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나훈아, 서울서 은퇴공연 마침표… 하나된 무대와 객석

“세계 가수중 가장 많은 히트곡
현재까지 가장 잘한 게 은퇴 결심
이젠 별 아닌 땅 걸으며 살아갈 것”

2시간30분간 23곡 홀로 소화해
마지막곡 부르며 눈물 보이기도


“박수칠 때 떠나겠다”던, “마이크를 내려놓겠다”던 그는 약속을 지켰다. 관객 앞에 무릎을 꿇고 감사를 표했고 “가요계를 기웃대지 않겠다”는 말처럼 뒤돌아보지 않고 퇴장했다. 하지만 한 가지 약속은 지키지 못했다. “울지 않겠다”고 했으나 눈가는 이미 촉촉했다. 58년 외길 인생을 정리하는 ‘트로트의 황제’ 나훈아(본명 최홍기·78·사진)의 마지막 모습이었다.

나훈아는 지난 10∼12일 서울 송파구 올림픽공원 KSPO돔에서 지난해 4월 시작된 은퇴 콘서트 ‘라스트 콘서트 - 고마웠습니다!’를 마무리했다. “여러분은 나훈아를 보러 온 것”이라며 초대 가수 한 명 없이 2시간 30분 동안 23곡을 홀로 소화했다. 무대 위에서 의상도 열 벌 넘게 갈아입으며 “본전 생각 안 나게 옷 구경이라도 하라는 것”이라고 너스레를 떨었고, ‘꺾기의 달인’이라는 별명에 대해서는 “당연하다. 뒤집고 꺾는 창법은 내가 만든 것”이라는 자부심도 드러냈다. ‘18세 순이’를 부를 때는 분홍 상의를 입고 무대 아래로 내려와 마구 뛰어다녔다. 그런 나훈아가 은퇴한다니 모두가 의아했다. 하지만 그는 “그동안 구름 위를 걸으며 살았다. 별이었기 때문에, 스타니까”라면서 “지금까지 살며 가장 잘한 게 마이크 놓는다는 결심을 한 거다. 이제 땅을 걸으며 살 것”이라고 말했다.

‘미스터 쓴소리’라는 별명답게 마지막 공연에서도 그는 위정자를 향해 일침을 놓았다. 10일 공연에서 그의 히트곡 ‘공’을 부르며 “왼쪽이 오른쪽을 보고 잘못했다고 생난리치고 있다. 왼쪽 니는 잘했나?”라면서 “너희가 지금 하는 ‘꼬라지’가 정말 국가와 국민을 위해 하는 짓거리인가?”라고 되물었다. 이 발언에 야당 측 인사들의 비판이 쏟아지자 12일 나훈아는 “국회의원인지 무슨 도지사인지 잘 들어라. 이 작은 나라가 반이 잘려 있다. 그런데 선거할 때만 한쪽은 뻘겋고 한쪽은 퍼렇고. 이것들이 미친 짓을 하고 앉아 있다”면서 “함부로 갈라치기 해선 안 된다”고 꾸짖었다. 이 외에도 나훈아는 북한 독재, 높은 자살률과 낮은 출산율을 비판하고 개탄했다.

이날 공연에서 나훈아는 자신의 58년을 반추했다. 발표한 노래 1200여 곡 중 95%를 직접 만든 그는 “세계 가수 중 히트곡이 제일 많다”고 자부했고, 역대 대통령의 사진을 건 후 “대통령은 11번이 바뀌어도 지(저)는 하고 있다”고 말해 박수를 이끌어냈다. 자신을 둘러싼 희대의 스캔들도 언급했다. “3, 4번 결혼했다고 카는데 나는 결혼식을 한 번도 안 했다”고 했고, 과거 불거졌던 신체훼손설에 대해서는 “내 보고 밑에 다 잘?다(잘렸다) 카고. 지금은 웃지만, 제 속이 어땠겠습니까”라고 특유의 농담을 건넸다.

나훈아가 선택한 58년 가수 인생의 마침표를 찍는 곡은 경상도 사나이의 뚝심과 인내를 담은 자작곡 ‘사내’였다. “사내답게 갈 거다”라는 가사는 “훈아답게 갈 거다”로 바꿔 불렀다. 이후 드론에 마이크를 날려 보낸 후 나훈아는 “이제는 여러분이 불러 달라”고 요청했고 모두가 ‘작별’을 부르는 가운데 뒤돌아 무대 아래로 사라졌다. 그의 노래 제목처럼 ‘영영’.

안진용 기자 realyong@munhwa.com

관련기사

안진용

기사 추천

  • 추천해요 0
  • 좋아요 0
  • 감동이에요 0
  • 화나요 0
  • 슬퍼요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