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 FTA 철폐 및 관세 전쟁 우선 제조 기반 이전 압박은 커지고 세계 경제 회복은 요원해질 것
中은 테크조차 밀어내기 공세 韓 국가혁신 수준은 기업 발목 경제 현안만큼은 정쟁 멈춰야
오는 20일(현지시간) 도널드 트럼프 2기 행정부가 출범한다. 한국 경제에 축복이 될 것인가, 재앙이 될 것인가. 한국은 수출의 약 40%를 미국과 중국에 의존한다. 촉각을 곤두세울 수밖에 없는 처지다. 트럼프 2기 행정부는 공급망에서 중국을 축출하기 위한 풀 액셀을 밟을 것이다. 보조금을 우선하는 민주당식과 자유무역협정(FTA) 철폐 및 관세 부과를 우선하는 공화당식 무역전쟁 전술을 병행할 가능성도 제기된다.
미국에서 생산하는 전기차·2차전지·반도체 기업에 천문학적인 세액공제 혜택이나 보조금을 지급하는 조 바이든 행정부의 인플레이션 감축법(IRA)과 반도체 지원법(칩스법) 도입만으로도, 이미 국내 주요 기업은 미국에 수십 개의 공장을 짓거나 짓고 있다. 박종호 명지대 특임교수는 국내 기업이 미국에 짓고 있는 공장 규모를 경제 효과로 환산하면 우리나라에 광역시를 하나 세울 정도라고 한다. 트럼프 2기 행정부가 FTA를 폐기하거나 보편 관세를 부과하기 시작하면 당장 국내 전자·자동차 기업은 캐나다·멕시코에 둔 공장을 줄줄이 미국으로 옮겨야 할 판이다. 더욱이 트럼프 2기 행정부가 현 2% 수준인 관세를 예고한 대로 20% 이상으로 올리면 세계 경제는 이미 1930년대 대공황에서 경험했듯 저성장의 늪으로 깊이 빠져들 수밖에 없을 것이다.
우리가 바라는 최상의 시나리오는 미·중 무역전쟁이 석유화학·철강·조선 등 전통 제조업은 물론, 첨단 테크 시장까지 잠식하며 한국을 위협하는 중국의 추격 속도를 최대한 늦추는 효과를 내는 것이다. 성장률 둔화나 내수 침체, 과잉 투자 현상 등을 보면 중국은 선진국 도약의 문턱에서 성장 정체의 늪에 빠지는 이른바 ‘중진국의 함정’에 빠져드는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역설적이게도 중국이 헤쳐 나오기 위해 발버둥을 칠 수록, 우리 산업은 시퍼렇게 멍이 들고 있다.
중국은 내수 침체 장기화와 미국·유럽연합(EU) 관세 폭탄 복병을 만나자 이제는 전기차·정보기술(IT) 등 테크 분야에서조차도 공격적인 밀어내기 공세에 나서고 있다. 세계 전기차 1위인 BYD나 중국 IT 선두 기업 샤오미는 국내 법인을 세우고 새해 벽두부터 한국 시장 공략에 속도를 내고 있다. 테크 강국인 우리나라는 자국 브랜드에 대한 높은 충성도로 인해 비교적 안전지대로 여겨져 왔다. 이미 한국 시장을 장악한 로보락(중국산 로봇청소기)과 같은 사례가 속출하기 시작하면 한국 산업은 치명상을 입을 수밖에 없다. 중국 창신메모리테크놀로지(CXMT)는 한국과 미국이 과점해온 세계 D램 시장을 흔들며 K-반도체의 발목을 잡기 시작했다. 바이두 등은 완전자율주행 직전인 레벨4 수준에 도달했다. 중국 인공지능(AI) 기업은 미국의 AI 반도체 수출 통제에도 불구하고 이미 미국 빅테크에 버금하는 초거대 AI 구현에 성큼 다가섰다.
이런데도 우리 국가 혁신 수준은 되레 기업의 발목만 잡는다. 최근 막을 내린 세계 최대 IT·가전전시회 ‘소비자가전쇼(CES) 2025’의 주관 단체인 미국 소비자기술협회(CTA)가 매긴 국가별 글로벌 혁신 순위를 보면 한국은 전체 75개국 가운데 18위에 그친다. 해마다 CES 혁신상을 휩쓸고 있는 한국 기업의 위상을 고려하면 매우 저조한 수준이다. 국가 경쟁력 실추도, 경제 위기도 안중에 없는 여야의 극한 정쟁과 국정 공백 장기화 사태에 산업계의 위기감은 어느 때보다 크다. 오죽하면 신년사에서 정의선 현대자동차그룹 회장이 ‘이순신 정신’을 강조하고 김승연 한화그룹 회장이 ‘니체의 초인정신’을 소환했을까. 국제 신용 평가사들도 한국의 정치 혼란이 장기화해 경제에 악영향을 미치면 국가 신용 등급을 하향 조정할 수밖에 없다며 우려하고 있다.
세계 경제를 뒤흔들 트럼프 2기 행정부가 닷새 뒤면 출범한다. 미국 정계는 국익 앞에선 좌우를 따지지 않는다. 미국의 패권을 지키기 위한 보이지 않는 세력을 뜻하는 ‘딥 스테이트’(deep state)가 존재한다는 음모론이 나올 정도다. 미국 건국의 아버지 중 한 명인 벤저민 프랭클린은 “준비하지 않는 것은 실패를 준비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여야가 지금이라도 경제 현안만큼은 좌우를 떠나 국익을 우선하는 자세로 돌아서지 않는다면 우리는 회복 불가능한 기회 손실을 초래하는 실패를 준비하고야 말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