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티이미지뱅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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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교육과 기술의 경주
클라우디아 골딘·로렌스 F. 카츠 지음│김승진 옮김│생각의힘

2년전 노벨경제학상 받은 저자
교육 퇴보를 불평등 원인 꼽아
20세기 美 발전사 되짚어 증명

“기술발전에 대졸 수요 늘지만
공급이 못따라가 양극화 심화
교육이 기술 압도할 때 발전”


‘열심히 공부해서 좋은 대학 가야 더울 때 더운 곳에서, 추울 때 추운 곳에서 고생 안 한다.’ ‘좋은 대학’이 ‘편안한 삶’을 보장해준다는 의미를 담은 이 말은 세계에서 교육열로 둘째가라면 서러울 한국에서 나고 자란 사람이라면 한 번쯤 들어봤을 것이다. 남들보다 더 많은 소득은 상대적으로 안락한 삶을 보장하기에, 행복은 성적순이 아니라고 아무리 외쳐봐도 허무하다. 성공이 성적순이라는 사실을 보여주는 예시는 주변에 널렸으니까.

그렇다면 언제부터 성적은 성공과 같은 의미가 됐을까? 전 생애에 걸친 노동과 불평등 연구로 2023년에 노벨 경제학상을 수상한 경제학자 클라우디아 골딘과 경제 활동과 임금구조를 연구해온 노동경제학자 로렌스 F. 카츠는 이 질문에 대답하기 위해 20세기 미국의 발전사를 꼼꼼히 되짚는다.

저자들은 20세기가 ‘미국의 세기’로 불릴 만큼 미국이 입지전적 산업 발전을 이뤘다고 말한다. 그리고 미국의 경제가 쾌속 발전을 이뤘던 바탕에는 전국민적 교육인구의 성장이 있었음을 다양한 자료를 통해 증명한다. 20세기 전반의 산업 고도화에 발맞춰 더 많은 사람이 더 오래 교육받으며 숙련 노동자로 거듭났다. 숙련 노동자가 늘어나면서 경제적 불평등 지표로 통용되는 지니계수 또한 평등 상태를 의미하는 0에 가까워졌다. 학습과 노력이 곧 성공으로 이어졌다.

그러나 1980년대 이후 상황이 달라졌다. 미국의 경제 성장은 지속됐지만 사회적 평등은 더 이상 나아지지 않았다. 1970년대 중반을 분기점으로 지니계수는 불평등 상태를 의미하는 1을 향해 상승하기 시작했다. 기술의 발전이 둔화하는 상황에서 오히려 불평등이 커진 것이다.

저자들은 교육 성장 지표들이 불평등 증가의 원인을 드러낸다고 말한다. 예를 들어, 1915년에 35세였던 사람들의 평균 교육 기간이 약 8년이었다면 한 세대(30년)가 지난 1945년에 35세였던 사람들의 교육 기간은 8.8년으로 0.8년 증가했다. 반면 1975년에 35세였던 사람들의 교육 기간은 9.4년으로 0.6년밖에 늘지 않아, 이전 세대보다 증가하는 폭이 줄었다. 교육 성장세가 둔화한 것이다. 이는 숙련 노동자 공급의 부족으로 이어졌고 불평등을 심화시켰다.

그렇다면 폭발적으로 성장하던 미국의 교육은 왜 멈춰 섰을까? 저자들은 책의 앞선 부분에서 20세기 중반까지 미국이 유럽보다 더욱 빠른 교육 성장을 이룬 것에 대해 다양한 이유를 들어 설명했다. 그중 하나는 미국의 주정부는 중앙행정으로부터 독립돼 있고, 이에 따라 각 지역의 공교육이 자유롭게 경쟁을 벌이며 성장했다는 점이다. 더욱이 지역의 사립학교들은 다양한 교육 실험을 꾀하며 세계적 초일류 대학으로 성장하기도 했다. 그러나 1970년대 중반 이후부터는 이것이 되레 교육의 발목을 잡았다고 지적한다. 학교들의 경제적 자립은 점차 교육 투자의 격차를 야기했다. 부유한 지역의 고등 교육기관에서는 세계 일류 대학 합격생을 안정적으로 배출하는 것과 달리, 빈곤한 지역의 교육기관들은 그저 방황하는 청소년들의 쉼터 정도의 기능을 유지하는 데 그쳤다. 소위 ‘개천에서 용 난다’는 말을 불가능하게 만드는 교육의 불평등이 전 국민적인 교육의 성장세를 꺾은 셈이다.

결국 저자들의 연구를 종합하자면 어느 정도 교육의 성장을 이룬 상태에선 중앙정부가 고른 지원으로 교육 격차를 해결하기 위해 개입해야 교육 성장세가 유지된다. 고르고 평등한 공교육의 필요성을 말한다. 불평등한 교육 환경은 국민적 교육 성장과 기술 성장 모두를 둔화시킨다. 무엇보다도 발전 속도가 느린 사회에서는 사람들이 일하면 일할수록 빈부 격차가 심해지는 아이러니가 발생한다.

저성장의 시대에 대학 졸업장만으로 인생의 성공이 보장되지 않는 것은 한국뿐 아니라 전 세계 청년들의 공통된 고민이다. 천정부지로 치솟는 가상화폐를 볼 때면 열심히 공부하고 꾸준하게 하는 노력이 무의미해 보이기도 한다. 그러나 저자들은 교육에 대한 투자가 불평등을 즉각 해결하지 못하는 것처럼 보일지라도 ‘집단 망각’에서 빠져나오길 요구한다. 다종다양한 실험으로 평등한 교육이 이뤄지고, 교육 성장이 기술 성장을 압도하던 그 순간 세상에는 더 많은 혁신과 더 적은 불평등이 존재했다는 사실을. 751쪽, 3만2000원.

장상민 기자 joseph0321@munhwa.com
장상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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