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당이 유럽에도 있었을까? 우리나라 사람은 이런 질문을 들어본 적이 없을 테니 뜬금없는 질문으로 들릴 것 같다. 그렇다면 더 나아가 보자. 이슬람과 인도, 동남아시아와 아프리카, 아메리카의 문명 지역에도 명당이 있었을까? 지역을 늘려 가면 뜬금없는 것을 넘어 황당하다는 반응이 전부일 듯하다. 하지만 아무리 그래도 한 번쯤 질문을 던지고 답을 구해볼 만한 주제 아닐까?

명당 개념을 주산-좌청룡-우백호-안산의 산과 산줄기로 둘러싸이고 땅속을 돌아다니던 지기(地氣)가 솟아나는 곳, 무덤·마을·도시·궁궐·대통령실이 들어서면 번영하거나 부귀영화를 누릴 수 있는 곳처럼 풍수의 개념으로 한정한다면 필자가 생각해도 뜬금없거나 황당하다는 반응이 나올 만하다. 하지만 ‘임금이 조회(朝會)를 받던 정전(正殿)’이란 명당의 최초 개념에 비추어 보면 이야기가 완전히 달라진다.

조회는 임금, 즉 최고 통치자의 권위나 국가의 위상과 관련된 주요 행사인데, 이런 행사가 동아시아에만 있었을 리 없다. 구체적인 형식과 절차는 달랐을지라도 국가와 최고 통치자가 존재하는 어느 문명이든 다 있었던 행사다. 그리고 그런 행사가 거행되는 궁궐의 가장 중요한 상징 건축물 또한 구체적 이름과 모습은 달랐을지라도 국가와 최고 통치자가 존재하는 모든 곳에 있었다. 결국, ‘임금이 조회를 받던 정전’이란 중국 고대의 명당 개념은 유럽은 물론 세계 모든 문명권의 국가에 존재했다.

중국의 역사에서 풍수의 명당 개념은 처음부터 있었던 것이 아니다. 최초의 명당 개념이 탄생한 후 어떤 역사적 계기를 통해 변하면서 나타난 것이다. 그러면 그 역사적 계기는 무엇이었을까? 이 질문에 대한 답을 찾아 나가는 과정이 풍수 명당의 본질을 찾아가는 길이 될 것이다. 물론 풍수 관련 경전에 그 답이 친절하게 기록되어 있을 리 없으니, 풍수가 가장 발달한 우리나라의 다양한 사례에 대한 문명 해석학적 관점을 도입해 찾는 것이 최선의 방법이다.

국립중앙도서관 학예연구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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