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버트 파우저 언어학자, 前 서울대 교수

숲길 걸으며 나무와 얘기 나눠
삶의 지혜 담긴 고마운 답 들어
느긋하지 못한 내겐 “기다려봐”

낙심할 때는 “절대 희망 잃지 마
60대 중반 돼 나무에 감사하자
“내가 아닌 인생이 고마운 거야”


2021년, 지금 사는 동네로 이사를 왔다. 짐을 정리한 뒤 집 근처에 뭐가 있는지 지도를 자세히 살펴보았다. 멀지 않은 곳에 커다란 녹지가 있는 것이 보였다. 꽤 넓어서 호기심이 생겼다. 걸어갈 수 있는 거리였다. 며칠 뒤 지도 속 그 녹지를 직접 찾아가 봤다. 집을 나올 때만 해도 주택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근린공원 정도이겠거니 생각했는데, 막상 가 보니 아니었다. 나무들이 제법 울창했고, 숲속으로 난 오솔길이 인상적이었다. 햇볕 쨍쨍한 더운 여름날이었는데, 큰 나무가 많은 숲속 오솔길은 울창해서 어두웠고 제법 서늘하기까지 했다. 오르락내리락하는 오솔길의 경사를 따라 걸으니 시원 상큼한 물소리를 내는 작은 시내가 나왔고, 소박한 나무다리를 건너 조금 더 걷다 보니 테니스장과 야구 연습장이 나왔다. 그곳에서 즐겁게 뛰어노는 어린아이들의 왁자지껄한 소리가 아름다웠다. 처음으로 ‘스티븐올니(Stephen Olney) 공원’을 만난 날의 기억이다.

집으로 돌아온 뒤에도 숲 생각이 떠나지 않았다. 20세기 중반에 개발이 이루어진 단독주택 단지 가까이에 삼림욕을 할 수 있을 정도로 큰 공원이 있다는 사실이 신기했다. 다음날, 다시 공원을 찾았다. 숲속을 한참 걷다가 숲 옆으로 이어진 포장된 산책길로 향했다. 큰 나무가 울창한 이 길은 잔디밭이었다. 참나무와 단풍나무가 대부분인 이 길의 경사는 완만하고 진한 초록색으로 가득했다.

그때로부터 지금까지 2∼3일에 한 번씩은 이곳을 찾는다. 나무들과도 자연스럽게 친해졌다. 2021년 말, 환갑을 넘은 뒤부터 인생의 맛을 다르게 느끼고 있다. 숲길을 걸으며 나무들과 대화를 시작한 것도 이 무렵부터다. 목소리로 나누는 대화는 물론 아니다. 마음속으로 질문을 던지면 나무로부터 답이 돌아온다. 화창한 초봄 어느 날이었다. 아직 잎을 틔우지 않은 나무에게 물었다. ‘언제쯤 잎이 나올까요?’ 그러자 ‘기다려 보라’는 답이 돌아왔다. 자연은 자연의 속도로 천천히 변화하고 있으니 서두르지 말고 이 순간을 즐기라는 뜻이다. 지혜가 담긴 고마운 답이다.

하늘이 높은 늦가을의 숲속은 무척 아름답다. 깨끗한 햇빛으로 인해 단풍 든 숲속이 마치 스테인드글라스로 유명한 아름다운 성당처럼 느껴졌다. 길에는 낙엽들이 가득했다. 그 가운데는 아직 떨어질 때가 되지 않은 초록빛 잎도 섞여 있었다. 이 잎은 왜 이렇게 일찍 떨어진 걸까요 하니, 나무들마다 잎들마다 가지고 있는 고유한 성질 때문이라는 답이 돌아왔다. 어디, 나무와 잎들만일까. 사람들도 모두 고유한 성질을 가진 존재이니 있는 그대로 받아들여야겠구나 하는 뜻으로 여겨졌다.



가을이 깊어가며 거의 매일 공원을 찾는다. 12월생이라 연말이 가까워지면 나이를 한 살 더 먹는다는 생각, 여생이 짧아진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단풍도 거의 다 떨어진 오솔길을 걷노라면 나무 사이로 스치듯 들리는 바람 소리가 때론 목소리 깊은 부엉이 울음처럼 들린다. 얼핏 외롭게도 느껴지는 건 기분 탓일까.

지난해 11월 초, 미국 대선 결과에 충격을 받았다. 내가 지지한 후보가 낙선했다. 과연 앞으로 어떤 일이 일어날까 하는 걱정을 한가득 마음에 품고 숲을 찾았다. 햇빛이 좋은 날이었다. 숲속에서 가장 키가 큰 나무들을 향해 무심코 물었다. ‘앞으로 어떻게 살아야 할까요.’ 그러자 이런 답이 돌아왔다. ‘이미 끝난 일이야. 그렇지만 겨울 다음에는 봄이 올 거야. 그러니 희망을 잃지 마.’ 내가 바라던 답이 아니었다. 집으로 돌아와 홍차 한 잔을 따뜻하게 마시며 부엌 창문을 통해 이웃집들을 가만히 내다보았다. 한참을 그러고 있노라니 어느새 나무들의 그 말이 틀리지 않는다는 걸 받아들이고 있었다. 롤링 스톤스의 노래 ‘원하는 걸 항상 얻을 순 없어’(You Can’t Always Get What You Want)를 찾아서 들었다. 크게 숨을 한 번 내쉰 다음 컴퓨터 앞에 앉아 집필을 시작했다. 그날따라 글 쓰는 속도가 빨랐다.

다음날은 비가 내렸다. 우산을 들고 숲길을 찾았다. 단풍잎이 거의 다 떨어져 나무 사이로 하늘이 보였다. 늘 어둑했던 숲길이 제법 밝았다. 그동안 보이지 않던 오솔길 양쪽에 나뭇가지들이 제법 많이 떨어져 있는 것이 눈에 띄었다. 오래전부터 거기 있었던 듯 이미 썩은 것부터 떨어진 지 얼마 안 된 생나뭇가지들까지 다양했다. 바로 그때 제법 큰 나무 한 그루에서 불쑥 다람쥐 머리가 불쑥 튀어나왔다. 나와 눈이 마주쳤지만 다람쥐는 피하지 않고 가만히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이렇게 가까이에서 다람쥐를 만난 것은 처음이었다. 숲속의 나무는 나에게는 좋은 대화의 상대이면서 다람쥐에게는 집 같은 존재라는 사실을 깨달았다. 나무의 새로운 모습을 직접 보게 된 것이 참 좋았다.

어느새 겨울이 깊어가던 지난 연말 햇빛 좋은 날에 숲길을 또 걸었다. 이제 나무들은 잎을 다 떨군 뒤였다. 환한 숲길은 고요했다. 이 해가 지나면 60대 중반으로 접어들게 된다고 생각하니 마음이 좀 복잡했다. 숲이 가까이 있어 얼마나 좋은지 생각했다. 저절로 ‘고맙다’는 인사를 건네게 되었다. 그러자 나무는 나에게 이렇게 답했다. ‘내가 아니라, 인생이 고마운 거겠지.’ 나뭇가지를 스치는 바람 소리가 나를 향한 박수 소리처럼 들렸다. 그 소리를 들으며 나는 그 말이 맞다고 고개를 끄덕였다.

로버트 파우저 언어학자, 前 서울대 교수
로버트 파우저 언어학자, 前 서울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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