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럼프·文 시대 동맹 파탄 위기 尹·바이든은 핵 동맹 시대 열어 트럼프 2기 ‘셰셰 외교’는 매국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당선인이 취임에 앞서 캐나다와 그린란드, 파나마운하에 대한 야욕을 드러내 세계를 당혹하게 하고 있지만, 20일 시작될 트럼프 시대에 대한 일말의 기대감도 감지된다. 뉴욕에 본부를 둔 위기관리 컨설팅회사인 유라시아그룹은 6일 펴낸 2025년 톱 리스크 보고서에서 “역사상 유례없는 위험한 해가 될 것”이라면서도 트럼프 2기는 성공 가능성이 있다고 진단했다. 트럼프 1기(2017∼2020) 때에 비해 중국·러시아의 취약성은 커진 반면, 미국은 훨씬 강해져 트럼프 구상이 먹힐 수 있는 공간이 넓어졌다는 것이다.
트럼프의 한국 관련 행보가 부정에서 긍정 쪽으로 바뀌는 기류도 두드러진다. 첫째, 한국의 조선업에 대한 거듭된 러브콜이다. 트럼프는 6일 라디오 인터뷰에서 “해군을 재건하기 위해 군함을 만들어야 한다”며 동맹과의 공조 필요성을 강조했다. 대선 직후 윤석열 대통령과의 통화에서 한국의 군함·선박 건조 능력에 대해 먼저 얘기하면서 선박 유지·보수·정비(MRO) 분야 협력을 제안한 것의 연장선으로 “해군 관련 좋은 발표가 있을 것”이라고도 했다.
둘째, 조셉 윤 주한 미 대사대리 파견도 이례적이다. 국무부 대북정책 특별대표를 지낸 한반도 전문가를 필립 골드버그 대사 이임 직후 보내는 것에 담긴 외교적 상징성은 상당하다. 조 바이든 대통령의 결정에 트럼프 측이 동의한 결과라는 점에서 한미동맹은 정권 교체와 무관하게 지속한다는 사인이다. 제이크 설리번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과 마이클 왈츠 국가안보보좌관 지명자의 회동에서 ‘원 팀’ 의지가 천명된 후 나온 조치라는 것도 의미가 있다. 정용진 신세계 그룹 회장과 친분이 깊은 도널드 트럼프 주니어의 막후 역할도 있었을 것이다.
트럼프는 1기 때 한국에 대해 매우 부정적이었다. 한미자유무역협정(FTA) 폐기를 결심하고 서한까지 작성했을 정도다. 제임스 매티스 당시 국방장관이 “동맹 유지를 위해 필요하다”고 배수진을 치지 않았다면 한미 FTA는 없어졌을지 모른다. 한미동맹에 대해서도 “왜 우리가 부자인 그들을 지켜주느냐”는 입장을 고수했다. 싱가포르에서 북한 김정은을 만났을 때 대뜸 한미연합훈련 중단 선물을 안긴 배경이다.
워싱턴포스트 기자인 캐럴 레오닝과 필립 러커는 트럼프 1기 마지막 해인 2020년 백악관의 혼란상을 담은 책 ‘나 혼자 해결할 수 있다(I alone can fix it)’에서 동맹을 부담으로 여기는 트럼프의 행태를 생생하게 기록했다. 트럼프가 “재선되면 나토(NATO)에서 탈퇴하고 한미동맹을 날려버리겠다”고 하자, 마크 에스퍼 국방장관과 참모들은 “대선 전에 하면 정치적으로 위험하다”고 뜯어말렸다. 그러자 트럼프는 “그러면 2기 때 하겠다”며 넘어갔다고 한다. 지난해 이코노미스트가 “트럼프 재선 시 한국은 아시아에서 가장 위험해질 나라”라고 쓴 것은 이런 이유다.
한미동맹은 트럼프의 거듭된 파기 시도에 문재인 정부의 친중·친북 경향이 더해지면서 난기류였지만, 2020년 미국 대선에서 바이든이 당선되며 위기를 넘겼다. 역사에 가정은 없지만, 당시 트럼프가 재선되고 2022년 한국 대선에서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당선됐다면 어떻게 됐을까? ‘중국에 셰셰 하면 된다’는 이 대표의 친중 성향에 트럼프의 한미동맹 파기 욕구가 겹쳐져 최악의 상황이 발생했을지도 모른다.
국운 덕분인지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았고, 윤·바이든 시대 한미동맹은 핵 동맹으로 격상됐다. 윤 대통령의 전향적 한일관계 정상화 조치는 ‘캠프데이비드 합의’로 이어져 한·미·일 공조는 미국의 아시아 전략 기반이 됐다. 트럼프도 깰 수 없는 이중 삼중의 안전장치가 마련된 것이다. 문제는 다시 한국이다. 12·3 비상계엄 사태에 대한 헌법재판소의 결정에 따라 조기 대선이 이뤄질 경우 어떤 변화가 있을지 알 수 없다.
정권은 바뀔 수 있다. 그러나 평화·번영의 기반인 동맹 및 자유 진영과 거리를 두는 후보가 승리하면 미래는 없다. 규칙 기반 국제질서를 무시하는 중국과 불량국의 축인 북·러 편에 서는 것은 국가적 자살행위다. 탄핵 찬반 시위로 정국이 혼미하지만, 트럼프 시대를 국익 확장 기회로 삼기 위해선 지향점부터 확인하고 윈윈 전략을 짜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