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때 ‘약발을 받는다’는 소식을 들은 뒤 아내(오른쪽)의 병이 나아지리라는 기대로 우리 부부가 서로 얼싸안고 좋아하던 모습.
한때 ‘약발을 받는다’는 소식을 들은 뒤 아내(오른쪽)의 병이 나아지리라는 기대로 우리 부부가 서로 얼싸안고 좋아하던 모습.


■ 그립습니다 - 나의 아내 故 박점노미(1954∼2024)

10대 후반부터 10여 년 그리움에 애타게 하다가 한집에 살면서도 그러더니 이제는 더욱 옴짝달싹 못 하게 하는군요. 함께 사는 동안 평생 당신이 묶어놓은 그리움의 끈을 끝끝내 풀지 못하게 더 단단히 조이고 간 당신. 눈에만 보이지 않을 뿐 바뀐 건 별로 없구려. 당신 떠난 지 이제 한 달 남짓, 우리가 한 몸 한 맘으로 산 결산 아닌 결산을 하면서 도저히 결산할 수 없는 그리움을 이길 수 없어 이런 시를 지어봤소.

당신이 가르쳐주고 간 대로 / 그럭저럭 밥은 먹고 사는데 // 이건 / 사는 게 사는 게 아니잖소. // 살아서도 그립더니 / 떠나니 더욱 그리워 // 당신 옆에 있어도 그리워한 인연을 / 이제야 좀 알 것도 같소. // 몸은 있거나 말거나 /그리움에 타는 불은 꺼지지 않음을 - 시 ‘혼불’ 전문

비록 유명을 달리하여 몸은 달라졌어도 당신이나 나나 꺼지지 않는 영혼은 그대로라 믿소. 나도 입이 무거운데 더 과묵한 당신, 10여 년 동안 그토록 힘겨운 투병 생활을 하면서 한 번도 이별에 대해 말하지 않은 까닭을 나는 알 듯하오. 우리 사이에 이별은 없다는 것, 그 무언의 말을 헤아려 나도 당신이 먼저 말하지 않은 이별은 절대 짓지 않을 것이오. 그러니까 잠시 몸이 나뉘어 우리 사이에 생긴 틈은 더 짙은 그리움으로 메우겠소.

돌이켜보면 당신은 참 강한 사람이었소. 한 번도 너무 무서워 소름 끼칠 일인데 그 큰 수술만 네 번이나 받으면서도 그냥 그러려니 하는 듯 내색하지 않으려 애쓰는 당신을 느낄 때마다 나는 더 아프고 서러웠소. 당신에게 배워 나도 내색하지 않으려 이를 악물었소만, 당신 아픔을 조금이라도 줄이는 일에는 아무짝에도 못 쓰는 나의 무력감에 속으로 울기만 했소. 그렇듯 나는 현실감 약한 백면서생이었소.

당신이 그랬지요. 젊을 때 시 쓴답시고 집을 겉돌며 늦게 들어오기 일쑤인 나를 못마땅해하며 시가 밥 먹여주느냐고. 그러면 나는 시인이라는 이름으로 학생들을 가르치고 밥벌이하는 줄 왜 모르냐고, 야속해서 꾸역꾸역 대꾸하곤 했지요. 당신의 바람이 뭔지 눈치채지 못하고 동문서답했던 그때의 내가 참 철부지였구나 하는 생각, 이제야 철철 넘치는 꼴이 참 가소롭소.

사람살이가 다 그렇지요. 반성과 후회 없는 삶을 살기는 애초에 글렀다는 것. 이제야 깨달은 그걸 그때 진작 알았더라면 아마 지구상에 성인이 넘쳐 평범한 사람이 오히려 드물지 않을까요. 엉뚱한 생각으로 위안 삼으려 수작하는 건 아닌지 살짝 머쓱해지네요. 이만큼 세월을 탕진하고 나니 인간이란 존재에 벗지 못할 한계가 얼마나 많은지 알겠소. 나이 먹는 일이 무상하지만은 않다는 진실을 뒤늦게 깨치며 또 한바탕 땅바닥을 치는구려.

그나저나 당신은 멀리 떠났고 나는 남았소. 당신은 마침내 아프지 않은 영생의 길에 들었고 나는 여전히 아픔이 들끓는 이승에서 당신을 그리워하고 있소. 어쩌면 늘 한 박자 느린 나에게 홀로 설 수 있는 삶의 기술을 가르치느라 10여 년의 세월을 기다리다가 더는 못 참고 나보다 한 박자 빨리 이승을 떠났는지 모르겠소. 시끄럽고 어지러운 세상은 도무지 바뀌지 않으니 차라리 당신이 영주할 그 나라가 진정한 삶의 터전인지도 모르겠소. 그렇다면… 아 그렇다면 우리 사이에 파인 틈 메울 날 그리 멀지 않을 듯하오. 안 아픈 나라에 들고 싶은 인간의 꿈은 영원하니까.

남편 이상호(시인·한양대 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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