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병기 워싱턴 특파원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당선인은 사업가 시절이던 1990년 플레이보이지와 인터뷰를 했다. 그는 대통령이 되면 “미국으로 들어오는 모든 벤츠 차량과 일본 제품에 세금을 부과할 것”이라고 했고, “미국이 이른바 동맹국이라 불리는 일본이나 서독, 사우디아라비아, 한국 등과 같은 나라들의 호구가 되고 있다”고 했다. 고율의 관세 부과, 그리고 동맹에도 가차없는 방위비(비용) 분담 압박은 이미 35년 전부터 트럼프 머릿속에 있었다. 더 놀라운 것은 중국의 톈안먼(天安門) 사태와 소련의 지도자 미하일 고르바초프에 대한 평가다. 그는 인터뷰 9개월 전 일어난 톈안먼 사태에 대해 “그들은 악랄하고 끔찍했지만 강력한 힘이란 무엇인가를 보여준다. 지금 미국은 나약한 나라로 인식되고 있다”고 했다. 냉전 종식과 소련 체제 해체에 나선 고르바초프에 대해서는 “그는 엄청난 약점을 보였다. 소련을 파괴하고 있다”고 밝혔다. 그리고 트럼프는 자신의 정치적 잠재력에 대해 “나는 무엇을 팔아야 할지, 사람들이 무엇을 원하는지 안다”고 했다. 트럼프는 2016년, 그리고 2024년 대선 승리로 자신의 통찰력을 증명했다. 그의 집권 1기, 그리고 지난 대선 때 언행은 그의 정치적 식견이 1990년에서 크게 달라지지 않았음을 보여줬다.

영국의 저널리스트 기디언 래크먼은 ‘더 스트롱맨’ 책에서 트럼프에 대해 ‘집권 4년간 본능적으로 민선 대통령보다 권위주의적 스트롱맨에 가까웠다’고 썼다. 그리고 스트롱맨의 통치 방식으로 네 가지를 제시했다. 개인숭배 조장, 법치주의 무시, 엘리트가 아닌 진짜 국민을 대변한다고 주장(포퓰리즘), 공포 및 민족주의 정치가 그것이다. 트럼프에 대한 민주당의 공격, 기성 언론의 비판, 정치학자들의 우려를 범주화하고 미국식으로 변주하면 모두 저 카테고리에 들어간다. 그렇게 미국은, 그리고 세계는 4일 후 더 정제되고 독해진 스트롱맨의 귀환을 지켜보게 됐다.

스트롱맨의 귀환은 우연히 이뤄진 게 아니다. 민주주의를 위협하는 스트롱맨의 등장을 막기에 역부족인 민주주의 제도의 본질적 한계, 스트롱맨의 언행에 계속 에너지를 불어넣고 있는 민초들의 ‘팍팍한 삶’, 지속적으로 일반 국민의 보편 정서와 괴리되고 있는 정치인들의 행보가 복합적으로 작용했다. 여기에 초강대국이자 국제질서의 중심인 미국의 위상을 스스로 내려놓는 판단이 더해졌다. ‘세계의 경찰’이 되지 않겠다는 말은 전 세계를 통제하기에 역부족이라는 고백이고, 주변 국가들에 시비 거는 상황은 체면을 차릴 형편이 아니라는 방증이다. 트럼프 2기는 미국 정치의 돌연변이가 아니다. 다른 스트롱맨의 등장처럼 미국의 정치·경제·사회상이 빚어낸 현상이자 자유민주적 국제질서의 위기와 민주주의 격변기의 반영이다. 지금 당장은 캐나다와 멕시코, 그린란드에 정신이 팔려 있지만 아마 머지않은 시기, 트럼프의 시야에 다시 한국이 들어가게 될 것이다. 그리고 그 대응에 많은 게 걸려 있다. 떼려야 뗄 수 없는 한미동맹, 우리 기업들의 노력과 투자, 한반도 평화와 북핵 해법…. ‘첫 단추’가 중요하다. 스트롱맨의 보편성, 트럼프의 특수성 모두 고려해야 한다.

민병기 워싱턴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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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병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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