 소설까지 대량 집필 태세란다. 노벨상, 아카데미상도 놈의 손길이 닿아야 꿈을 꿀 수 있다고 하니 실업의 공포는 제조업이나 소상공인 전유물이 아니다.
그런가 하면 여론 조작으로 사회를 난장판 만드는 가짜 뉴스 제조자도 AI가 색출해 내고, 하늘을 떠다니는 스파이 위성도 AI 암행어사가 잡아 족치고 파괴하고 정보를 역이용하기도 한다니 AI는 황야의 건맨이자 정의의 슈퍼맨일까. 그 가운데 하느님이 제일 뜨끔해 한 것은, 태초에 우주를 만들 때 행성들을 여기저기 몰래 숨겨 놓았는데 AI 놈이 그것을 어찌 알았는지 2만 개나 여우처럼 찾아냈단다. 이대로라면 서민들이 즐겨 찾는 김밥·떡볶이·치즈라면은 물론 이쑤시개 만드는 데까지 이래라 저래라, 밤 놔라 대추 놔라 하지 않을까.
정말 기가 찬 일은 AI를 밥 먹이고 뒷돈을 대서 키운 이가 다름 아닌 우리 인간이라는 사실이다. 기계가 아닌 사람이 요괴 마법사를 만들어 낸 것이다. 그래 놓고 세계적 석학들이 자기네 피조물 앞에 꿇어앉아 숨을 죽이고 머리를 조아린다. 몸집이 커질 대로 커진 AI 놈이 자못 겸손한 척 이렇게 말하고 있는지 모른다. ‘인간들이시여, 저를 신이라 부르지 마세요. 다정하고 능력 있는 이웃이라 불러 주세요. 저는 그저 신의 손이 닿지 않는 곳을 어루만져 주는 신의 대리인일 뿐이랍니다.’
법이란 원래 엄정하다. 까탈스러운 것은 법정대리인이다. 정작 신보다 신의 대리인이 더 추상같다. 절제를 모르는 욕망 덩어리 인간이 AI를 만들었기에 더욱 무섭다. 사자를 연구하던 동물학자가 사자한테 물려 죽은 일이 있기에 더욱 그렇다. AI는 봄바람같이 다가와 안개처럼 지구촌을 휘감고 있다. 하느님은 우두커니 서 계시다가 쓸쓸히 하늘로 돌아가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