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Leadership - 신세계그룹 정용진 회장
재계서 첫 트럼프 당선인 만나
외교·통상공백 속 역할 기대감
수시 인사·부진 CEO교체 단행
쇄신경영으로 실적개선 이끌어
이명희 총괄회장 지분도 매입
경영승계 마쳐 ‘정용진 시대’로
“지금은 우리가 몸을 사릴 이유가 없다.” 요즘 재계에서 가장 ‘핫 한’ 인물로 꼽히는 정용진 신세계그룹 회장이 최근 강조한 말이다. 정 회장은 대통령 탄핵 국면에 따른 외교·통상 공백 속 재계 인물로서는 처음으로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당선인을 만나 화제를 모았다. 일각에선 그가 대미 민간 외교의 중요성을 일깨웠다는 평가도 나왔다. 이에 정 회장은 “사업하는 입장에서 열심히 하는 것”이라며 확대 해석을 경계했지만, 재계 안팎에선 트럼프 2기 행정부 기간 정 회장의 활약을 기대하는 여론이 적지 않다. 그는 오는 20일(현지시간)에는 미국에서 열리는 트럼프 대통령 취임식에도 참석할 예정이다.

정 회장은 최근 불필요한 외부 활동을 자제하며 경영에만 몰두하고 있다. 내수침체 장기화와 고환율 등 혹독한 대내외 경영환경 속 과감한 결단으로 주목받기도 했다. 특히 실적이 부진한 CEO나 임원들에게 관행적으로 기회를 주기보다는 임기와 관계없이 물러나도록 하는 책임 경영을 강조하며 재계의 ‘온정주의’를 끊어냈다는 평가도 받았다. 이후 핵심 계열사인 이마트를 비롯해 신세계그룹 주요 계열사 실적은 극적으로 개선됐다. 정 회장은 올해 신년사에서 “조직과 사업에서 1등 고객이 어디로 향하는지 치열하게 읽고 실행해달라”고 주문하며 단기 성과에 안주하지 말 것을 강조했다.

◇화려한 국내외 인맥관계 재조명 = 정 회장의 인적 네트워크는 국내 재계 인사 중 가장 넓고 다양하다는 평가를 받는다. 사촌 간인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이부진 호텔신라 사장·이서현 삼성물산 사장은 경기초 동문이다. 특히 대학 입학 당시에는 정 회장이 서울대 서양사학과에, 동갑인 이재용 회장은 같은 대학 동양사학과에 나란히 합격해 화제를 모았다. 정 회장은 이후 서울대를 중퇴한 뒤 미국 브라운대에서 경제학을 전공했다. 이부진·이서현 자매와는 문화·예술·패션 등 관심사를 공유하며 활발한 소통을 이어가는 것으로 알려졌다. 유통업계 맞수인 롯데그룹 신동빈 회장과도 수시로 사업 관련 아이디어를 포함해 다양한 주제로 소통하는 것으로 전해진다. 정기선 HD현대 수석부회장과는 신앙적인 공감대로 오랜 기간 친분을 쌓아왔으며, 정 수석부회장을 자택으로 초대해 기도 모임을 가진 것으로도 알려졌다.
정 회장은 루이비통으로 유명한 프랑스 LVMH 그룹의 아르노 가문과도 두터운 교분을 쌓아왔다. 베르나르 아르노 LVMH 총괄회장은 신세계그룹이 발간한 80주년 기념서에 직접 축사를 보내 “부산 센텀시티점과 강남점을 방문했을 당시 신세계의 도전적이고 열정적인 기업문화에 깊은 인상을 받았다”며 “양 기업이 품격 높은 가치와 목표를 함께하고 있어 돈독한 파트너십을 만들 것으로 믿는다”고 했다. 특히 최근에는 트럼프 당선인 장남인 트럼프 주니어와의 각별한 친분이 주목받고 있다. 개신교 신자라는 공통점이 두 사람을 가깝게 만들었다는 후문이다. 최근 트럼프 주니어는 정 회장을 미국 플로리다주 마러라고 리조트에 초청해 우정을 다졌다. 정 회장은 이곳에서 국내 주요 기업인 중 처음으로 트럼프 당선인과도 만났다. 그는 대통령 탄핵정국으로 촉발된 한국 정세 불안과 관련해 트럼프 측에 “대한민국은 저력 있는 나라이니 믿고 기다려 달라”는 메시지를 전달해 눈길을 끌기도 했다.

◇혁신·쇄신 주저하지 않는 리더십 = 정 회장은 2023년 11월 그룹 전략실을 경영전략실로 개편하면서 대대적인 쇄신에 나서 화제에 올랐다. 당시 고물가에 따른 내수부진과 e커머스 공습으로 이마트는 실적 부진을 거듭하고 있었다. 정 회장은 “조직·시스템·일하는 방식까지 대대적인 쇄신을 통해 위기를 정면 돌파해야 한다”며 “온·오프라인을 망라한 국내 최고 유통기업으로 다시 도약할 수 있도록 앞장서서 노력하겠다”고 임직원들을 독려했다. 혁신을 실행하는 데도 주저하지 않았다. 그는 이듬해 4월 수시 인사를 통해 신세계건설 대표를 경질한 데 이어, 6월에는 e커머스 계열사인 G마켓과 SSG닷컴 대표도 전격 교체했다. 인사 시즌에 상관없이 실적 부진을 겪는 계열사에 대해선 과감하게 메스를 대겠다는 의지를 드러냈다는 평가가 나왔다. 신세계그룹 중추인 이마트 본업 경쟁력 강화를 최우선 과제로 삼고 실천에도 앞장섰다. 이마트는 2023년 창사 이래 첫 연간 적자라는 최악의 성적표를 받아든 바 있다. 이에 정 회장은 경영전략실 개편에 앞서 인사 단행을 통해 이마트·이마트에브리데이·이마트24의 통합 수장으로 한채양 대표를 임명했다. 통합 매입·물류를 기반으로 수익성 개선과 소비자 혜택 증대 등 본업 경쟁력 강화를 성공적으로 이끌기 위해서다. 이 같은 쇄신책을 기반으로 이마트는 지난해 상반기 흑자 전환에 성공한 데 이어, 3분기에도 실적을 끌어올려 업계의 주목을 받았다.
정 회장은 최근 미래형 혁신도시 등 신성장 동력 창출에도 관심을 쏟고 있다. 서울 여의도의 1.4배에 달하는 약 420만㎡ 규모 경기 화성시 송산그린시티 내 ‘스타베이 시티’ 개발 사업이 대표 사례로 꼽힌다. 그는 글로벌 미디어그룹 파라마운트의 지식재산권(IP)을 활용해 테마파크·워터파크·스타필드·골프장·호텔·리조트·공동주택 등을 집약한 글로벌 관광단지를 건립한다는 청사진을 세웠다. 정 회장은 ‘남매 분리경영’ 체제 안착 등 과제도 안고 있다. 앞서 지난해 정 회장 여동생인 정유경 ㈜신세계 총괄사장이 회장으로 승진한 바 있다. 마트와 백화점 사업 분리를 통해 각 사별로 경쟁력을 높이는 한편, 성장 동력을 스스로 발굴해 대내외 변화에 민첩하게 대응할 수 있는 시스템을 만드는 것이 정 회장의 주요 역할로 꼽힌다.

또 정 회장은 지난 10일 모친인 이 총괄회장의 이마트 지분 10%를 개인 자산으로 전량 사들이기로 했다. 이마트 대주주로서 지위를 확고히 다지고 책임 경영을 강화하기 위한 조치로 풀이된다.
이로써 이마트의 경영 승계 작업이 사실상 마무리되고, ‘정용진 시대’가 본격적으로 열리게 된다. 신세계그룹 측은 “정 회장이 개인 자산을 투입해 부담을 지고서라도 이마트 지분을 매수하는 것은 기업가치 제고에 대한 책임의식과 자신감을 시장에 보여준 것”이라고 설명했다.
김호준 기자 kazzyy@munhwa.com
△1968년 서울 출생 △1994년 미국 브라운대 경제학과 △1995년 신세계 전략기획실 전략팀 대우이사 △1997년 신세계 기획조정실 상무 △2006년 신세계 경영지원실 부회장 △2009년 신세계 대표이사 부회장 △2024년 신세계그룹 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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