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독이든 배우든 60∼70세를 넘어 노배우·노감독으로 불리기 시작하면 공로상 대상이 된다. 그쯤 돼야 평생 업적을 이야기할 수 있기 때문이다. 할리우드 노배우 셜리 매클레인(91), 로버트 레드퍼드(89), 더스틴 호프먼(88)도 각종 공로상을 받았다. 하지만 누구도 최전성기에 공로상을 받진 않기에 빛나는 ‘영광’과는 별개로 아릿한 ‘황혼’의 느낌이 난다.
“60살 먹어도 잘하면 상 주는 거다. 공로상이 아니다. 연기를 연기로 평가해야지 인기나 다른 조건으로 평가하면 안 된다.” 1935년생 구순의 이순재 배우가 13일 ‘2024 KBS 연기대상’에서 드라마 ‘개소리’로 대상을 받은 뒤 이렇게 말했다. 한글 장단음을 완벽하게 구분하는 유일무이한 배우답게 그는 ‘공로상이 아니다’는 상의 의미를 정확하게 발라냈다. 젊어서 중·노년 역을 맡은 탓에 40대부터 숱한 공로상을 받은 노배우가 연기인생 69년에 ‘연기대상’을 받았다. 야윈 모습에 부축을 받으며 오른 그는 “살다 보니 이런 날도 있네”라며 “늦은 시간까지 지켜봐 주신 시청자 여러분, 평생 신세 많이 지고 도움 많이 받았다. 감사하다”며 울먹여 모두의 눈시울을 붉혔다.
1956년 연극 ‘지평선 너머’로 연기를 시작한 그는 요즘 객석을 자주 울린다. 지난해 연극 ‘고도를 기다리며’는 건강상 이유로 하차하기 전까지 노배우의 투혼에 늘 가슴 뭉클한 기립박수로 끝났고, 백상예술대상 무대에서 선보인 짧은 연극은 지금도 회자된다.
당시 오디션에 참가한 원로 배우 역을 맡은 그는 “무대는 존재 의미이며 살아가는 이유”라며 ‘배우는 어때야 하냐’는 질문에 “항상 새 작품, 역할에 도전해야 한다. 공부하고 고민하는 게 배우다”며 “예술은 완성이 없다. 완성을 향해 고민하고 노력하고 도전하는 게 배우의 숙명”이라고 말해 객석을 또 울렸다. 세상은 변하고, 삶은 굽이치고, 시간 앞에 육체는 나약하지만, 흔들림 없이 자기 일을 사랑하고 스스로 채찍질하며, 오늘도 또 앞으로 나가는 인간에 대한 경의일 테다. “몸살감기로 누워 있다가도 ‘레디 고’ 하면 벌떡 일어난다”는 구순의 현역 배우에게 존경을 보내며 관객으로 시청자로 그를 기다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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