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엄과 참사 충격 속 새해 시작 새로 시작할 용기와 위로 필요 화해의 언어는 정치 복원 첫발
그리스 민주정 때 비극이 유행 중우정치 때는 철인정치 관심 연약한 인간의 오만함을 경계
새해는 비상계엄 충격과 여객기 폭발 참사라는 상처에서 벗어나 국민의 일상이 회복되고 민생정치와 국가안보가 정상화되기를 기대해 본다. 깊은 실의에 빠진 국민에게 지금 필요한 것은, 아마도 새롭게 시작할 수 있는 용기와 위로일 것이다.
그동안 국민은 29번에 걸친 탄핵안 제출, 입법 폭주 등 국회 ‘다수결의 폭정’에 따른 삼권분립과 법치주의의 위기를 지켜봤다. 지난해에는 윤석열 대통령이 야당의 압박에 거부권 행사로 맞서다가 극단의 비상계엄 선포로 탄핵소추 당하는 참담함도 겪었다. 결국, 이것이 진영 대결로 귀결된 만큼 이제는 분열된 국민 감정을 추스르고 정화하는 정치 복원이 절실한 시점이다.
우선, 정치권부터 정쟁을 일삼는 진영 대결과 이념 양극화를 멈추고 화해의 언어를 사용하는 게 시급하다. 정치 복원의 지름길은 적대적 감정과 혐오·증오 정치를 순화하고 언어를 정화하는 일이다. 이를 위해서는 여야가 고대 그리스 비극이 어떻게 공존과 공화의 정치를 일깨워서 민주정치를 수호했는지 영감을 받을 필요가 있다.
경희대 이동수 교수의 연구 ‘고대 그리스 비극에 나타난 민주주의 정신’에 따르면, 민주정이 중우정으로 타락하기 전 아테네 민주정치를 지킨 방법은 통념과 달리 이성과 철학이 아니라, 감정을 정화하는 비극이었다. 그리스 민주정치의 최고 부흥기에 비극 공연이 꽃을 피웠다! 반대로 대화법과 산파술을 가르치던 소크라테스 이후 소피스트들의 포퓰리즘과 선동정치가 활개치던 중우정 시기엔 이에 맞선 철학과 교육을 강조하는 플라톤의 철인정치가 유행했다.
그리스 시민들은 왜 민주정치의 최전성기에 비극을 관람하는 일에 열중했을까? 비극은 시민들에게 공포와 연민을 통해 절제와 자제의 미덕, 그리고 포용과 공존의 정신을 일깨웠다. 그리스 비극은 귀족과 시민들의 갈등과 정쟁이 민주정치를 무너뜨리지 않고 화해하도록 공화정신을 일깨웠다. 고통과 비극을 통한 인간의 유한성 그리고 좌절을 통한 기대치의 한계를 직시하게 하여 인간이 초월적 신(神)이 아님을 깨닫게 했다. 이에 연약하고 불완전한 인간들끼리 서로 사과하고 용서하고 화해하도록 유도했다. 카타르시스(정화)는 마음속 정화작용으로서, 억압된 감정의 응어리를 언어나 행동을 통해 외부에 표현함으로써 정신적·정서적으로 안정을 되찾는 것을 뜻한다. 비극은 관객에게 공포와 연민을 줌으로써 시민들이 품고 있는 적대적이고 이기적이며 오만방자한 태도를 정화시켰다.
비극작가 소포클레스의 작품인 ‘오이디푸스 왕’은 그리스 시민들에게 인기가 많았다. 현대 시민들도 오이디푸스 왕에게 측은지심(惻隱之心)을 느낀다. 페르시아전쟁과 펠로폰네소스전쟁에서 각각 승리와 패배를 경험하면서 민주정치와 흥망을 같이한 아테네 시민들의 연약함을 ‘오이디푸스 왕’이 잘 보여줬다. 아테네 시민들은 부친을 죽이고 모친과 근친상간한 오이디푸스의 기구한 운명과 연약함을 보여주는 비극에 공감하면서 응어리진 감정을 풀었다. 마침내 사과·용서·화해·인내·관용·공존·공화의 정신을 배웠다. 한마디로 그리스 시민과 정치가는 타인의 비극적 삶에 대한 공포와 연민을 통해 자신의 삶을 뒤돌아보면서 삶의 용기와 위안을 얻었다.
그리스 시민들은 무대 주인공과 하나가 돼 뜻하지 않은 운명의 한계에 부닥쳐 실수하고 무너지는 체험을 공유했다. 마침내 카타르시스의 환희를 느끼면서 아테네 공화정치의 수호자가 됐다. 이는 소피스트, 포퓰리스트, 민중선동가, 참주선동가, 철인정치가, 맹신자와 다른 모습이었다.
결론적으로, 아테네는 귀족과 시민 간의 갈등에 기초한 민주정치의 한계를 견제하고 균형을 잡기 위한 수단으로 비극을 애용했다. 비극은 용서·화해·공존의 정신을 일깨우는 데 큰 역할을 했다. 영원하지는 않았지만, 이런 공화정신이 있었기에 그리스 민주정치는 그나마 유지될 수 있었다.
여야 정치권도, 정쟁을 멈추고 공화정치를 깨달아 화해의 언어를 사용하기를 기대한다. 현실의 참담함이 주는 비극의 정화작용을 통해 적대 감정을 순화하고 인간의 유한성·불완전성·연약성을 깨닫고 화해의 언어를 사용하는 데 지혜를 모을 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